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빈 씨는 원래 그렇게 말이 없어요?"
어릴 적 어머니의 심부름으로 사촌형이 공부하는 학원을 찾아간 일이 있다. 그저 학원 문을 열고 들어가 사촌형에게 열쇠를 건네주는 게 그날의 내 임무였는데, 유리문 밖에서 보이는, 한창 수업이 진행 중인 광경은 아직 학원이란 곳을 다녀 본 적 없던 내게 너무도 생경하고 무섭게만 느껴졌다. 수업 도중 모두가 나를 쳐다보는 가운데 사촌형을 찾아 헤매는 모습을 머릿속에 그려 보는 것만으로도 아찔했다. 결국 나는 열쇠를 전달하지 못하고 학원 건물을 빠져나왔다. 간단한 심부름조차 하지 못한 채 학원 앞에서 안절부절못하는 나를 발견한 어머니는 실망감을 감추지 못하셨다.
지금과는 달리 어렸을 땐 내향성이 개인의 고유한 성향으로 존중받지 못하는 분위기가 지배적이었다. 때문에 그런 성격을 ‘고치기’ 위해 자신감을 키워 준다는 웅변 학원에 등 떠밀려 간 아이가 나뿐만이 아니었다. 그러다 보니 나 역시 내 성격을 노력으로 고쳐야 할 무언가, 즉 결함으로 느끼는 게 당연했다.
열일곱 살이 되던 해, 나는 대부분의 중학교 동기들이 택한 A 고등학교를 포기하고 나를 아는 이들이 거의 없는 B 고등학교에 진학했다. 그곳에서 내 성격을 고치고 새롭게 시작하고 싶은 마음에 내린 결정이었다. 말뚝박기, 프로 레슬링 등 땀 흘리는 놀이도 마다하지 않고, 과장되게 웃고, 시시껄렁한 농담도 던지며 아이들과 친해지려고 부단히 애를 썼다. 하지만 그렇게 내가 아닌 다른 사람의 모습을 연기하고서 집으로 돌아올 때면 자괴감과 수치심이 차례로 찾아왔다. 진이 빠지는 건 물론이고, 이렇게까지 해야 하나 싶은 생각에 괴로웠다.
그에 대한 반작용인지, 이후로는 원래의 내 모습으로, 아니 그보다 더 깊은 동굴 속에 틀어박혔다. ‘이게 다 무슨 소용인가.’ 그런 허무에 빠져 아이들과 친해지려는 노력을 일절 하지 않게 된 것이다. 수업 시간을 제외하곤 그저 조용히 앉아 책을 읽거나 음악을 들었던 아이. 같은 반 아이들이 기억하는 나는 딱 그 정도 존재였다.
그러다 보니 매일같이 찾아오는 점심시간 때 함께 밥을 먹을 친구가 없었다. 그래서 점심 식사를 알리는 종소리가 울릴 때면 곧바로 도서실로 달려가 영화 잡지를 읽으며 시간을 때웠고, 얼마 후 교실로 돌아와서는 집에서 챙겨 온 초코 우유와 딸기 우유를 마시며 허기를 달랬다. 이는 저녁시간 때도 마찬가지였는데, 남은 우유 한 개를 마저 마시고 야간자율학습을 할 때면 항상 배에서 꼬르륵 소리가 나는 걸 들키지 않으려고 진땀을 빼곤 했다. 모두가 조용한 저녁의 교실, 어쩔 수 없이 꼬르륵 소리가 날 때면 그 고요함이 야속하기만 했다. 아마도 이 시절 같이 밥 먹을 친구가 한 명만 있었더라도 내 키가 180은 넘겼을 것이다.
영화 만드는 일을 하다 보면 좋든 싫든 주목받는 상황이 많을 수밖에 없다. 나만의 비전을 영상으로 실현시키기 위해서는 수십 명의 스태프와 배우들이 자리한 현장을 지휘해야 되고, 영화가 완성된 뒤엔 영화제의 초청을 받아 작품에 대하여 관객들과 이야기 나누는 GV(Guest Visit) 행사에 참여하게 된다. 투자 혹은 제작 지원을 받는 단계에서 기획 중인 영화가 어떤 작품이 될 것인지 프레젠테이션 하는 자리도 있다.
이 같은 경험이 쌓이다 보니, 과거에 비해 사람들 앞에 나서는 것에 대한 공포를 꽤 많이 극복했다. 하지만 촬영 현장을 벗어나 내 무대가 아닌 곳에서 갑작스럽게 주목받거나 발언권을 넘겨받는 상황이 올 때면 순식간에 서늘한 기운이 밀려오면서 온몸이 따끔거린다.
