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V 예능 프로그램에 등장한 어느 노 신부님의 이야길 듣다가 그만 저도 모르게 실없는 웃음을 터뜨리고 말았습니다. 평소 이 사람이 종종 즐겨 쓰던 표현이라는 생각에 더더욱 귀를 쫑긋 세웠던 듯도 합니다만, 신부님 당신은 살아오시는 동안 산전수전(山戰水戰)은 물론, 공중전에다 화생방전까지 두루 거쳤노라며 너스레를 떠셨으니 말입니다. 하기야 사제(司祭)가 되기까지의 과정이나, 정작 그 길에 들어서서도 역시 온갖 고초(苦楚)를 겪어오셨을 터이니, 그리 표현하시는 것도 그다지 무리는 아닐 것이다 싶었습니다. 하지만, 대화 내내 그분의 얼굴에서는 도무지 회한(悔恨)이나 원망(怨望)의 빛이라곤 찾아볼 수 없이 그저 온화한 미소만 가득 담겨 있었으니, 지켜보는 이로서는 그저 흐뭇할 수밖에 없었지요.
36여 년의 교직 생활을 마치고 그야말로 자연인의 신분이 되고 보니, 종종 주위 지인이나 친구들로부터 축하와 격려의 인사를 건네받곤 합니다. 사실 무에 그리 큰일을 하다 온 사람도 아닌 터라 그럴 때면 괜스레 목덜미가 후끈거리기도 하지요. 한번은 아들놈이 자신은 이제 사회생활을 시작한 지 그리 오래 지나지 않았는데도 이런저런 갈등에 쌓이곤 하는데, 어떻게 그 오랜 세월을 교육 현장 한 곳에서만 몸담아 오실 수 있었느냐며 감탄 섞인 이야기를 건네온 적도 있었습니다. 사실 학창 시절 어른들로부터 수도 없이 들었던 그 말씀, ‘우물을 파도 한 우물을 파라’라는 격언이 얼른 떠올랐습니다만, 시대 문화가 판이(判異)하게 변한 이즈음에 어울리는 말은 아니다 싶어 좀 더 생각의 우물을 지그시 길어 보았답니다. 그리고 마침내 내놓은 답이 산전, 수전, 공중전을 다 겪었지만, 늘 다 잘될 것이라는 믿음만은 저버린 적이 없었다는 것이었지요.
‘암 투병 중 짧은 머리로 나타난 박미선…’
사실 오늘 아침 글 마당은 앞서 그 TV 프로그램에서 신부님 바로 뒤에 등장한 한 개그우먼 때문에 비롯되었습니다. 한동안 대중 앞에 등장하지 않아 궁금해하던 이였습니다만, 그동안 암 치료를 받다가 이제 생존 신고를 하러 왔다며, 머리 깎은 자기 모습이 영화 속 유명 여배우를 닮지 않았냐고 그 역시 너스레를 떨어 후배들을 보듬어 주는 모습을 보고서 그저 마음이 따뜻이 데워지는 듯했으니 말입니다. 살아가면서 원망하고 탓하는 마음을 먼저 앞세우곤 합니다만, 묵묵히 받아들이고 감사하는 마음이 세상과 자신을 더더욱 아름답게 만들어간다는 사실을 잊지 말아야 할 게 아닌가 싶습니다.
관련 기사 : 암 투병 중 짧은 머리로 나타난 박미선… "생존 신고하러 왔다“ / 조선일보 (2025.11.06.)
https://www.chosun.com/national/national_general/2025/11/06/4TBL7FTULJALLDTY32RRYKH3KU/