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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거진 엄마 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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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강낭토끼 Jan 01. 2022

엄마 일기

아이를 부탁하는 엄마는 늘 미안하다.

  신랑은 내가 워킹맘이 되는걸 많이 반대했었다. 지금 사는 곳으로 이사하기 전엔 아이를 어린이집에 보냈지만 혹시 아이가 아프면 친정도 시댁에도 부탁할 만한 거리가 아니라 아이를 부탁할 만한 곳이 없었다. 그 이유에서였다. 내가 일하고 싶은 것과는 별개로 그런 비상 상황에서 아이를 어쩌지 못하는 상황이 싫다고 했었다. 나의 의지와 상관없이 주변의 이유들로 나의 경력 단절의 시간은 점점 길어졌다. 그렇게 전업주부로 살게 될 줄 알았던 나의 삶에 변화가 생겼다. 언니와 같은 곳으로 이사를 오면서 아이를 부탁할 수 있는 손이 많아졌다. 운 좋게 취업도 하게 되었고 나는 워킹맘이 되었다.  


 내가 워킹맘이 되었던 그 시기에 코로나가 시작되었다. 신랑이 늘 말했던 비상 상황이 워킹맘이 되자마자 현실이 되었다. 아이를 등원시킬 수 없었다. 다행스럽게 언니가 아이를 돌봐줄 수 있는 상황이 되었고 나는 어린이집 대신 언니 집에 아이를 보내고 출근했다. 


 워킹맘들의 대부분이 그렇듯 9시까지 출근하려면 적어도 집에서 나서는 시간이 8시 20분은 되어야 했다. 아침잠이 많은 아이는 아침 일찍부터 준비하는 엄마의 부산스러움에도 눈뜨지 않았다. 차려놓은 아침밥도 먹지 못하고 눈도 뜨지 못하는 아이를 업어 언니 집에 데려다 놓았다. 그런 일을 며칠 반복하니 아이가 울었다. 엄마 출근 안 하면 안 되냐고 엄마랑 있고 싶다고 얘기했다. 일 시작할 때 아이에게 동의를 구하고 시작한 거였지만 아이가 이렇게 힘들어하니 미안해졌다. 엄마의 선택으로 아이가 힘들어한다고 생각하니 마음이 아팠다. 그렇다고 당장 일을 그만둘 순 없었다. 아이도 적응하는 시기라 힘들어할 거라 생각하며 아이를 달랬다. 누군가의 와이프가 아니라 누구누구 엄마가 아니라 나의 이름으로 불리는 출근이 좋았다. 출근해서 엄청 대단한 일을 하는 것은 아니지만 출근을 하면서 나의 자존감도 높아지는 느낌이었다. 그래서 더더욱 출근이 좋았다. 평일에 출근하는 엄마지만 주말만큼은 아이의 엄마로 온전히 엄마로서의 시간을 내어주면 아이도 금방 적응할 수 있을 거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그런 나의 기대와 다르게 적응기간이라 생각했던 아이는 아빠가 같이 있어도 불안해했다. 잠잘 때면 늘 엄마를 찾으며 울었고 아침에 이모집에 가자며 집을 나설 때면 가기 싫다고 화를 내거나 짜증을 내며 울었다. 그런 시간이 길어지니 아침 출근을 준비하는 나의 마음도 힘들었고 출근해서 일하는 시간에도 아이에게 미안한 마음이 자꾸 커졌다. 죄책감도 생겼고 퇴근 후에도 나는 자꾸 지쳐갔다. 결국 호기롭게 시작했던 나의 직장 생활은 한 달 만에 마무리되었다.  


 아이에게 천천히 적응할 시간을 주고 싶었다. 또 시국이 이렇다 보니 아이가 어린이집에 등 하원이 가능해지면 조금 더 나아지지 않을까 하는 기대로 일하는 시간을 조금 줄이기로 했다. 워킹맘으로 한번 일을 해보니 그전처럼 집에만 있고 싶지 않았다. 그렇게 지금의 일을 하게 되었다. 출근 시간이 그전보다 훨씬 늦어서 아이가 등원하는 것을 봐줄 수 있었다. 그만큼 퇴근하는 시간이 늦어서 하원을 봐줄 순 없지만 출근하지 않는 날도 있으니 내 시간도 충분히 즐길 수 있으면서 아이도 그 전보다 훨씬 많이 봐줄 수 있는 곳에서 일할 수 있게 되었다. 

