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러고 보니 누대(累代)에 걸쳐 민족의 최대 명절로 여겨온 ‘설’도 바로 눈앞에 다가와 있었습니다. 엄연히 양성평등 시대가 도래(到來)해 있음을 잘 알면서도 이런 이야길 하면, 욕 얻어먹기 딱 좋은 일이란 걸 어찌 모르겠습니까만, 차례를 지내는 가정의 주부님들은 아마도 이맘때면 제수(祭需)를 장만하느라 눈코 뜰 새가 없을 듯합니다. 받침 하나 바꾸면 돌이 되어 버리는 게 ‘돈’이라는 노래 가사를 흥얼거리며 고개를 끄덕인 적도 있습니다만, 오늘만큼은 돌고 돌아 ‘돈’이라는 말에 더 관심이 가는 건 아마도 제수를 마련하는 데 드는 부담에 이맛살을 찌푸릴지도 모르는 분들의 안타까움이 남의 얘기 같지 않아서인 모양입니다. 하긴 지난 추석 명절에도 뒤 마려운 강아지처럼 차례상 장보기에 이끌려 나섰다가 순식간에 수십만 원이 지갑에서 빠져나가는 걸 경험하고서 놀란 일이 있었으니, 이번 설 명절에도 살림살이를 감당하시는 분들의 애로가 오죽할까 싶습니다.
유교 종주국에서조차 우리와 같은 제사는 지내지 않는데 우리만 유독 제사에 목숨을 건다며 목청을 높이는 분도 여러 차례 뵌 적이 있었습니다만, 아마도 그건 제례(祭禮)가 유교적 관점에서 다듬어진 탓에 그런 오해를 하시는 게 아닌가 싶었습니다. 제사의 유래에 대해서야 다양한 학설이 있다고는 합니다만, 자연과 신에 대한 경외심에서 비롯된 제사 형태의 흔적은 지구촌 곳곳에서 역사적 기록으로 남아있다고 하니, 비단 종교의식으로만 이어진 것은 아닌 듯합니다. 더구나 그 어떤 나라보다도 ‘효(孝) 사상’을 더욱더 소중히 여겨 왔던 우리네 전통문화에서야 조상의 명복과 후손의 복록을 비는 기복(祈福)의 의미까지 더해 더더욱 면면히 이어져 오지 않았을까 싶기도 합니다만.
‘"설 차례상에 전 안 부쳐도 됩니다…떡국 중심 4∼6가지면 충분"’
학자들은 현대 문명의 총아(寵兒)인 ‘창의성’의 요소를 열거하며 ‘유연성’을 빠뜨리지 않곤 합니다. 급격히 변해가는 시대의 흐름에 적응하자면 유연한 사고의 자세가 그 밑바탕에 마련되어 있어야 할 것은 분명하니 말입니다. 차례니 제사니 하는 전래(傳來) 문화가 참으로 소중하고 자랑스러운 전통이긴 합니다만, 정말 중요한 건 그 속에 담긴 정성스럽고 진실한 마음이라는 건 누구나 공감하는 사실일 터입니다. 그렇다면 이젠 관점의 유연성을 발휘하여 과도한 제수 장만보다는 넘치는 공경과 사랑의 마음을 차례상에 올리는 데 더 관심을 기울여야 할 일이 아닌가 싶습니다. 마침, 설 차례상에 굳이 그 뜨겁고도 손 많이 가는 전은 굳이 올리지 않아도 된다는 예학 관련 기관의 기사가 눈에 띄어 더더욱 반갑기만 합니다. 그분들의 말대로 부디 이번 설은 가족 간의 화합과 행복을 다지는 시기로 삼아야 할 터입니다.
관련 기사 : "설 차례상에 전 안 부쳐도 됩니다…떡국 중심 4∼6가지면 충분" / 연합뉴스(2026.02.11.)
https://www.yna.co.kr/view/AKR20260211081100005?section=culture/all&site=major_news0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