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전수빈 Apr 18. 2024

영화과 똥군기

그 폭력의 추억

  스무 살, 대학교 영화과 신입생 오리엔테이션에 참석했던 날의 일이다. 전부터 수련회나 수학여행 등 추억을 쌓겠답시고 단체로 어디론가 우르르 몰려가는 것에 염증을 느껴왔지만, 오리엔테이션에 참석하지 않으면 앞으로의 학교생활이 고달플 거라는 한 선배의 농담 섞인 회유에 못 이겨 지금은 잘 기억도 나지 않는 어느 외진 곳의 펜션으로 향했다.


  영화과 동기들이 잔뜩 모여 있던 널찍한 방에서, 나는 생애 처음으로 술이라는 걸 실컷 마셔 볼 수 있었다. 술자리가 처음이니 내 몸이 감당할 수 있는 주량이 얼마쯤인지 알 리가 없었다. 영화에 뜻이 있는 친구들을 한자리에서 만났다는 기쁨 때문에 아무리 술을 마셔도 거북한 느낌이 없었고, 나만 그런 게 아니었는지 모두들 새빨갛게 만취해서 웃고 떠들며 분위기는 무르익어갔다.

  그런데 그때, 한 고학년 선배가 심상치 않은 기세로 문을 박차고 들어오더니 대뜸 고함을 지르기 시작했다. 신입생들이 벌써부터 풀어져서 술판이나 벌리고 뭐 하는 짓이냐는 거였다. 일순간에 싸해진 분위기에 얼어붙은 우리들은 곧바로 조교의 명령에 따라 움직이는 훈련병 신세가 되었다. “앉아, 일어서, 엎드려, 뒤로 취침!”

  정신 차릴 새 없이 몸을 뒤집으며 훈련소 데모 버전을 체험하는 사이, 우리와 함께 어울려 놀던 저학년 선배가 고학년 선배에게 불려 나갔다. 이어서 모두가 무릎을 꿇고 두 사람을 주시하는데, 고학년 선배가 ‘후배 관리를 제대로 안 했다’며 대뜸 저학년 선배의 가슴팍을 주먹으로 강타했다. ‘퍽!’ 소리가 귀에 꽂힐 만큼의 강도였다.

  그 광경을 바라보며 영화과 진학을 진지하게 재고하는데, 갑자기 어딘가 숨어 있던 선배들이 우르르 나타나 놀란 우리를 보며 웃기 시작했다. 때린 선배도, 맞은 선배도 서로 머쓱하게 웃으며 벌벌 떨고 있던 우리를 달랬다. 그들이 준비한 ‘몰래 카메라’에 완전히 당한 것이었다.

  선배들은 언제 그랬냐는 듯 ‘좋은 선배’의 모습으로 돌아갔고, 안심한 동기들은 그날 밤새 술을 마시며 학교생활의 강렬한 서막을 열었다. 당시 선배들에게 이날의 몰래 카메라는 신입생들을 골려줌으로써 선후배 사이의 벽을 허물기 위한 재밌는(?) 이벤트였겠지만, 나는 어쩐지 마음이 편하지만은 않았다. 이날의 경험은 우리가 언제든지 선배들의 권위에 굴복할 수 있다는 신호였고, 나는 이것이 앞으로 벌어질 실전을 위한 준비운동에 불과할지도 모른다는 사실을 예감했던 것 같다.


  흔히들 ‘똥군기’라고 부르는 것이 영화과에도 있었다. 아마도 군대를 갔다 왔을 고학년 선배들이 불시에 후배들을 한자리에 불러 모아 시답잖은 이유로 으름장을 놓고, 마음만 먹으면 바닥에 몸을 굴릴 수도 있었다.

  당시 영화과의 실세였던 한 선배의 호출로 1학년 동기들 모두가 학교 주차장에 모인 날이었다. 딴에는 성질 좀 죽이고 ‘좋게 좋게’ 타이르고 있다는 뉘앙스를 팍팍 풍기며 선배가 말했다. “여자애들은 군대를 안 다녀와서 이 위계질서라는 걸 잘 모르겠지만...” 나는 그 말을 듣는 순간 그 선배의 영화가 왜 그리도 고루해 빠졌는지 잘 알 것 같았다.


