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쩌다 할머니가 안 계신 방에 들어설 참이면 문턱을 넘어서기 무섭게 달큼한 냄새가 흐느적흐느적 아이의 코끝에 감겨 오곤 했습니다. 단것을 좋아하는 아이의 본능이야 어찌할 도리가 없었던 모양인지, 비롯된 정체(正體)를 찾아 또록또록 눈알을 굴리다 보면, 선반 위에 엉거주춤 앉아 있던 사발 하나가 멋쩍은 미소를 흘리곤 했습니다. 하기야 그리 이상하지도 않은 일을 아이 혼자서 괜스레 호들갑을 떨었던 것인지도 모르겠습니다. 평소에도 할머니는 한 사발 그득히 설탕을 부은 뒤, 넘치도록 커피 물을 타서 마치 숭늉처럼 드시고는 선반 위에 올려두곤 하셨으니 말입니다. 호기심을 이기지 못한 아이는 할머니가 남기신 그 사발을 종종 한 모금씩 입안에 머금어보기도 했습니다만, 그 맛의 의미는 도무지 알아차릴 수가 없었답니다. 그래도 흐릿하나마 여태껏 남아있는 기억으로 되새겨 보면, 코끝을 간지럽히던 그 커피 향이 백지장 같은 아이의 마음속에서 마치 수묵화처럼 슬금슬금 번져가며 삶의 여백을 미리 도안(圖案)해 두었던 건 아닌가 싶습니다.
아이는 언젠가부터 그 시절 선반 위에 놓였던 커피 한 사발이 건네준 유산(遺産)의 매력에 깊숙이 빠져들었던 듯합니다. 머리에 듬성듬성 허연 서리가 내려앉은 뒤부터는 흡사 자신의 분신이라도 되는 양 늘 가까이 두고 애지중지하게까지 되었으니 말입니다. 선뜩한 새벽 공기가 건네는 무심함을 삼켜낼 때나, 식사 후 넘치는 나른한 포만감을 일깨울 때도 먼저 뜨끈한 커피 한 잔부터 앞장세우곤 했지요. 혹시라도 이 친구가 오래전 아이의 코끝을 간지럽힌 효과를 느긋하게 즐기며, 짓궂은 웃음이라도 흘리고 있는 건 아닌가 싶어 실없는 웃음까지 흘려가면서 말입니다.
‘“매일 커피 한 잔씩 마셨는데”…알고 보니 사람 살리는 ‘보험’이었다’
커피가 우리네 건강에 미치는 이런저런 이야기야 어디 한두 번 들었던 터이겠습니까만, 연휴를 앞두고 다시 한번 그러한 소식이 눈에 들어오는 통에 그만 사족(蛇足)을 늘어놓고 말았습니다. 다행히 이번 기사는 무심코 마시는 커피 한 잔이 현대인의 고질병이라는 ‘대사증후군’의 위험을 낮출 수 있다는 연구 결과라니, 설 명절 오랜만에 마주하는 친지, 지인들과 뜨끈한 커피 한 잔 나누며 서로의 건강과 행복을 챙기노라면, 더욱더 정겨운 시간을 보낼 수 있을 게 아닌가 싶습니다. 부디 설 명절 즐겁고 행복한 추억 많이 쌓으시길 기원합니다.
학교에서 마련한 바리스타 체험 프로그램에서 자기가 직접 내렸다며 자랑스럽게 들고 온 커피를 건네던 아이들의 천진난만한 웃음이 떠올라 저도 몰래 입꼬리가 올라갑니다.
관련 기사 : “매일 커피 한 잔씩 마셨는데”…알고보니 사람 살리는 ‘보험’이었다 / 서울경제(2026.02.1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