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어느 날 내가 아닌 기분이 들었다.
어딘가 낯선 나와 마주한 날
문득 그런 순간이 있었다.
아침에 일어나 거울을 봤는데 눈에 힘이 없었다.
평소처럼 씻고 출근 준비를 하고 익숙한 공간에 들어갔는데도
몸 어딘가에 낀 미세한 이물감이 쉽게 사라지지 않았다.
'왜이렇게 공허하지?'
이유 없는 무기력. 감정의 잔고가 바닥나 버린 것 같은 하루.
"이건 내가 아닌 것 같아"
하루 종일 사람들과 부딪치며 반응하고 웃고 설명하고 설득하는 시간들.
내가 나로 있는 순간보다 누군가에게 맞춰 있는 시간이 더 많았다.
정작 퇴근하고 나면 말하고 싶은 사람이 없었다.
'사람이 너무 많아서 지친다'는 감정이 처음에는 낯설었는데
언젠가부터 그게 당연해졌다.
"잘지내?"라는 인사에 "응, 그냥 그래."라고 대답하는 내 목소리가
어쩐지 나조차 어색했다.
지금 내가 느끼는 감정이 진짜인지
그저 매일 반복되는 일상 속에서 껴맞춘 감정인지 모르겠는 날들이었다.
내 감정을 적기 시작했다.
그날 밤, 핸드폰 메모장에 써봤다.
"오늘은 이유 없이 지쳤다."
"말을 너무 많이 했고 아무 말도 하고 싶지 않았다."
"나는 지금 뭔가를 놓친 느낌이다."
이유는 모르게지만 단어 하나씩 꺼내는 일만으로도 조금 괜찮아졌다.
'지금 이 마음이 괜찮은 거구나.'
'이 상태도 그냥 내가 지나고 있는 감정이구나.'
그날부터 하루에 한 번 나에게 말을 걸어보기로 했다.
감정도 관리가 필요하다는 걸 알게 됐다.
몸이 아프면 약을 먹듯
마음이 흐릿하면 내 감정을 들여다보는 시간이 필요하다는 걸 그제야 알았다.
누군가에게 털어놓기엔 너무 사소한 감정들.
하지만 그런 감정들이 쌓이고 쌓여 나를 무겁게 만들었다는 걸
그동안 너무 무심하게 지나쳤던 것 같다.
그대로 나를 받아들이는 연습
요즘 나는 '감정 다이어리'를 쓴다.
오늘의 감정 날씨는 어땠는지, 어떤 순간이 힘들었는지,
그리고 그런 나에게 어떤 말을 해주고 싶은지.
누군가에게 보여주지 않아도 괜찮다.
중요한 건 내가 내 감정을 놓치지 않고 들여다본다는 것.
가끔은 무기력하고 가끔은 의미 없이 공허한 날도 그대로 써내려간다.
그러면 이상하게도
나는 다시 조금씩 나로 돌아오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