 

 그전보다 나은 상황에 아이는 조금씩 안정을 찾아갔다. 하지만 여전히 하원할 때 내가 없는 것은 불편한지 아주 가끔씩 엄마가 그냥 집에 있었으면 좋겠다는 말을 한다. 그전만큼 울거나 화내지는 않지만 내가 출근하지 않는 날이면 같이 집에 있고 싶다고 하거나 출근이 늦은 나를 볼 때면 엄마 출근시간까지 같이 있다가 등원을 하고 싶다는 희망사항이 담긴 이야기를 하기도 했다. 불안함이 예전보다 줄어들긴 하였지만 엄마랑 같이 있고 싶다며 이모네 집에 가지 않을 거라며 우는 날도 없지만 아이의 하원을 온전히 언니에게 맡기는 나의 마음은 늘 불편했다. 그렇다고 언니가 눈치를 주는 것도 아니고 아이에게 뭘 못해주는 것은 더더욱 아니었다. 언니의 아이와 챙긴다면 오히려 똑같이 챙겨주었고 언니 덕분에 호강하는 일이 많을 정도로 언니는 살뜰하게 나와 아이를 챙겼다. 그런 언니에게 또 아이에게 나는 항상 죄인이 되는 기분이었고 고마운 마음과 동시에 미안한 마음이 늘 같이 들었다. 



 어려서부터 엄마는 어디 직장에 출근하는 워킹맘이었던 적이 없었다. 하지만 나의 엄마는 워킹맘 이상으로 바빴다. 내가 학교에서 돌아왔을 때 엄마가 집에서 나를 마중했던 적은 기억에 거의 없을 정도로 엄마는 아침부터 저녁까지 쉴틈 없이 바빴다. 농사일도 해야 했고 육아도 해야 했고 시어머니 봉양에 남편을 챙기는 것까지 오롯이 엄마의 몫이었다. 


 나에게 엄마의 마중이란 엄마의 시간을 사치하며 쓰게 하는 것과 같았다. 초등학교 입학식 날 엄마와 함께 손 잡고 버스 타고 하교한 것이 처음이자 마지막 엄마의 마중이었다. 집에 돌아왔을 때 집안이 텅 비어있는 것은 나에게 너무 당연한 일이었고 작은 손으로 여기저길 뒤지며 간식을 혼자 챙겨 먹는 일도 학교에서 일찍 돌아온 날 나의 밥을 혼자서 챙겨 먹는 일도 너무 당연한 일이었다. 어쩌다 집에 누가 있었던 날은 엄마가 아니라 할머니였고 할머니에게 이쁨이라는 걸 받아본 적 없는 나는 할머니의 눈에 띄어 괜히 혼나는 일이 없도록 숨죽여 방에서 나오지 말아야 했다. 

 

 그래서 어쩌면 나는 지금의 나의 아이가 하원할 때 엄마가 없으면 불편해하는 것처럼 엄마의 마중을 받는 아이들이 부러웠었던 것 같다. 등원할 때면 버스가 눈에서 안 보일 때까지 손 흔들어주던 다른 엄마들의 모습과 등교할 때면 엄마 손잡고 같이 등교하고 하교할 때면 엄마가 교문 앞에서 기다리던 친구들이 부러웠던 것 같다.  


 엄마는 바빴고 나를 마중할 수 있는 시간이 없다는 것 정도는 어린 나이에도 알고 있었는데 그 섭섭함이 쌓여서 나는 나중에 우리 아이를 꼭 마중해야겠다는 생각을 하였던 것이라 나와의 약속을 스스로 지키지 못해 불편한 마음이 더 큰지도 모르겠다. 나의 아이가 하원할 때 느끼는 마음을 나도 예전에 경험했던 마음이라 엄마가 그냥 그 자리에 있다는 것만으로도 아이에게 든든하게 힘이 되어줄 수 있음을 하지만 다른 아이들이 다 엄마 손을 붙잡고 하교할 때 나는 쓸쓸하게 가방을 메고 홀로 하교하던 그 모습이 떠올라 미안한 마음이 더 큰지도 모르겠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어쨌든 그 시절의 나는 참 잘 참아내었고 지금의 나의 아이가 그렇듯 불편하지만 적응해서 잘 커주고 있다는 사실에 안도하며 고마운 마음도 같이 드는 것은 아닐까 생각했다.  


 엄마가 바빴다는 걸 직장에 다니는 워킹맘은 아니었지만 온전히 나의 엄마 이기전에 엄마가 챙겨야 할 사람과 엄마가 해야 할 일이 많았다는 걸 안다. 나 또한 워킹맘이 되어보니 아이에게 이렇게 미안하고 고마운데 엄마도 나에게 표현은 하지 않았지만 나에게 미안하면서 고마운 마음 또한 갖고 계셨던 것은 아녔을까 어린 나이에 사랑이 고팠고 섭섭했고 엄마의 부재가 불편했던 어렸던 나는 이제 엄마를 원망하는 마음보다는 엄마를 이해하고 싶은 마음이 크다. 또 나처럼 엄마도 엄마가 하고 싶은 일이 있었을 텐데 가족에게 메여 엄마의 인생에서 엄마를 위한 시간이 없었다는 건 많이 안타깝다고 지금이라도 엄마가 하고 싶은 일을 찾아 엄마의 시간을 보낼 수 있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하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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