삼인행 필유아사언(三人行 必有我師焉)…

<주말 추억 글 마당 - 2019. 12. 24.(화)에 쓴 글입니다.>

by 이경오

오래전 3학년 담임을 맡았던 시절, 아이의 부친이 졸업식 날 찾아와 감사 인사를 전하던 기억이 떠오릅니다. 당시 저보다 한참 연배(年輩)가 높은 어느 대학교 교수님이라고 들었던 것 같습니다만, “우리 아이를 잘 가르쳐주셔서 감사합니다.”라며 어찌나 공손하게 허리 숙여 인사를 건네시던지 대하는 제가 오히려 민망해 몸 둘 바를 모를 정도였습니다. 그래서 모든 게 다 학생이 열심히 한 덕분이 아니겠냐며 그 아들 덕으로 돌렸더니, 손사래를 치며 “교육은 관심입니다. 선생님께서 우리 아이에게 관심을 기울여 준 덕분입니다.”라고 또 허리를 숙이시는 것이었지요. 민망한 마음에 다시 한번 감사의 인사를 건네고서는 얼른 다른 아이들의 학부모님 쪽으로 자리를 옮겼던 듯합니다. 어쨌든 그 학부모님 덕분에 그 후 저는 ‘교육은 관심’이라는 새로운 교육 신조(信條)를 하나 더 마음속에 담아 입버릇처럼 달고 다니게 되었습니다만.


그저께는 동료 선생님 한 분과 수업 중 스마트폰 화면을 바로 TV에 나타내는 방법에 관한 이야길 나누고 있었습니다. 어쭙잖은 실력임에도 그건 따로 앱을 깔거나 관련 장치를 달아야 하는 게 아니냐며 아는 체했더니, 평소 자료실을 자주 찾곤 하던 아이가 옆에서 들었던 모양입니다. 그러고는 스마트폰 설정에 TV 연결 메뉴가 있다며 아무렇지도 않은 듯 제 스마트폰으로 바로 시연(試演)해 보이는 것입니다. 다른 분들의 사정이야 어떠할지 모르겠습니다만, 사실 스마트폰에 들어 있는 기능 중에 모르고 안 쓰는 게 더 많은 이가 저라는 사람입니다. 머쓱한 마음에 “와! ‘삼인행 필유아사’라더니 오늘은 우리 아저씨-평소 아이들을 친근하게 부르는 저만의 용어-가 이 사람의 선생이 되었구나.”라며 칭찬해 주긴 했습니다만, 잠시나마 거들먹거리던 못난 선생의 모습은 기억 속에서 쉬 사라지질 않았답니다.


‘‘구동존이(求同存異)’로 동북아 평화·번영 시대를 밝히자…‘

그렇습니다. 학창 시절부터 끊임없이 되새겨온 바입니다만, 배움의 상대에는 나이의 많고 적음이나 학식, 지위의 고하(高下) 여부(與否)가 있을 수 없지요. 심지어 ‘교사’ 중에서 가장 가치 있는 교사가 ‘반면교사(反面敎師)’라는 농담처럼 때로는 대상의 부정적인 면에서 얻는 깨달음이나 가르침도 매우 중요하다는 사실을 잊어서는 안 될 것입니다. 마침, 갈등으로 치닫던 한·중·일 세 나라 지도자가 기자의 말마따나 마치 크리스마스의 기적처럼 함께 모여 동북아 지역의 평화와 번영을 위해 머리를 맞대었다는 소식이 눈에 띕니다. 부디 ‘삼인행 필유아사(三人行 必有我師)’를 강조하신 공자님의 말씀을 되새기는 의미 있는 자리가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더불어 우리 역시 혹시라도 무르익지 않은 섣부른 생각으로 상대의 소중한 가치를 함부로 재단(裁斷)하며 살아가고 있는 건 아닌지 다시 한번 더 살펴볼 필요가 있을 듯합니다.




관련 기사 : ‘구동존이(求同存異)’로 동북아 평화·번영 시대를 밝히자 / 아주경제 (2029.12.24.)

https://www.ajunews.com/view/201912241354439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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