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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Ceci Cela Mar 11. 2021

[그림책읽기] 두 번째_왜냐면 말이지

사물, 그럴싸한 이야기가 되다


[JUST BECAUSE] Isabelle Arsenault 그림 /  Mac Barnett 글


Keyser Söze!

    유명한 반전 영화로 꼽히는 <The Usual Suspects>에서 주인공 버벌 킨트는 취조하는 형사가 묻는 말에 놀라울 정도로 막힘없이 답변합니다. 영화가 끝날 무렵 관객들은 버벌이 서술한 모든 내용이 경찰서 안에 있는 갖가지 사물을 활용해서 즉석에서 지어낸 말이라는 것을 알게 되지요. 버벌의 진술에 등장하는 전설의 인물 ‘Keyser Söze’는 터키어로, SOZE를 영어로 옮기면 주인공의 이름인 VERBAL(떠버리)이 됩니다. KEYSER는 황제를 뜻하고요. 결국 카이저 소제는 ‘황제 떠버리’라는 의미로, 세치 혀로 모두를 기만한 버벌 킨트 자신이 되겠습니다.

    부모가 되면 ‘황제 떠버리’ 까지는 몰라도 어느 정도 수다스러운 사람으로 변하는 것 같습니다. 세상 궁금한   아이들이 묻는 말에 어떻게든 답을 해주는 것만으로도 자연히 말이 많아질 테니까요. 모르는 것을 모른다고 할 수만도 없는 상황도 더러 있고요.

    아이들의 호기심에 대처하는 방법을 찾는 부모를 위한 근사한 그림책을 발견했습니다. 볼로냐 라가치 상 수상 그림작가와 칼데곳 아너 상 수상 글작가가 의기투합하여 펴낸 <왜냐면 말이지>가 바로 그 책입니다.




사물, 그럴싸한 이야기가 되다

    이 책의 주인공 아빠는 잠자리에서 잠은 안 들고 호기심을 마구마구 발산해 내는 아이가 묻는 말을 천연덕스럽게 받아냅니다. 아이의 질문이 무엇이든지 간에, 아빠는 구체적이고, 섬세하고, 감칠맛 나는 답변을 내놓습니다. 어떤 질문에는 시처럼 우아하게 대답하고, 또 다른 물음에는 공상과학소설처럼 신선하게 말합니다.

    “왜 바다는 파래요?”
     “매일 밤, 네가 잠들면 물고기들이 기타를 꺼내, 슬프게 노래하면서 파란 눈물을 흘리거든.”
    “공룡들에게는 무슨 일이 생긴 거예요?”
    “수백만 년 전에, 수천 개의 별들이 지구에 떨어졌어. 공룡들은 떠날 준비를 하고 있었지. 공룡들은
       큰 풍선에 몸을 묶고 우주로 둥둥 떠올라 지구 밖에서 지냈단다.”

    기가 막힌 아빠의 대답을 읽어 가다 보면, 독자들은 아빠가 창조한 이야기의 근원을 발견하게 됩니다. 아빠 이야기의 힘은 다름 아닌 아이의 방에 놓인 갖가지 사물들에서 기인한 것이었지요. 딸아이의 질문이 아무리 난해해도 아빠는 재치 있게 사물들과 감정들을 화학적으로 결합하여 그럴싸한 답을 내놓습니다. 바다의 푸른 빛깔을 설명하려고 기타와 물고기 인형을 끌어오고, 거기에 슬픔이라는 감정적 요소를 버무렸습니다. 공룡 인형은 천장에 매달린 모빌과 합체하여 행복하게 지구를 떠나게 되고요.

   목적은 완전히 다르지만, 주변의 사물을 적재적소에 배치해 그럴싸한 이야기를 지어낸 <유주얼 서스펙트>의 버벌 진트와 <왜냐면 말이지>의 아빠는 묘하게 닮았습니다.

아빠의 이야기는 이 속에 모두 숨어 있지요.




질문하는 아이, 대답하는 어른

    이 그림책을 읽고, 골똘히 생각해보니, 아이의 언어는 대부분 의문문, 청유문, 감탄문으로 종결되는 경우가 많은 것 같습니다.

