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시락의 힘…’

by 이경오

터줏대감처럼 버티고 선 전봇대를 사이에 두고 온종일 흙투성이가 되도록 쫓아다니던 동네 악동들도 차마 어찌할 도리가 없는 일이 있었답니다. 갈기를 세운 어둑서니가 골목길 사이로 기다란 꼬리를 끌며 미끄러질 참이면, 어느새 직감으로 낌새를 눈치챈 엄마들의 간절한 부름이 이곳저곳에서 간절하게 흘러나왔고, 엉거주춤 엉덩이를 빼면서도 악동의 무리는 하나둘 슬그머니 자기 집 대문 안으로 몸을 감추었으니 말입니다. 사실 그 시절 아이들은 그게 얼마나 호강에 치받힌 응석인 줄 몰랐습니다. 오후 한나절 제 엄마가 뜨거운 부엌 아궁이 앞에서 분주히 마련한 밥상을 버젓이 받아 들고서 반찬 투정까지 곁들이는 게 당연한 특권(特權)인 줄로만 알았습니다. 자식을 위한 사랑이라는 이름 하나로 그 시절 할머니, 어머니들은 묵묵히 자신들에게 안긴 그 무거운 책무(責務)를 숙명처럼 받아들이셨던 것을 말입니다.


아마도 그 시절을 그리는 아련한 마음을 안고 살았던 때문은 아닌가 싶었습니다. 언젠가 급식업체를 방문할 일이 있어서 학부모 대표 몇 분을 차에 모시고 다녀오던 참이었습니다. 조만간 학교 체험 행사가 예정되어 있으니, 늘 학교 급식에 익숙해져 온 우리 아이들에게 오랜만에 어머니들이 음식 솜씨 한번 멋지게 발휘해 엄마표 도시락을 마련해 보는 게 어떻겠냐며 운을 뗐지요. 순간 차 안에는 한동안 침묵이 흘렀고, 잠시 뒤 한 분이 웃음 섞인 목소리로 정중히 거절의 마음을 담은 대답을 내어놓았으니, 그저 혼자서 고개만 주억거릴 따름이었답니다. 하기야 그게 얼마나 힘든 일인 줄 아느냐는 그 시절 어머니들의 호통이 뒷덜미를 뜨겁게 달구는 듯도 했습니다만.


‘"전투식량처럼 김이 모락모락"…태극전사들 '비장의 도시락' 정체’


종종 한동안 소원(疎遠)했던 이들에게 밥이나 한 끼 같이 하자며 슬며시 다가서는 일이 있습니다. 그렇게라도 그간 서로 어눌해진 마음의 문을 열어보고자 함이지요. 물론 음식이 가진 힘에 대한 믿음 역시 담겨 있을 터입니다만, 그 먹거리 속에 상대에 대한 믿음과 사랑이 함께 담겨 있다면 금상첨화가 아닐까 싶습니다. 동계 올림픽에 참가한 대표팀 소식이 실시간으로 전해져 오더니, 그들의 사기를 북돋우고 있다는 도시락 소식에 언뜻 옛날 이야길 꺼내 들고 말았습니다. ‘K-컬처’가 지구촌의 이목을 끄는 시절, 부디 정성스럽게 마련한 도시락의 힘을 받으며 우리네 스포츠 문화 역시 멋지고 세련된 모습으로 그 매력을 더해 주길 기대해 봅니다.




관련 기사 : "전투식량처럼 김이 모락모락"…태극전사들 '비장의 도시락' 정체 / 중앙일보(2026.02.10.)

https://www.joongang.co.kr/article/2540387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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