숨, 그대로

2. 무뎌진 감정, 어떻게 돌보고 있나요?

by 이헨

감정이 사라졌다고 느꼈다.

다양한 성격, 다양한 말투, 다양한 감정을 가진 사람들 속에서

나는 점점 표정이 사라지는 사람이 되어갔다.

하루에도 몇 번씩 기분이 뒤섞이는 사람들 사이에서

내 감정은 자리를 내어주고 대신 이성이 자리를 잡았다.


불편한 말도 담담하게 넘기고

억울한 상황에도 일단 이해하려 애쓰고

화를 내야 할 때도 그냥 조용히 침묵을 택했다.


그게 더 현명한 것 같았고

그게 나를 덜 힘들게 하는 방버비라고 믿었다.


그런데 어느 날, 아무 감정도 느껴지지 않았다.

좋은일인데 기쁘지 않고

속상한데 눈물도 안 나고

그저 '아, 그렇구나.'라는 말만 입 밖에 맴돌았다.


그제야 알았다.

감정을 누르고 참는 일이 쌓이고 쌓이면

어느 순간 감정 자체가 무뎌져 버린다는 걸.


그리고 무뎌진 나를 지켜보는 내가

점점 무서워지고 있었다.


감정을 '꺼내는 연습'을 시작했다.

그 후로 작은 것부터 적어봤다.

"오늘 사람 많은 공간에서 한없이 피곤했다."

"누군가의 말에 서운했지만 표현하지 못했다."

"그때 나는 속으로 울고 있었던 것 같다."


글로 써보면 그 순간의 감정이 다시 살아나는 것 같았다.

희미해졌던 감정들이 조금씩 선명해졌다.

말하지 못했던 감정, 외면했던 내 마음에

천천히 손을 대보기 시작했다.


감정도 돌봄이 필요하다.

감정은 참는 게 아니라 돌보는 거였다.

단단하게 쌓아올린 이성 뒤에 숨어 있던 나의 마음은

'이해받고 싶다'는 작은 외침 하나로 존재감을 드러냈다.


사람들 사이에서 나를 잃지 않기 위해 지금 나는 나의 의감정을 먼저 듣는다.

매일 저녁, 하루를 돌아보며 오늘 느꼈던 작은 감정 하나에 이름을 붙여본다.


피로, 불안, 미안함, 서운함, 고마움.

그 감정들이 다시 나를 살아 있게 만든다.


무뎌졌던 나를 다시 꺼내는 시간

나는 여전히 많은 사람들 속에 있다.

다양한 말, 감정, 온도에 매일 휩쓸린다.

하지만 이제는 안다.

그 속에서 나의 감정을 놓치지 않는 방법이 있다는 걸.


감정은 지워도 되는 것이 아니라 돌봐야 하는 존재라는 걸.

그리고 그 돌봄은

아주 작은 나 자신을 바라보는 시선에서 시작된다는 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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