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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전수빈 May 05. 2024

생일 축하에 진심인 사람

다가오는 생일에 마음 졸이는 이들을 위해

  오전 여섯 시 반. 알람 소리에 잠에서 깨어나 반사적으로 카카오톡을 확인한다. 오늘도 어김없이 생일이거나 곧 생일을 앞둔 사람들의 목록이 떠 있다. 전 국민이 다 쓴다는 카카오톡의 이토록 친절한 기능 덕분에 타인의 생일을 모른 척하기도 어려워진 세상이다. 적당한 친분이 있는 사람이라면 축하 인사와 함께 기프티콘으로 성의를 보이는 것 또한 잊으면 안 된다.

  그렇다고 매번 서로의 생일 때마다 의무적으로 기프티콘을 주고받는 건 내키지 않고, 상대도 불편할 것 같아 조심스럽다. 게다가 좀 더 각별한 사이라면 스타벅스 음료 교환권처럼 큰 고민 없이 고른 듯한 선물은 곤란하다. 그런데 타인의 마음에 들 만한 선물을 고르는 건 또 얼마나 까다로운 일인가. 직접 얼굴 맞대긴 어려워도 간접적으로 연결되긴 참 쉬운 세상, 어쩐지 진심을 표현하는 일은 더 번거롭고 복잡해진 것만 같다.


  생일이 돌아오는 12월에 접어들 때면 어김없이 가슴이 두근거리기 시작한다. 곧 다가올 생일에 아무도 축하 연락을 주지 않으면 어떡하지 싶은 불안감 때문이다. 사실 생일 선물 같은 건 기대하지도 않고, 굳이 필요로 하지도 않는다. 난 나름 미니멀리즘을 추구하는 사람이라 사용하지도 않을 물건이 생기면 처리하기 곤란해진다. 생일이라는 건 자주 보지는 못하지만 인연을 계속 이어 가고픈 사람들에게 인사 한 마디 건네 볼 수 있는 좋은 명목이지 않은가. 나 역시 그들에게 그런 존재라는 걸 확인받고 싶은 마음뿐이다.


  회사에서 평범한 일과를 보내던 어느 생일날의 이야기. 연말에 많은 업무가 한꺼번에 밀려드는 영상 회사의 특성상 다소 빡빡한 일정을 소화해야 했지만, 마음만은 하루 종일 두근거렸다. 오래전부터 생일맞이 깜짝 파티가 일종의 관례처럼 굳어져 온 회사였기 때문에, ‘이것들이 어느 타이밍에 날 놀래키려나’ 싶은 기대감에 포커페이스를 유지하기가 어려웠던 것이다. 업무 시간이 다 끝나 가는데도, 마치 짠 듯이 어느 누구도 선뜻 생일 축하한다는 말을 해주지 않았기에 내 의심은 확신으로 변해 갔다.

  퇴근 후 카페로 자리를 옮겨 늦은 저녁까지 회의가 이어졌다. 생각보다 한참 늦어지는 깜짝 파티 타이밍에 의아한 마음이 들었지만, 이러다 문득 방심한 사이 초에 불을 붙인 생일 케이크를 가져오겠거니, 하는 기대를 놓지 않았다. 그러나 점점 타들어가는 내 마음은 아랑곳없이 회의는 몇 시간이고 계속되었다. 희망이 분 단위로 절망에 가까워지는 기분이었다. 끝을 모르고 길어지는 회의에 지쳐 가는 동료들의 눈빛을 보며 나는 결국 체념하고 말았다. ‘아, 이 새끼들 진짜 모르는구나...’

  회의가 끝나고, 카페를 나와 인사를 나누고 헤어질 때까지 어떠한 일도 일어나지 않았다. 집으로 돌아오는 길, 겨우 몇 통 와 있는 지인들의 축하 연락을 확인하며 얼마나 마음이 쓰라렸는지 모른다. 정작 가장 가깝다고 생각했던 이들이 몰라 준 생일인데. 그날 한 친구가 울적해하는 나를 위로하기 위해 달려와 편의점에서 산 미역국이라도 선물해 주지 않았더라면, 한동안 내 얄팍한 인간관계를 반성하며 심각한 자괴감에 빠져 살았을지도 모르겠다. 그날 나는 이렇게 결심했다. 다른 사람의 생일을 진심으로 축하해 주는 사람이 되자고. 


