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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거진 엄마 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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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강낭토끼 Nov 21. 2021

엄마 일기

엄마는 아프면 눈치가 보인다.

 나는 원래도 건강한 체질이 아니었다. 잔병치레가 많았고 어려서부터 전염병이 돌면 그냥 안 지나치고 꼭 걸리고 말았다. 이런 나를 두고 아빠는 "그것 좀 안 걸리고 가는 법이 없네"라는 말씀을 하실 정도였다. 하지만 이런 잔병치레도 어느 순간부터 안 하게 되었다. 아니 정확하게는 안 하는 것이 아니라 무시하게 되었다. 내가 나를 돌보는 시간보다 신랑과 딸내미를 돌보는 것에 익숙해졌다.  

 

 자연스럽게 내 몸에는 신경을 안 쓰게 되었다. 아니 못쓰게 되었다. 내가 나의 건강을 가장 신경 썼던 시기가 언제냐고 묻는다면 임신기간이 될 거 같다. 임신 기간 동안 편안했던 것은 아니지만 그래서 다시 임신과 출산을 경험하겠냐고 물으면 그렇게 하고 싶지 않다고 말하겠지만 임신기간 동안 좋았던 점 딱 한 가지가 바로 그것 아니었을까 싶었다. 나의 몸상태가 아이와 연결되어있다 보니 오로지 나에게 투자하고 나의 건강에 신경 썼다. 

 

 출산과 동시에 나의 모든 신경은 자연스럽게 아이에게 옮겨졌다. 물론 신랑도 포함이다. 엄마가 되는 순간부터 나는 나보다 아이의 건강을 챙겼다. 기침 한번 하면 병원에 데리고 가고 콧물 한번 흘리면 걱정하고 열나면 가슴앓이하며 아이 옆에서 밤샘하는 일이 늘어났다. 시어머니께서는 언제나 이런 나를 두고 "네가 건강해야 온 가족이 평안한 거니까 너의 건강부터 챙겨라"라고 말씀해주셨다. "네" 하고 대답하지만 나도 내가 대답만 할 뿐 나의 건강을 지나치고 있다는 걸 어느 순간 깨달았다.

 

 가장 큰 예가 나의 치아상태였다. 출산을 하면서 무너진 나의 치열 결혼 전 그래도 몇 번씩 치과에 다니며 그런대로 쓸만하게 만들어두었던 나의 치아가 하나 둘 무너지기 시작하면서 이제는 정말 발치하고 임플란트를 하지 않으면 안 되는 상황이 되었다. 그래서 치과에 가서 전체적으로 치아를 손봐야 하는 상황이 왔다. 신랑에게 아무래도 치과에 다녀와야겠다고 이야기했지만 쉽게 이야기할 수 없었고 눈치가 보였다.  그렇다고 신랑이 내가 돈을 쓴다고 뭐라고 하는 사람이 아니다. 오히려 내가 뭘 하겠다고 하면 적극적으로 지지해주고 더 좋은걸 하게 해주려고 하는 사람이다. 

 

 하지만 난 눈치가 보였다. 그렇다고 내가 일을 하지 않는 건 아니다. 물론 다시 일을 시작한 건 몇 년 안 되는 시간이긴 하지만 신랑과 결혼해서 지내는 동안 일을 한 시간보다 일을 쉰 시간이 많기는 하지만 신랑은 그런 걸로 눈치 주는 사람이 아니다. 내가 혹시라도 "그때 쉬지 말고 일했어야 했어"라는 식의 말을 하면 신랑은 "그때 쉬었기 때문에 지금의 우리가 있는 거고 지금의 딸내미가 있는 거다"라는 말을 하는 사람이다. 그리고 "언제라도 쉬고 싶으면 쉬라고 지금 당장 그만두어도 나는 찬성"이라고 하는 사람이다. 


 그렇다. 아무도 눈치 주지 않는다. 그냥 나 스스로 눈치 보인다. 꼭 돈이 문제가 아니다. 엄마가 되는 순간 나의 시간은 온전히 나의 시간이 되지 않는다. 나의 시간은 누구도 시키지 않았지만 아이와 함께 가족과 함께 나누어 쓰는 시간이 되었다. 그래서 아파도 눈치가 보인다. 엄마는 아프다고 편히 누워있을 수 없다. 밥은 먹었는지 집안일은 잘 돌아가고 있는지 내가 없어도 잘 돌아가는 회사와 다르게 내가 없으면 쓰레기통이 되어버리는 집안을 그냥 둘 수가 없어서 엄마는 아픈 몸을 이끌고 움직이다. 그러다 문득 엄마가 생각났다. 그 옛날 엄마는 어땠을까. 꼬장꼬장 한 시어머니에 시아주버님들 거기에 아이들까지 많았으니 엄마는 더 눈치가 보였겠구나. 엄마는 얼마나 외로웠을까 생각하며 오늘도 엄마가 되어서야 엄마를 이해한다. 그렇게 나는 오늘도 또 엄마만큼 엄마가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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