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충 찍고 싶다는 말은 아니고요.
울산의 어느 숲에서 진행된 밤 촬영은 도무지 끝날 기미가 보이지 않았다. 영화과 동기인 친구가 연출하는 단편영화의 연출부로 참여하게 된 나는 ‘오늘만 견디면 끝이다’라는 생각으로 한겨울의 4회차 밤샘 촬영을 견디고 있었다. ‘울산이 추워 봤자 얼마나 춥겠어.’ 매년 겨울 극도의 추위를 자랑하는 윗지방 거주자들이라면 이렇게 생각할지 모르지만, 부산이라는 온실에서 평생을 자라 온 내게 앙상한 나무들 사이로 불어오는 칼바람을 밤새 견디기란 쉽지 않았다. 게다가 졸음까지 밀려오니 정말 죽을 맛이었다. 집밖에 나가지 않는 주말이면 낮잠 두 번에 밤에는 여덟 시간 취침까지 거뜬한 내게 밤샘 촬영은 쥐약이었다.
더디게 진행된 촬영은 결국 다음 날 오전까지 이어졌다. 저예산 단편영화인 데다, 나를 포함한 스태프 모두가 감독의 친구 혹은 지인이었기 때문에 그 생고생을 하고도 ‘페이(보수)’는 없었다. 오직 ‘열정’이라는 명목만이 있을 뿐이었다.
나 역시 친구를 돕는다는 좋은 마음으로 참여한 일이었지만, 혹한의 밤샘 촬영을 견디고 있자니 마음속에서 이런 생각이 싹텄다. ‘고작 영화 하나 찍겠다고 돈도 안 받고 개고생을 하다니... 이래도 되는 건가?’ 인간의 3대 욕구 중 하나인 수면욕이 해결되지 않으니 도무지 이성적인 판단이 어려웠다. 일도 하기 싫고, 당장 집에 가고 싶은 마음이 굴뚝같았지만, 같은 상황에서 묵묵히 일하는 동료 스태프들을 보고 있자니 그런 생각을 한 내가 한없이 부끄러웠다.
영화과 작품 촬영은 대게 참여 스태프들에게 페이가 주어지지 않는다. 게다가 한정된 예산과 시간 내에 연출자가 계획한 장면을 모두 찍어야 하기 때문에 밤샘 촬영 옵션이 거의 필수로 탑재되어 있다. 이 모든 게 연출자 개인의 의지나 욕심보다는 학생 스태프들의 경험에 비중을 둔 ‘학생영화’이기에 가능한 것이다. 워크숍 수업의 일환으로 단편영화가 제작되고, 학생들은 거기에 참여해 영화 제작 현장 경험을 쌓는 것에 의의를 둔다. 그러니 학생들이 사비로 제작비를 마련하고, 엄청난 노동량에 녹초가 되어도 이는 ‘좋은 경험’이 된다.
그런데 그 의의를 충분히 이해하고 있는 나로서도 한여름 무더위나 한겨울 강추위 속 야외 촬영과 밤샘 촬영만큼은 도무지 견디기 어려웠다. 땡볕에서 촬영을 진행하다 예보에 없던 폭우를 맞을 때면, 밤을 꼬박 새우고 밝아오는 아침에 다음 신 촬영을 이어 갈 때면, 아무런 불평 없이 주어진 상황에 최선을 다하고 있는 스태프들 속에서 혼자 중얼거렸다. “씨발, 난 절대 이렇게 안 찍어야지...”
동료들은 그저 숙명인 듯 담담히 받아들이는 일이 내게는 어쩐지 너무 고되고 부조리하게 느껴졌다. 만일 이대로 잠 제때 못 자고 밥 제때 못 먹는 일을 계속하는 영화인의 운명을 짊어져야 한다면, 나는 그것을 필연으로 받아들일 수 있을까? 이 같은 고민에 빠진 스스로가 나약하고 비겁하게 느껴졌지만, 솔직히 그럴 자신이 없었다.
4학년이 되던 해, 전부터 별러 왔던 졸업 작품을 찍을 시기가 다가왔다. ‘어떻게 하면 남들은 엄두도 못 낼 역작을 찍을 수 있을까?’가 내 첫 번째 고민이었고, ‘어떻게 하면 영화를 편하게 찍을 수 있을까?’가 두 번째 고민이었다. 그런 생각을 하던 중, 샤워를 하다 문득 떠올린 아이디어를 바탕으로 시나리오를 써 내려갔다. 고등학교 급식실을 배경으로, 학우들에게 괴롭힘당하는 청각장애인 주인공의 폭력적인 일탈을 그린 단편영화 <급식실 오디세이>가 그렇게 기획되었다.
