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시 쓰는 안데르센 세계 명작 <성냥팔이 소녀>
어제 또 한 명의 소녀가 거리에서 동사했다. 최근 들어 이런 안타까운 죽음들이 계속되고 있다. 그 소녀는 길에서 무작정 성냥을 팔았다고 한다. 아마도 성냥 공장에서 일하던 그 소녀는 제대로 월급도 받지 못한 채 거리로 내몰리고, 수중에 남은 성냥들이라도 좀 팔아보려다가 결국엔 이런 비참한 최후를 맞았으리라.
나는 확신한다. 성냥을 팔던 소녀의 죽음이 사람들이 으레 생각하는 것처럼 불우한 가정 환경과 사람들의 무관심에 기인한 것만은 아니다. 근본적으로, 소녀는 백린(白燐)이 내뿜는 독성 때문에 점점 기운을 잃고 쓰러진 것이다. 아마도 소녀는 백린 성냥을 가까이하면서 자신도 모르게 백린에 서서히 중독되었을 것이다. 그리고 유독 추웠던 그날은 몸을 조금이라도 더 녹이기 위해 얼굴 가까이 대고 불을 쬐다가 백린의 독성에 강력하게 노출되었을 가능성이 높다.
내가 왜 이런 이야기를 하는지 궁금한 사람들이 있을 것이다. 내 나름의 이유가 있다. 나는 나폴레옹이 승승장구하던 1806년, 프로이센의 아셔슬레벤이라는 도시에서 태어났다. 젊은 시절, 신학과 과학 사이에서 갈등하던 나는 결국 과학자가 되기로 결심했다. 영국에서 빅토리아 여왕이 즉위하던 1837년, 나는 프랑크푸르트 대학의 화학 교수로 임명되었다. 교수로 재직하면서 동료 과학자들과 함께 니트로셀룰로오스 화합물을 발견하는 등 나름의 업적을 쌓았다. 하지만 나의 최대 관심사는 안전한 성냥을 만드는 일이었다. 사실 이런 생각을 하게 된 것은 내가 프랑크푸르트 대학의 교수로 임용될 즈음 영국의 한 신문에 게재된 찰스 디킨스의 기고문 때문이었다. 당시 <올리버 트위스트>를 발표한 그는 아이들의 노동 착취 문제에 관심이 많았다고 한다. 그는 기고문을 통해 아이들이 많이 일하던 성냥공장의 주원료인 백린이 아이들의 건강을 위협한다고 주장했다. 그 기고문을 접한 나는 화학자로서의 소명 의식을 느꼈고, 안전한 성냥을 만드는 것을 생의 과업으로 삼았다. 이런 결심을 하게 된 것도 벌써 몇 년 전 일이다.
최근 몇 년 간 인(燐)을 다루는 기술은 나날이 발전한 것은 사실이다. 1845년 즈음, 진공 상태의 백린에 고온을 가해 적린(赤燐)을 추출하는 데 성공한 과학자들도 있었다. 사람들은 이 적린을 사용하여 성냥을 만들기도 했다. 확실히 적린은 백린에 비해 독성도 적을뿐더러, 상온에서도 쉽게 불이 붙지 않아서 안전하기는 했다. 그러나 그만큼 불을 붙이기가 어려워 상업적으로 활용하기 어렵다는 단점이 있었다. 적린 성냥에 불을 붙이기 위해서는 이미 발화가 시작된 물체에 접촉해야만 했다. 이래서는 성냥으로서의 가치를 인정받기 어려웠다. 나는 적린을 추출하고 활용하는 방법을 익힌 지 3년이 넘었지만 아직 상품화할 수 있는 안전한 성냥을 만들어내지 못하고 있었다. 내가 조금만 더 빨리 안전한 성냥을 발명했다면, 그래서 유럽의 많은 성냥 공장들이 더 이상 백린을 사용하지 않았다면, 어제처럼 안타까운 일이 발생하지 않았을지도 모른다.
많은 과학자에게 흔히 일어나는 일이 오늘 내게 찾아왔다. 해결의 실마리를 우연히 찾은 것이다. 아침에 울적한 기사를 보고 집을 나서 연구소로 가던 중 나는 거리에서 크게 넘어지고 말았다. 간밤에 내린 눈으로 길이 군데군데 얼어붙었는데, 나도 모르게 살얼음을 밟고 엉덩방아를 찧었던 것이다. 순간 정신이 번쩍 들었다. 내가 넘어진 건 신발이 미끄러워서가 아니었다. 길이 미끄러워서 넘어진 것이다. 빙판길을 적린이라고 하고, 신발을 성냥머리라고 생각하니 내가 지금까지 굉장히 사소한 것을 놓치고 있다는 것을 깨달았다. 넘어지도록 하는 힘이 가해진 곳은 신발이 아닌 빙판길이었다. 그렇다면 불이 붙는 힘이 작동하는 곳도 성냥머리에 둘 것이 아니라, 마찰을 전달하는 쪽에 두면 될 일이었다. 그동안 너무 당연하게 적린이 성냥머리에 있어야 한다고 생각했다. 그리고 그 적린을 묻힌 성냥에 불을 붙일 생각만 했는데, 실은 그 반대로 하면 되는 문제였던 것이다.
나는 곧장 실험실로 달려갔다. 중간에 몇 번이고 넘어졌지만 오히려 신이 났다. 사람들은 나를 미친 사람 취급을 했을 것이다. 나는 적린을 두꺼운 종이에 묻히고, 성냥머리에는 염소산칼륨을 입혔다. 성냥머리를 두꺼운 종이에 마찰시키는 순간 적린이 성냥머리로 옮겨가면서 염소산칼륨과 결합하며 불이 붙었다. 세상에서 가장 안전한 방식으로 불꽃이 탄생했다. 그러나 너무 짧은 순간에 불이 꺼졌다. 불이 좀 더 오래 붙을 수 있도록 성냥머리에 황 성분을 소량 입히고, 반대로 적린 바른 종이에는 마찰력을 증대시키기 위해 유릿조각을 섞었다. 전보다 훨씬 안정감 있는 속도를 유지하며 불꽃이 살랑거렸다.
연구실에서 수백 번 이 작업을 계속하다 보니 머릿속이 하얗게 타들어갔다. 불을 더 잘 붙게 하기 위해 사용한 황 때문이리라. 불의 색깔과 황의 냄새에 도취되어 나는 잠깐 동안 환상을 보게 되었다. 불꽃 안에서 나는 어릴 적 아버지가 만든 크리스마스트리를 보았고, 어머니가 만든 거위 구이 요리도 맛보았다. 불꽃은 행복했던 과거를 오롯하게 보여주는 힘이 있다. 덴마크의 그 소녀도 생의 마지막 순간에 불꽃 속에서 평온함을 맛보았을까? 나는 진심으로 그러하였길 바란다. 힘겹게 일으킨 불꽃 속에서 그 아이가 평소 원했던 사소하지만 따뜻한 것들이 형성화되어 선명하게 나타났길 바란다.
나는 조만간 이 안전성냥 제조 방법을 모든 사람들에게 공개할 것이다. 사람들이 더 이상 백린의 아릿한 독성에 정신을 잃지 않았으면 좋겠다. 너무 쉽게 붙는 성냥불로 인해 큰 화재가 발생하는 일이 줄어들길 바란다. 무엇보다도 안전한 성냥이 내는 작은 불꽃이 아이들을 행복하게 해주었으면 한다. 바라는 것은 그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