요즘에는 어딜 가나 꼭 한 번씩 MBTI가 대화의 화두로 떠오른다. 타인의 성격을 간편하게 짐작해 볼 수 있고, 스몰 토크를 나누는 데는 이만한 주제가 또 없는 게 사실이다. 혹시 주변에 ‘I(내향적)’ 유형이 이렇게나 많았다는 사실에 놀란 적이 있는가. 극도의 내향적 인간으로서 ‘저 사람은 분명 E(외향적) 유형일 거야’라고 짐작했던 사람들도 자신을 ‘I’라고 소개하는 경우를 심심찮게 보게 된다.
세상에 단 2%밖에 없다는 INFP 유형은 또 어찌나 그리 흔한지. 비슷한 온도의 내향 인간들이 의외로 많다는 사실도 그렇지만, 언제부터인가 그들에게서 스스로의 성향을 결함으로 여기지 않는 태도를 발견하게 된 것이 꽤 위로가 된다.
언젠가 MBTI를 기준으로 사람을 채용하는 기업이 있더라는 이야기를 들었다. 한때 유행에 불과한 것 가지고 참 유난들을 떤다 싶었는데, 그들이 유독 선호하지 않는 성격 유형이 있다길래 그게 뭘까 싶었다. 정답은 바로 나와 같은 INFP. 조직 생활과 협업에 적합하지 않다는 게 그 이유였다.
나는 그 사실이 조금 충격적이었다. 고작 MBTI로 누군가의 업무 적합도를 따지는 행태의 편협함도 그렇지만, 자연적인 성향으로 인해 내가 조직으로부터 차별받을 가능성을 품고 있었다는 것이 그랬다. 내향성을 단점으로 여기는 분위기는 이제 구시대의 유물이라고 생각했었는데, 이는 여전히 사회 곳곳에서 ‘조직 생활을 못할 것이다’ 따위의 선입견을 재생산하며 영향력을 미치고 있었다.
MBTI로 사람을 채용하는 행위는 ‘MBTI로 한 사람의 성격을 완벽하게 파악할 수 있다’, ‘내향적인 사람은 조직적 업무 체계에 적합하지 않다’와 같이 최소 2개 이상의 오류를 범하고 있는 동시에 해당 회사, 혹은 인사 담당자의 무지를 적나라하게 보여준다. 물론 이런 회사가 소수 존재한다는 것만으로 우리 사회가 조금도 성장하지 않았다고 생각하진 않는다. 다만 이 같은 행태가 ‘내향적인 것은 나쁜 것’이라는 메시지를 은연중에 퍼뜨리지는 않을까 하는 우려가 될 뿐이다.
살면서 문득 ‘고독하다’는 감정이 들 때가 있다. 내게 이 감정은 흔히들 생각하는 것처럼 아무도 없는 곳에서 혼자 시간을 보낼 때가 아니라, 마음이 통하지 않는 불특정 다수와 함께 있는 자리에서 불쑥 찾아온다. 이를 테면 회식이나 행사, 모임 같은 것. 금세 친해져서 저들끼리 웃고 떠드는 많은 사람들 속에 섞이지 못하는 자신을 발견할 때, 기분은 급격히 수면 아래로 가라앉는다. “수빈 씨는 원래 그렇게 말이 없어요?” 가만히 있는 내가 안쓰러웠는지 친절하게도 누군가 말을 걸어온다. 어색한 웃음과, 뭐라고 했는지 기억도 못할 말로 그 순간을 모면한 나는 눈치껏 그 자리를 빠져나오고, ‘나는 왜 사람들과 섞이지 못할까’ 하는 자기 연민의 굴레로 걸어 들어간다.
한겨울 추위에 급격히 배터리가 방전되는 스마트폰처럼, 많은 사람들 속에서 빠르게 기력을 잃어갈 때, 나는 문득 여전히 외향성을 욕망하는 스스로를 발견한다. 하지만 고독으로부터 파생된 감각을 활용해 때로는 밀도 있는 창작을 하고, 이런 글도 길게 지껄일 수 있는 감수성을 가졌다는 게 꽤 맘에 든다. 에너지를 충전하는 데 있어 타인의 존재를 필요로 하지 않는, 단지 하루 이틀 방에 틀어박혀 글을 쓰고 좋은 영화를 보는 것만으로도 충분한 존재인 게 나름 자랑스럽다. 게다가 이런 내향성을 오히려 무해하고 건강한 태도로 해석해 먼저 다가와 주는 고마운 사람들도 있다. 나 또한 관계에 있어 성큼 손을 내밀어주는 외향인들이 좋지만, 선뜻 가까워지는 게 쉽지 않아도 사려 깊은 내향인들도 좋다.
이 좋은 걸 미리 알았더라면 싶을 때가 있다. 그랬다면 억지로 외향적인 사람이 되려고 애쓰며 자괴감에 빠지지 않아도 됐을 텐데. 그날 사촌형에게 열쇠를 갖다 주지 못한 것에 죄책감을 가지지 않아도 됐을 텐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