워크숍 수업의 시기적 특성상 모든 졸업 작품의 촬영은 여름에 이뤄져야 했는데, 내 시나리오는 촬영 분량의 대부분이 급식실 ‘원 로케이션’이었다. 에어컨을 빵빵하게 틀 수 있는 실내인 데다, 다른 장면을 촬영하기 위해 장소를 이동하는 수고를 감수할 필요도 없었다. 게다가 이야기의 배경을 모두 낮으로 설정하여 밤샘 촬영 따위는 일말의 가능성도 고려할 수 없도록 원천 차단해 버렸다.
<급식실 오디세이>는 ‘영화를 편하게 찍고 싶다’는 내 간절한 바람을 철저하게 반영한 시나리오로써, 우리 스태프들은 공무원처럼 오전에 출근해 저녁식사 시간에 퇴근하는, 꿈의 5회차 촬영을 마칠 수 있었다.
졸업 이후에 만든 작품들의 시나리오를 쓰는 과정에서도 이와 같은 고민을 이어 갔다. 어떻게 하면 보다 편하게 찍을 수 있을까? 자칫 게으르고 불성실하다는 오해를 불러일으킬 수도 있는 이런 심보가 작품의 질을 떨어뜨리는 결과를 불러올지 모른다고 걱정할 수도 있겠지만, 사실은 의외로 그 반대에 가깝다.
작품 외적으로 그 같은 고민을 동시에 하다 보니, 한정된 공간 안에서 대부분의 이야기가 벌어지고, 앞서 소개되었던 공간이 결말부에 재등장함으로써 플롯의 수미상관 구조가 형성되고, 인물들 간의 촘촘한 앙상블로 전개가 진행되는 등 ‘내 영화만의 특성’이라고 부를 수 있을 만한 것들이 생겨났다. 만일 그러한 고민 없이 시나리오를 썼다면 이와 같은 특성을 발굴해 내지 못했을 거라고 생각한다. 아이러니하게도 창작에 있어 어떤 제약을 거는 것은 때로 무한정한 자유를 쥐어주는 것보다 훨씬 창의적인 아이디어를 가능하게 한다.
창작 과정에서 ‘편한 방법’을 고민하는 게 좋은 이유는 꼭 작품에 유용하기 때문만은 아니다. 그것은 함께 영화를 만드는 스태프들의 노동 문제 측면에서도 긍정적인 영향을 끼친다. 불필요한 시간 낭비, 인력 낭비를 줄이기 위해 프로덕션 준비를 더욱 철저히 하고, 계절과 날씨에 따른 육체적 고통을 감수하며 야외 촬영을 지속하는 빈도를 줄이고, 밤샘 없이 멀쩡한 컨디션으로 다음 날 촬영을 이어 갈 수 있으니 작품도 질도 자연스레 상승할 것이다. 또한 스태프들에게 노동 시간에 비례하지 못하는 페이를 지급하며 얼굴을 붉힐 일도 사라진다. 내가 편하자고 꾀를 부리기 시작한 것이 결국 ‘윈윈’이라는 결과를 불러오는 것이다.
“나의 장점인 예민함을 활용해 내가 편한 작업 환경을 준비한다면 대부분의 사람들이 편하게 작업할 수 있을 거라 생각해요.”
언젠가 신동글 영상감독의 인터뷰를 읽고서 ‘옳다구나!’ 하고 무릎을 쳤다. 내 속에 막연히 가지고 있었을 뿐 명쾌하게 정의 내리지 못한 생각을 이토록 간단명료하게 풀어내 주신 것에 감사했다. 먼저 ‘내가 일하기 좋은 환경’을 만들고자 하는 노력이 결국 ‘모두가 일하기 좋은 환경’을 만든다. 촬영 현장에서 겪어야 했던 수많은 고행과 부조리를 현명하게 피해 갈 수 있는 방법이 있다면 무엇일까. 나는 스스로가 ‘비겁하고 나태해서’ 이런 고민이나 하고 있는지도 모른다는 죄의식을 비로소 내려놓을 수 있었다.
다음 영화를 준비하는 지금도 ‘어떡하면 영화를 편하게 찍어 볼까’ 하는 고민은 여전하다. ‘모든 캐릭터를 한 공간에 몰아넣고 처음부터 끝까지 원 테이크로 찍으면 어떨까? 크크크...’ 그런 생각을 할 때면 영화를 만든다는 것이 그리 부담스럽고 어렵기만 한 일처럼 느껴지지 않는다. 물론 아무리 잔머리를 굴려 봐야 현실은 예상치 못한 재난의 연속이지만. 지난한 준비 과정과 촬영 현장에서 발생하는 변수가 주는 데미지를 줄이기 위해서라도 이 고민은 계속되어야 한다. 이건 내가 단지 고생길을 마다하고 싶은 한량이라서 그런 게 아니라, 남들보다 조금 예민한 감독이기에 그런 거라고... 외롭게 주장해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