며칠 전, 동네 천변(川邊)을 산책하던 중에 귓불이 얼얼할 정도의 찬바람을 만나 호되게 혼이 난 뒤로는, 그것도 핑계랍시고 한동안 따뜻한 실내 헬스장을 찾아가는 게으름(?)을 피우게 됩니다. 이것 역시 운동이 되는 건 매한가지인데 무에 그리 큰 문제가 되느냐며 짐짓 혼자서 거드름까지 피우다 보니, 창문 밖에서 윙윙거리며 부딪히는 겨울바람이 혹시나 연약한 사람의 마음을 조롱하는 게 아닌가 싶어 주춤거리기까지 합니다. 그래도 평생토록 밴 욕심의 찌꺼기는 여전히 몸속에 남아있었던 모양인지, 러닝머신 위에 올라서서도 자신이 가진 분수 따윌랑 까마득히 잊어버리고 기기(器機) 위의 속도를 한껏 높여 달려봅니다. 하지만, 그것도 잠시뿐, 이내 거칠어진 숨은 턱밑으로 거푸 치달아 오르고, 차가운 기계 위에 달린 디지털시계 숫자는 연신 흔들리는 눈빛 속에 자꾸만 들어와 박힙니다. 시간을 바라보는 게 이리도 초조하고 몸이 달아오는 일이었던가 싶어 고개까지 흔들어대면서 말입니다.
사실 평소처럼 천변이 펼쳐 놓은 풍광(風光) 안으로 걸어 들어갈 참이면, 시간 따위는 그리 중요한 의미로 다가오지 않았던 듯합니다. 유유자적(悠悠自適)하듯 꾸준히 이어가는 하천의 여릿한 자취, 한 번씩 커다란 날개를 펼쳐 들고 날아오르는 백로들의 느릿한 활공(滑空), 부딪히는 바람의 숨결에도 무심히 맞추어 이리저리 몸을 비비대는 초목들의 장단…. 이렇듯 자연이 마련해 놓은 품속에서 느끼는 교감(交感)에 빠져드노라면, 우리네 인간이 만들어낸 그 딱딱한 시간 속의 숫자 따위는 머릿속에서 깨끗이 지워 버리곤 했으니 말입니다. 그러고는 또다시 허튼 다짐으로 구차한 변명을 늘어놓고 맙니다. 내일은 다시 그 자연의 포근한 품속으로 돌아가서 안겨 버릴 참이라고.
‘“지구 종말 85초전”… '둠스데이 시계' 1년만에 4초 당겨졌다’
누가 간섭하기 좋아하는 사람이 아니라고 할까 봐, 짤막한 운동을 끝낸 이의 눈길은 또다시 세상 소식으로 향하고 맙니다. 한참이나 시간 타령을 벌였던 중인지라, 그만 ‘둠스데이 시계’라는 낯선 표제어부터 먼저 눈에 들어와 앉습니다. 얼마 전 친구를 배웅한 기차역 광장에서 ‘기후 시계’를 보고서 가슴 졸였던 기억이 생생합니다만, 그게 ‘doomsday’-최후의 심판일-이라는 의미를 담고 있었다니 그저 가슴만 먹먹해질 따름입니다. 오늘도 또 선각자의 말씀을 빌려 못난 이의 마음을 대신해 보려 합니다.
‘우리는 지구를 빌리는 것이 아니라, 자녀들에게 빚지는 것입니다.’ <넬슨 만델라>
관련 기사 : “지구 종말 85초전”… '둠스데이 시계' 1년만에 4초 당겨졌다 / 전자신문(2026.01.2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