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도 꽃다운 여고생일 때가 있었다.
어렸을 때 엄마랑 차를 타고 둘이서만 어딜 다녀오던 길이었다. 라디오에 나오는 사연을 듣고 엄마한테 "엄마는 만약 시간을 되돌린다면 언제로 돌아가고 싶어요?" 하고 질문을 한 적이 있었다. 평소에 엄마는 내가 이런 질문을 한다고 하더라도 정성스럽게 답을 해준 적이 없어서 사실 나는 답을 기대하고 질문을 한 것이 아니었다. 근데 그날 엄마는 아주 잠깐 생각을 하시곤 "엄마는 돌아간다면 엄마의 여고시절로 돌아가고 싶어"라고 대답을 해주셨다. 엄마가 나의 이런 질문에 대답을 해준 것도 놀라웠는데 그 대답이 엄마의 여고시절이라니 나는 엄마에게서 돌아온 답이 꽤나 충격적이었는지 꽤 어렸을 때였음에도 불구하고 엄마와 이날 차에서 나누었던 이 대화를 아직까지도 생생하게 기억하고 있다.
사실 나는 엄마가 혹시나 대답을 해준다고 한다면 "엄마는 지금의 너희들이 좋아서 안 돌아가고 싶어"하는 정말 이기적인 대답을 기대했었다. 하지만 엄마는 나의 기대는 상관없다는 듯 여고시절을 이야기하셨다. 아직 고등학생도 아니었던 어린 나에게 학생이란 버겁고 무겁고 공부만 해야 하는 직책이나 다름없었는데 엄마는 왜 여고시절이라고 할까 의문투성이었다. 무엇보다 내가 기대했던 대답이 아니라 나를 만나기도 훨씬 전 여고시절이라니 엄마에게 역시 나라는 존재는 있어도 그만 없어도 그만 인가 하는 생각에 배신감이 들어 이날의 대화는 그렇게 즐거운 기억으로 남아있지 않다.
지금 나는 만약 나의 아이가 나에게 엄마는 언제로 돌아가고 싶냐고 묻는다면 나는 내가 엄마에게 기대했던 답을 단 1초의 망설임도 없이 대답할 수 있다. 난 지금의 내가 좋고 신랑이 좋고 나의 아이가 좋다. 시간을 돌린다면 지금의 내가되기까지 겪어온 모든 시간을 다시 한번 경험해야 한다는 점이 생각만으로도 너무 힘들다. 예전의 나의 일에 대해 후회는 할 수 있지만 과거로 돌아가 무언갈 바꾸고 싶은 생각은 없다. 무엇보다 내가 만약 과거를 바꾼다면 나의 아이와 지금의 신랑을 만나지 못하게 될까 봐 무섭다. 그런 점에서 나는 지금의 내가 좋고 과거로 돌아가고 싶은 생각은 없다. 하지만 이건 나를 공주님 모시듯 해주시는 시어머니와 아직도 내가 하는 모든 일에 항상 내편이 되어 나를 응원해주는 신랑과 한 명의 아이를 낳아 키우는 나의 이야기다.
앞서 여러 번 이야기했던 것처럼 엄마는 칠 남매 중에 장녀였고 결혼해서 시어머니와 시아주버님이 줄줄이 달린 집에 오 남매를 낳고 키웠다. 누가 봐도 도망갈만한 조건에 아빠가 엄마에게 상냥한 적은 단 한 번도 없었고 할머니가 엄마를 존중해준 적도 없었다. 타지에서 외롭게 시집살이를 한 엄마를 생각해보면 엄마가 결혼하고 나서부터, 고등학교를 벗어나 성인이 된 이후에 좋았던 기억이 과연 있었을까. 어쩌면 엄마가 여고시절을 말하는 건 단순히 엄마의 여고시절이 아니라 엄마의 생기가 가장 가득했던 시절, 무궁무진한 꿈을 가지고 있던 그때를 말하는 것은 아니었을까 생각하게 되었다.
임신과 출산만으로도 여자는 나다움을 잃어버리는 기분이다. 산후 우울증이란 그런 것에서 시작되는 것이 아닐까 싶을 정도로 일생에 있어 임신과 출산은 그만큼 큰 변화를 주는 일이다. 그런데 엄마는 임신과 출산을 12년 동안 다섯 번을 반복해야 했다. 엄마 자신을 돌볼 시간도 여력도 여유도 없었고 엄마를 지지해주는 사람도 없었다. 그때 엄마가 말한 여고시절은 그냥 단순히 엄마의 어린 시절이 아니었을 텐데 내 기억 속에 남아있는 엄마의 표정이 아련하고 쓸쓸했던 건 여고시절에 엄마가 기대했던 엄마 스스로의 모습이 꼭 그때의 엄마는 아니었을 텐데... 되짚어 생각해보면 여고시절로 돌아가고 싶다는 말에 나도 모르게 배신감을 느꼈던 내가 참 어리고 철이 없었구나 생각하게 된다.
이제는 엄마가 돌아가고 싶어도 돌아갈 수도 없고 엄마에게는 너무 오래되어서 기억조차 희미할 만큼 오래전 이야기 일 수 있지만 그래도 이제는 엄마가 그리워하고 돌아가고 싶던 그 추억이 있는 여고시절의 반만큼이라도 엄마가 조금 더 엄마를 돌보고 엄마가 조금 더 자유로워졌으면 좋겠다. 엄마가 앞으로 더 꽃다워졌으면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