  영화과와 같은 건물에서 주로 생활하는 연기과의 사정은 영화과보다 한 술 더 떴다. 연기과 신입생들은 ‘선배다’ 싶은 사람을 마주칠 때면 건물이 떠나가라 소리 높여 외치도록 프로그래밍 되어 있었다. “안녕하십니까, 선배님! OO학번 OOO입니다!”

  연기과 신입생들 입장에서는 내가 겉만 봐서 연기과인지, 영화과인지 알 턱이 없으니 무조건 인사부터 하고 봐야 했다. 그렇게 민망한 인사를 받고 나면 괜스레 그들이 안쓰럽다가도, 문득 그 똥군기의 근원이 무엇일까 고민하게 되었다.


  전부터 나이를 먹거나 시간이 흐르면 어떤 지위를 자동으로 획득하는 것에 대해 의문을 품어왔다. 이를 테면 군대처럼, 복무하는 동안 특별한 성과 없이 얻은 계급에 지나치게 우쭐해지는 선임들을 볼 때 느끼는 감정 같은 것. ‘계급’이라는 것이 군대에 있을 때만 잠시 주어지는 아주 희미한 허상에 불과하다는 사실을 인지하지 못한 채 거들먹거리는 모습이, 비록 그 시스템에 순응하고 있는 나로서도 참 우습게 느껴졌다.

  사람들에게 ‘예술인’이라고 하면 어떤 말이 연상되느냐고 묻는다면 흔히 ‘자유로운’, ‘틀에 얽매이지 않는’ 따위의 대답을 할 것이다. 나는 군대에서 전역해 복학한 뒤에도 여전히 잔존해 있던 일부 ‘꼰대’ 선배들을 보며 이런 의문이 들었다. ‘예술하는 사람들이라면 보다 의식이 깨어 있는 게 자연스럽지 않나?’ 그들은 왜 ‘영화’라는 예술을 공부하는 학교에서도 위계와 규율이 필요하다고 믿어 의심치 않은 것일까. 그리고 왜 그 명목을 유지하는 수단으로 ‘폭력’을 택했을까.


  그때 그 선배들은 지금 어디서 무엇을 하고 있을까. 고작 ‘위계질서’ 따위의 고루한 전통에 얽매인 주제에 얼마나 대단한 예술을 할 수 있을까 의문이 드는 게 사실이지만, 인생은 참 아이러니한 것이라서 오히려 그런 사람들이 때로 대단한 성공을 거두어 삶에 회의감을 안겨주기도 한다. 그러나 ‘다행히’ 아직까지는 그 선배들이 이 분야에서 크게 성공한 사례가 없다. 당시 1학년이었던 우리들에게 딱히 문제랄 게 있었는지도 의문이지만, 그 문제에 대한 해결책으로 폭력 외의 것은 상상하지 못하는 머리로 예술은 글렀다.

  지금도 영화과에 똥군기가 남아 있는지는 알 수 없다. 내가 졸업한 것도 너무 오래전 일이라서, 단지 시간이 흐르고 물갈이가 되면서 그 같은 악습 또한 씻겨 내려갔을 거라고 짐작할 뿐이다.


  한편 너저분한 인간 군상과 사회 현상이 이야기를 창작하는 재료가 되는 나로서는 그처럼 우스운 시대를 살았던 것이 오히려 다행이라는 생각도 든다. 나는 종종 내가 겪었던 못난 사람들의 면면을 내 영화 속 캐릭터에 투영시키곤 하는데, 영화 <과정의 윤리>에서는 영화과 출신 촬영감독인 ‘성우현’이라는 캐릭터에 과거 선배들의 모습을 담아 써먹기도 했다. 그것이 그 시절과 그 사람들에 대한 나름의 작은 복수인 셈이다.

  때로 누군가의 악행과 망발은 어느 영화 속 캐릭터의 행동과 대사로 박제되어 남는다.

작가의 이전글 취향에 관하여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