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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거진 엄마 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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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강낭토끼 Dec 27. 2021

엄마 일기

엄마는 남이 해준 밥이 제일 맛있다. 

 나는 결혼하기 전 신혼에 대한 로망이 있었다. 아침 햇살이 예쁘게 비추는 집에서 둘이 같이 앉아서 맛있게 밥을 먹는 거였다. 그만큼 밥은 나에게 중요한 부분이었고 실제로 아침밥을 먹지 않으면 움직이지 못하는 나로서는 아무리 바빠도 아침밥만큼은 꼭 챙겨 먹을 정도로 아침밥은 중요했다.


 만약 신랑이 아침밥을 먹지 않는 사람이었다면 나의 신혼에 대한 로망은 현실이 되지 않았을 수도 있다. 하지만 나랑 똑같이 신랑도 밥이 참 중요한 사람이었다. 밥이든 죽이든 빵이든 나처럼 아침에 무엇이라도 입안에 넣어야 했고 그렇게 속이 든든해져야 하루를 잘 보낼 수 있는 사람이었다. 그래서 나의 로망은 신혼에 꽤 즐거운 재미로 자리 잡았다. 요리를 잘하는 건 아니었지만 자취할 땐 해보지 않았던 여러 가지 요리를 시도하고 누구도 시키지 않았지만 새벽에 일어나 아침상을 차리고 뿌듯해하곤 했었다.  


 하지만 신혼의 로망은 하고 싶은걸 다 하고 그저 또 하나의 일상이 되어버렸다. 아이를 낳고 나니 밥은 그저 나에게 그냥 배를 채워주는 도구가 되어버렸고 먹는 즐거움은 사라졌다. 배고플 때 제대로 밥을 먹을 수 있는 것도 감사해야 하는 상황이 되었다. 차라리 아예 배가 고프지 않거나 그게 아니라면 알약 하나만 먹어도 이 배고픔이 사라질 수 있었으면 좋겠다고 생각하기도 했다. 나에게 배고픔은 거추장스러움이 되어버렸고 밥이 중요했던 나는 잠이 중요한 사람이 되어버렸다. 제발 단 한 시간만이라도 푹 잘 수 있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아이가 조금씩 자라면서 수면시간을 채우고 나면 예전처럼 밥이 가장 중요한 사람이 될 수 있을 줄 알았다. 하지만 밥은 여전히 밥일 뿐 아이가 밥을 먹기 시작하니 모든 반찬에서 맵고 짜고 자극적인 것들이 빠지기 시작했다. 임신하면서 피부발진으로 먹지 못했던 인스턴트들은 모유 수유하면서까지 이어졌고 모유수유가 끝나자 자연스럽게 아이 반찬 위주로 바뀌면서 나의 반찬 또한 싱겁고 무맛인 것으로 변했다. 그렇게 하루하루 밥은 그냥 배고픔을 채우는 무언가가 되어버렸을 무렵 엄마가 해주는 밥이 생각났다. 


 엄마는 매일 아침 꼭 새 밥을 해주셨다. 딱 어린이 입맛이었던 내가 매운 것도 잘 못 먹는 내가 좋아하는 잘 먹는 반찬은 아니었지만 엄마는 매일 어제와 다른 따뜻한 국에 여러 가지 반찬을 해주셨다. 아침 점심 저녁 세끼 모두 밥 국 반찬 잘 차려진 엄마의 밥이 생각났다.  


 내가 자란 우리 집은 꽤 외진 곳에 있다. 그래서 배달이 오는 메뉴라고는 자장면 밖에 없었다. 하지만 그 자장면마저도 할머니를 모시고 살다 보니 한 달에 한 번 배달해먹기 어려웠다. 어쩌다 한번 엄마가 우리 좋아하는 짜파게티를 끓이시더라도 짜장을 따로 만드신 다음 짜파게티의 면을 끓여서 만든 짜장을 부어주셨다. 라면이란 본디 간편하게 한 끼를 때울 수 있는 최고의 음식이지만 우리 집에선 라면도 간편하지 않았다. 당연히 외식도 자주 할 수 없었다. 나는 아이 한 명을 낳고 차리는 밥도 이렇게 힘들었는데 엄마는 도시락까지 싸서 다녔던 오 남매에 시어머니에 까다로운 입맛의 남편 입맛까지 평생을 맞춰 집밥을 하셨다. 


 고등학교 때 우리가 급식을 시작하면서 엄마가 급식하니 정말 편하다고 좋아하셨던걸 도시락 하나 줄어드는 건데 왜 좋아하실까 생각했었다. 하지만 내가 엄마가 되어보니 정말 좋아할 일이었다. 와이프로서 신랑 한 명 밥 챙길 때도 힘들었던 일이었다. 아이를 낳고 나니 아이 위주이든 신랑 위주이든 삼시세끼 밥을 챙겨야 했다. 내일 뭐 먹지 아침밥 뭐 먹지 점심 뭐 먹지 저녁 뭐 먹지 하며 매끼마다 하던 고민을 한 번은 안 할 수 있게 해방시켜주었던 급식이다. 도시락 반찬 고민 한 번이라도 덜하게 해 줬던 급식의 시작은 엄마에게 반가운 소식일 수밖에 없다.  


 지금의 나는 엄마와 같은 엄마지만 내가 먹고 싶은 게 있다면 당당하게 먹고 싶은 게 있다며 외식도 배달도 할 수 있다. 하지만 나와 다르게 엄마는 엄마가 드시고 싶은 게 있어도 그것이 집에서 엄마가 만들 수 있는 음식이어도 그 음식을 쉽게 상에 낼 수 없었다. 엄마가 차리는 엄마 밥이었지만 엄마 마음대로 할 수 있는 것이 없었다. 매끼의 주인은 엄마가 만들었지만 엄마가 주인이 아니었다. 


 나도 남이 해준 밥이 제일 맛있는데 엄마라고 남이 해준 밥이 안 드시고 싶으셨을 리 없다.  엄마도 드시고 싶은 것이 많았을 텐데 평생을 엄마가 드시고 싶은 것보다 시어머니가 시아주버님이 남편이 아이들이 원하는 걸 하느라 차리기만 하셨을 엄마를 생각하니 마음이 아린다. 그러면서도 시도 때도 없이 엄마 밥이 생각나는 내 마음이 참 염치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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