“엄마, 지금 만들고 있는 음식이 뭐예요?”
“아빠, 우리 같이 블록 쌓기 놀이하자”
“이 개미들 좀 봐! 줄 맞춰 걸어가는 거 진짜 신기해!”

    아이들이 자연스레 내뱉는 이런 종류의 말들은 그들이 세상과 더 친해질 수 있는 방향으로 이끄는 언어들입니다. 반면에 아이를 향한 어른의 언어는 평서문이나 명령문, 약속문의 형태를 지닌 경우가 더 많은 것 같습니다. 저만 하더라도 지난 며칠 간 아이와의 대화에서 사용한 문장을 곱씹어보니 확실히 그런 것 같습니다. (의문문이나 청유문의 형태를 띠고 있으나 사실상 명령문이나 마찬가지인 경우를 포함하면 전부 그렇다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숙제는 다 했니?” (어서 숙제부터 끝내라)
“목욕부터 먼저 하면 TV 보게 해 줄게.” (지금 TV 보지 마라)
“밖에 나가 있는 동안 마스크 벗지 마!” (이 말은 하루빨리 안 하고 싶네요…)

    <왜냐면 말이지>를 몇 차례 반복하며 읽으면서 느낀 것은 아빠의 답변이 대부분 감탄문으로 읽힌다는 점이었습니다. (실제로는 감탄문 형식이 아니지만, 독자가 감탄문으로 변환해 읽더라도 전혀 거부감 없이 읽혔다는 의미입니다.) 이 그림책은 세상 모든 것이 궁금하고(의문문), 좋은 것은 같이하고 싶고(청유문), 사소한 것에도 감동하는(감탄문) 아이들의 언어를 우리 어른들도 어느 정도 공감하고, 아이를 배려하는 언어를 구사해야 한다는 메시지를 담고 있다고 감히 생각해 봅니다.

     한편, 작가들이 아이의 질문을 갖가지 색깔의 원으로 표현한 것도 재미있습니다. 돌고 도는 아이들의 질문을 잘 형상화한 것 같습니다. 특히 검은색 배경에 생각을 담은 원이 따뜻한 색을 뿜어내고 있는 설정이 인상적입니다. 어른인 우리가 어떻게 답을 해주냐에 따라 작고 따뜻한 생각의 원은 더 커지고 더 환해질 것입니다.

일반적인 아이들의 일반적인 머릿속




답을 구하는 아이에서 답을 찾는 아이로!

    이 그림책은 나름의 반전도 가지고 있습니다. 아이가 셀 수없이 많은 질문 공세를 펼치자 지친 아빠는 “이제 자야지” 하면서 떠나는데요, 저는 처음 읽었을 때 이렇게 마무리되는 줄 알았습니다. 그런데 아이는 방심하는 틈을 타서 “왜 자야 하는데요?” 하고 되묻습니다. 이에 아빠는 “눈을 감아야 더 보이는 것들이 있거든”이라는 선문답 같은 말을 남기고 떠납니다. (가만 보니, 이 그림책에서 아빠의 위치는 질문이 거듭될수록 아이 가까이 다가가다가, 이 마지막 질문을 기점으로 아이와 멀어집니다. 답을 가르쳐 줄 때에는 점점 다가오다가, 스스로 답을 찾길 바라는 마음이 생겼을 때에는 의도적으로 멀리 떨어져서 지켜보려 한 것은 아닌지...)

    어느새 바로 앞에서 아이가 던진 수많은 생각의 원들이 구체적인 모습으로 아이의 머릿속에 전개되기 시작합니다. 이 그림책의 정수를 담은 명장면이 펼쳐집니다.

    드디어 아이는 질문의 답을 타인에 의존하지 않고, 스스로 생각하고 느끼는 법을 터득하게 된 것입니다. 스스로 사물을, 조건을, 언어를 조합할 줄 아는 능력! 두 작가는 이 책의 마지막 장면에서 스스로 생각하고 창조할 줄 아는 능력을 가지게 된 아이의 내적 성장을 멋지게 표현하였습니다.

[JUST BECAUSE] 원작의 마지막 장면


    동글동글한 질문들에 대해 나름의 해답을 찾아 제각기 멋진 모습으로 형상화해 나가는 아이들을 응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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