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에 저절로 크는 아이는 없다.
나의 아이는 외동딸이다. 처음부터 아이를 한 명만 계획했던 것은 아니었다. 결혼하기 전에는 아들이든 딸이든 가리지 않고 둘만 낳아서 키웠으면 좋겠다 막연하게 세웠던 가족계획이 있었다. 하지만 결혼이 현실인 것처럼 육아 또한 현실이다. 두 명의 아이를 유산하고 세 번째로 얻은 아이였다. 나의 몸은 그만큼 지쳐있었고 나의 나이 또한 또 한 명의 아이를 낳아 키우기에는 무리가 있었다. 꼭 체력적인 문제뿐 아니라 경제적인 이유를 생각하더라도 신랑도 그렇고 나도 그렇고 한 명만 키우는 것이 우리에겐 맞는 거라 생각하였다.
시어머니는 우리의 가족계획에 대해 물으신 적이 한 번도 없었다. 시어머니께서 묻기도 전에 신랑은 한 명 낳았으니 되었다고 잘라서 이야기해버렸다. 아들 무서운 줄 아는 시어머니께서는 그 후로 둘째에 ㄷ도 입에 올리지 않으셨다. 하지만 시어머니께서 올리지 않는 이야기라고 주변에 다른 사람들이 입에 올리지 않지는 않았다. 시어머니 주변의 이모님이나 외삼촌 심지어 친정 아빠까지 육아로 지쳐서 잠도 제대로 못 자는 나를 두고 둘째를 낳으라는 말씀을 하셨다.
한 번은 온 가족이 같이 사진을 찍으러 갔다. 1남 4녀 중 넷째인 나와 결혼 안 한 남동생을 제외하고 언니들은 모두 두 명씩 아이를 낳았다. 다 같이 모이니 대가족이었다. 그런데 사진관에 걸어둔 어느 가족이 우리보다 인원이 더 많았다. 그걸 보고 아빠가 말씀하셨다. 남동생이 결혼하고 너만 한 명 더 낳으면 우리가 더 많다고! 그 자리에서 참지 못하고 결국 버럭 화를 내듯 말했다. "나의 가족계획을 왜 아빠 마음대로 정하냐고! 나는 둘째 낳을 생각 없으니 앞으로 둘째 얘기는 꺼내지도 마시라고" 버럭 하는 건 나보다 더한 아빠는 나의 이야기를 듣고 "누가 뭐랬냐?" 하면서 맞받아 버럭으로 응하셨지만 그다음부터 나에게 둘째 이야기는 꺼내지 않으셨다. 어찌 보면 결론적으로 나에게는 잘된 그날 일이었다.
앞서 엄마 일기에서 이야기한 적 있지만 나는 1남 4녀 중 넷째로 자라오면서 가족이 많아서 행복하다고 느껴본 적이 없다. 예전엔 지금처럼 언니들과 사이가 그렇게 좋은 편은 아니었고 결혼하기 전까지는 둘째 언니와 정말 지겹게 싸웠다. 지금은 언니들과 원만한 관계로 지내고 있지만 그렇게 원만한 관계가 되기까지 굉장한 고비가 있었고 그 고비마다 지치고 또 피를 말리는 느낌이었다. 그래서 크게 고비가 있을 때마다 나는 무작정 아이만 많이 낳는 건 하지 말아야겠다는 결심을 했을지도 모르겠다. 결국 난 지금까지 아이가 한 명이고 나중에 아이가 외로울 것을 생각하면 미안하긴 하지만 둘째를 낳을 생각이 지금까지도 없다. 앞으로도 없을 것이라 믿어 의심치 않는다.
그런 나에게 아직도 둘째를 포기하지 못하신 시댁 어른들은 말씀하신다. 지금이라도 아들 하나 낳으라고! 하나를 키웠기 때문에 둘째 키우는 건 쉬운 일이고 낳으면 아이들은 알아서 잘 큰다고! 세상에 알아서 잘 크는 아이는 없다. 태어나는 순간부터 엄마와 아빠의 보살핌이 있어야 하고 온전히 사랑받지 못하고 형제들 틈에서 자라나면 나 같은 뾰족한 인격이 자라나게 된다는 걸 누구보다 잘 알고 있다. 내가 경험해 온 길을 우리 아이에게 물려줄 생각은 단 1도 없기에 난 시댁에서 들을 둘째 이야기는 귀에 담아두지도 않고 흘려버리게 되었다.
