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전(辭典)’의 추억

by 이경오

이 또한 어느덧 추억담이 되어버렸습니다만, 교단에 몸담던 시절 겨울방학이면 희망하는 아이들을 대상으로 그해 대입 수능의 언어영역 풀이 반을 10여 년 무료로 운영했던 기억을 끄집어내어 봅니다. 그럴 리야 있겠습니까만, 혹시라도 공짜 수업이라고 설렁설렁 들을까 싶어 밖에 나가 사설학원에서 들을라치면 아마도 수십만 원의 수업료를 내야 할지도 모른다는 엄포를 놓기도 했습니다. 처음에는 열정적으로 수업에 참여하던 아이들이 며칠 지나노라면 그만 방학이 내어준 게으름에 취해 흐트러지기 다반사(茶飯事)였으니, 가르치는 이로서는 그렇게라도 동기를 부여하고 싶었던 게지요. 그런데 사실 아이들의 열정이 그렇듯 사그라드는 데는 또 다른 이유가 있었으니, 문제의 난이도는 차치하고라도, 곳곳에서 마주치는 생소한 어휘들이 아이들의 떡심을 풀리게 하곤 했답니다.


어휘력이란 건 폭넓은 대화나 독서 등을 꾸준히 거치노라면 자연스럽게 그 힘이 붙게 마련이지만, 단기간에 효과를 얻는 데에는 사전 찾기만큼 좋은 방법도 없을 터이지요. 앞서 그 수업에서도 제각기 가지고 있던 스마트폰을 꺼내도록 해서, 모르는 어휘가 등장하면 사전 기능을 사용해 찾도록 하고, 가장 먼저 발표하는 아이에게는 그에 따른 보상을 주며 나름대로 해결책을 찾으려 애를 쓰기도 했습니다. 다만, 스마트폰은 부모님 눈을 피해 가며 밤늦도록 게임에 몰두하는 도구가 아니라, 이렇듯 실생활에 유용하게 사용할 수 있는 문명의 이기(利器)가 아니더냐고 꼰대 선생의 세심한 설명까지는 덧붙이지 않았더라면 더 좋았을 터인데 말입니다.


그러고 보니 학창 시절 두툼한 영어 사전을 가방에 욱여넣으며, 마치 전쟁터에 나아가는 장수가 대단한 무기라도 가진 것처럼 으쓱거렸던 기억이 떠오릅니다. 온전히 자기 것으로 만들기 위해 누구는 사전을 한 장 한 장 찢어 삼켜가며 단어를 외웠다더라는 친구의 믿거나 말거나 식 이야길 들으며, 그이의 발치에라도 한번 다가가 보리라 입술을 깨물었던 다짐은 그때마다 작심삼일의 거품으로 허무하게 사라지곤 했던 듯합니다만.


‘Ramen 아닌 Ramyeon…옥스퍼드사전에 K단어 2년 연속 올라’


세계 굴지(屈指)의 사전에 우리나라 말이 2년 연속 등재되었다는 기분 좋은 소식이 들려옵니다. ‘라면(ramyeon)’, ‘해녀(haenyeo)’, ‘선배(sunbae)’…. 입에 담기만 해도 그저 정겨운 우리 말입니다만, 결국은 그것 역시 ‘K-컬처’로 불리는 우리네 문화의 힘이 아니던가 싶어 가슴 뿌듯해집니다. 이왕이면 우리네 정겨운 감성(感性)이 담긴 말들을 더욱더 많이 퍼뜨려 지구촌 곳곳에 온기(溫氣)를 불어넣을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싶습니다.




관련 기사 : Ramen 아닌 Ramyeon…옥스퍼드사전에 K단어 2년 연속 올라 / 연합뉴스(2026.01.07.)

https://www.yna.co.kr/view/AKR20260107003600085?section=international/all&site=hot_news

작가의 이전글‘먹거리’가 전하는 위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