  몇 년 전, 전 직장 동료이자 학교 후배의 결혼식을 다녀왔다. 그리고 공교롭게도 그날은 나의 생일이었다. ‘이제 나보다 어린 친구들도 결혼을 하는구나’ 하는 신기함과, 오랜만에 영화과 사람들을 잔뜩 만나는 데서 오는 반가움이 더해진 시간이었다.

  그저 반가운 마음만 가득하면 좋을 텐데, 유별나게도 나는 많은 사람들과 함께 있는 자리에서 외로움을 크게 느낀다. 훈훈한 분위기의 예식이 끝나고 뷔페에 둘러앉아 식사를 하는 동안, 서로의 근황을 묻고, 어제 만난 듯 농담을 주고받는 사람들 사이에서 나는 꽤 오랫동안 잊고 있었던 그 감각을 떠올렸다. 스몰 토크조차 어려워서 있는 듯 없는 듯 조용히 밥만 먹고 있는 나를 두고 ‘수빈 선배는 있는 줄도 모르겠다’며 장난치는 후배의 말을 듣고 있자니 더욱 그랬다.


  그러자 문득 4학년 종강 파티 때의 기억이 되살아났다. 사람들로 가득 찬 어느 어둑한 술집, 떠들썩한 동기들 사이에서 시간을 보내기가 버거워 그만 자리에서 일어날 기회를 엿보고 있는데, 그날따라 왠지 모두가 나를 붙잡아 두려는 눈치였다. 동기들이 이렇게 한자리에 모이는 것도 어쩌면 이번이 마지막이니까 그러겠거니 싶어서, 내키지 않는 마음을 달래며 엉덩이를 붙였다.

  그런데 잠시 후, 누군가의 선창으로 시작된 노랫소리가 내 귀를 번쩍 뜨이게 했다. “생일 축하합니다, 생일 축하합니다. 사랑하는 수빈이, 생일 축하합니다아!”

  맞다, 나 오늘 생일이었지. 예상치 못한 순간에 등장한 케이크와 함께 생일 축하 송을 크게 불러주는 사람들을 보며 참으로 복잡 미묘한 감정을 느꼈다. 적어도 내가 이들 사이에서 환대받지 못하는 존재는 아니었구나, 하는 안도감 같은 것. 그동안 먼저 마음을 열고 그들에게 다가가지 못했던 것이 못내 미안해졌다. 비록 그것이 순간의 호의에서 비롯된 단발성 이벤트였을 뿐이래도.


  식사가 모두 끝나고, 담배를 피우러 예식장 앞에 모인 사람들 틈에서 한 친구가 대뜸 소리쳤다. “여러분, 오늘 수빈 선배 생일입니다!” 그 순간 탄성과 함께 일제히 소리 높여 생일 축하 송을 불러주는 사람들. 나는 부끄럽지만 두둥실 떠오르는 기쁜 마음을 감추려고 얼굴을 감싸쥐며 뒷걸음질쳤다. 코로나 시대가 아니었더라면 차마 마스크로 가리지 못한 내 잇몸 미소가 적나라하게 노출되었을 것이다.

  그날의 종강 파티 때처럼 이 역시 묘한 타이밍에 생일을 맞이한 이가 누릴 수 있는 작은 특권에 불과했지만, 난 그 순간이 참 애틋하게 느껴졌다. 비록 그들 개개인이 나를 친밀하게 느낄지 어떨지는 모를 일이지만, 생일을 축하해주는 순간만큼은 기꺼이 한 덩어리가 되어 목청 높여 주던 그 웃는 얼굴들이 너무나 예쁘고 고마웠다.


  오늘 아침에도 눈 뜨자마자 카카오톡을 켜 보니 생일인 친구 목록이 뜬다. 선뜻 인사를 건네기엔 친분이 깊지 않아 망설여지는 지인도 있고, 한때는 친했지만 오랫동안 연락이 뜸했던 친구도 있다. 이들도 어쩌면 나처럼 생일이 있는 달에 접어들면 괜스레 마음 졸이기 시작하는 사람들이 아닐까. 축하 인사 하나에 그날의 기분이 달라지는 사람들은 아닐까. 생각처럼 반겨주지 않을까 봐 두렵기도 하지만, 이제 망설이는 건 이만하고 생일을 핑계로 그들의 안부를 물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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