그럼 1남 4녀를 낳은 엄마는 어땠을까. 엄마는 원래 두명만 낳고 싶었다고 했다. 첫째 언니와 둘째 언니가 연년생이고 둘째 언니와 셋째 언니 사이에 3년이라는 텀이 있다. 엄마는 둘째 언니를 낳고 나서 아이를 그만 낳고 싶은 마음에 할머니와 아빠 몰래 피임약을 드셨다고 했다. 그런 엄마의 노력에도 불구하고 셋째 언니를 임신하셨고 연이어 나를 임신하셨다. 나를 낳고 난 후에도 아들에 대한 열망으로 할머니는 엄마에게 계속된 요구를 하셨고 엄마는 그렇게 나를 낳고 5년이란 시간이 흘러 남동생을 낳은 뒤 임신과 출산에 끝을 내실수 있었다.
엄마의 몸으로 임신과 출산을 진행하지만 엄마의 계획이라는 것은 1도 반영되지 않는 가족계획이었다. 오로지 아들에 대한 열망으로 할머니는 엄마에게 아들만 요구하였고 엄마는 맏며느리라는 이유로 할머니의 요구를 당연하듯 받아들여야 했다. 아이는 낳는 순간부터 저절로 알아서 큰다는 말에 따라 엄마의 아이는 엄마가 집에 있음에도 불구하고 엄마 손을 떠나 할머니 손에 크는 아이가 되었다. 저절로 크는 아이라는 건 없고 할머니 손에 크더라도 보호자의 손이 필요한 건 확실한 일인데 아이가 저절로 큰다는 생각은 누구로부터 나온 것인지 누구로부터 시작된 것인지 그 누구를 좀 찾고 싶다. 그분은 저절로 컸는지 그분이 그래서 제대로 컸는지를 확인하고 싶은 심정이다.
가족계획이라는 건 부부의 계획인데 엄마는 부부의 계획이 아니라 할머니의 계획 아래 1남 4녀를 낳았다. 나처럼 단호하게 거부할 수도 없었고 누군가에게 나의 가족계획을 왜 강요하냐고 하며 호통을 칠 수 조차 없었을 엄마를 생각하니 마음이 아리다. 사실은 나를 낳으며 엄마도 힘들었다고 임신도 출산도 그만하고 싶었다고 엄마도 낳고 싶어 낳은 게 아니었다고 엄마의 몸도 많이 지쳐있었다고 그래서 온 애정을 다해 아이를 키우기에는 엄마가 많이 지쳐있었다고 얘기하고 싶었을 거란 생각을 해보았다. 엄마는 분명 엄마의 계획과 다르게 임신과 출산을 반복하였으니까. 그런 걸 분명 머리로는 다 알고 있으면서도 엄마에게 섭섭한 걸 보면 나는 아직도 애정이 부족한 초라한 어린아이라는 생각이 든다.
하지만 한편으론 엄마가 나를 낳은 순간부터 나를 부정하였어도 나를 낳아주셔서 감사하다고 덕분에 지금 나를 누구보다 사랑해주는 사람을 만나 사랑하는 나의 딸을 만날 수 있었다고 지금의 내가 있을 수 있었던 건 어쨌든 엄마 덕분이라는 말을 하고 싶다는 생각을 하는 거 보면 나도 마냥 어린아이로 투정만 부리고 있는 것은 아니었구나 엄마가 되어 엄마를 조금씩 이해하고 성장하고 있고 나라는 걸 깨닫게 된다.
엄마도 엄마가 원한 임신과 출산은 아니었지만 언젠가 엄마가 낳은 아들 딸이 있어 든든하다고 낳을 땐 힘들었지만 엄마의 계획에 따라 낳은 것도 아니고 저절로 크는 아이는 없다는 것도 아니라는 걸 알게 되었다고 그래도 아들딸들 덕분에 행복하다는 생각을 하는 날이 오면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