숨, 그대로

3. 감정이 고장 난 날 ... 치밀어 오르는 분노는 주체가 안된다.

by 이헨

감정이 고장 났다고 말했을 때

사람들은 보통 무기력이나 우울을 떠올리곤 한다.

하지만 내겐 그 반대였다.

차분함보다 먼저 찾아온 건 분노였다.


처음엔 짜증이었다.

사소한 말, 무심한 표정, 반복되는 상황에

내가 너무 예민한가 싶을 정도로 반응했다.

그러다 어느 순간

도저히 삼킬 수 없는 감정이 터지듯 올라왔다.

참을 수 없고, 멈출 수 없고,

숨을 고르기도 전에 무너지는 기분이었다.


어떤 날은 내가 아닌것 같았고

어떤 날은 나조차 감당할 수 없는 내가 되었다.

이런 내가 싫어서 혼자 욕하고 울다 잠든 날도 있었다.


그렇게 감정이 폭주하던 시기에

나는 아주 단순한 루틴을 하나 만들었다.

아무 말도 하지 않고, 누구와도 연락하지 않고,

그냥 나 하나만 있는 상태를 일부러 만드는 것.


침묵 속에서 내 감정을 마주하는 게 처음엔 두려웠지만

그게 분노를 잠재우는 유일한 방법이었다.

억지로 이해받으려 하지 않고

억지로 나를 설득하지도 않았다.


그저 "지금 이 감정이 나를 다 삼켜버릴 것 같다"는 걸

있는 그대로 인정해주는 것.

그게 숨을 고르기 전

내가 할 수 있었던 최소한의 자기돌봄이었다.


지금 당신이

너무 화가 나서, 너무 슬퍼서,

너무 지쳐서 아무 말도 못하겠다면

그건 어쩌면 당신이 당연히 화낼 자격이 있는 사람이라는 뜻일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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