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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거진 엄마 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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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강낭토끼 Nov 23. 2021

엄마 일기

엄마도 엄마의 딸이다.

 사실 나는 엄마랑 그렇게 친하지 않다. 예전엔 내가 엄마를 어려워했는데 지금은 오히려 엄마가 나를 어려워한다. 나만 그렇게 느끼는 것이 아니라 언니들도 엄마가 나를 어려워하는 걸 느끼는 걸 보면 아마 엄마가 실제로 나를 어려워하는 것 같다. 그래서 나는 친정엄마 찬스 친정 집에 가면 뭐든 아무것도 안 하고 그냥 누워만 있다 온다는 주변의 말들이 이해되지 않는다. 그저 내가 누려본 적 없는 특권으로 보인다. 


 결혼해서 나이 들어 생각해보니 내가 상처 받았던 어린 시절의 엄마는 엄마 스스로를 돌볼 시간이 없었다. 엄마는 시아주버님이 줄줄이 결혼도 안한집에 시집을 왔다. 며느리 사랑은 시아버지라고 하던데 며느리 편 들어줄 시아버지는 안 계신 시어머니와 시아주버님만 있는 집에 시집을 왔다. 지금으로서는 설명만 들어도 여자가 도망갈만한 조건의 결혼이다. 엄마랑 아빠는 선을 보아서 결혼하셨는데 아빠 말로는 선보는 날 엄마가 아빠를 오랜 시간 기다린 것에 반해서 결혼하자고 했다고 했다. 나 같으면 그때 기다리지 않고 그냥 도망갔을 텐데 지금 같으면 차라리 혼자 살고 말지 안 해도 그만인 결혼이다. 

 

 아빠는 전형적인 가부장적인 아빠다. 아빠 말이 곧 법이고 아빠가 하고자 하는 일에는 우린 함부로 토 달면 안 되는 사람이다. 그런 아빠 말로는 엄마가 우리 오 남매를 낳고 많이 힘들었으니 안 도와줄 수 없었다고 정말 많이 도와줬다고 했다. 하지만 지금 내가 보는 눈에 아빠가 도와준 건 커녕 방해나 안 했으면 다행이라는 생각을 한다. 아빠는 모르겠지만 나는 그런 아빠가 답답하고 싫어서 어려서부터 나의 이상형은 아빠 안 닮은 사람이었다.  

 

 아무튼 그 시절의 엄마를 생각해보면 엄마는 참 엄마 스스로를 돌볼 시간이 없었겠구나 싶다. 스스로를 돌볼 시간은커녕 우리에게 마음을 내어 줄 여유조차 없었을 거다. 엄마가 그렇게 살가운 성격도 아니고 또 그렇다고 애교가 있는 사람도 아니었다. 그냥 묵묵히 그저 묵묵히 성실하게 엄마의 할 일을 다해내는 그런 사람이었다. 그런데 그 큰 밭일은 물론이고 집안일에 오 남매 육아에 시어머니를 모시고 시아주버님들 뒤치다꺼리까지 엄마는 그 모든 걸 다 해냈다. 그렇게 엄마는 주변을 돌보지 못했고 엄마 스스로도 돌보지 못했다. 엄마에게 여유라는 건 사치나 다름없었다. 

 

 그랬다. 그 시절의 엄마를 생각해보면 내가 엄마에게 받은 상처들은 어쩌면 당연한 것들이 아니었나 싶다. 사랑받는걸 너무 원했던 어린 꼬마에게 사랑을 끝없이 확인해주고 유독 할머니한테 미움을 많이 받았던 넷째 딸의 편을 들어주기에 엄마는 여유가 너무 없었다. 아니 사실은 힘이 없었다. 엄마는 주변의 상처를 보듬을 만한 여유도 없었고 엄마 스스로의 상처도 다독여줄 상황이 아니었다. 

 

 우리가 커가면서 엄마는 조금씩 여유를 찾았다. 그렇게 엄마는 주변의 상처를 조금씩 돌아보기 시작했다. 우리에게 조금씩 의지하기도 했지만 내가 컸다는 이유로 이제 엄마가 여유가 생겼다는 이유로 나의 닫힌 마음의 문을 억지로 열려고 하는 엄마가 부담스러웠다. 마음을 나누기엔 난 어려서부터 너무 상처 받았고 엄마에게 기대고 싶은 마음이 또 엄마가 나에게 기대는 것 또한 싫었다. 

 

 엄마의 상황을 이해하지만 어려서 몰랐던 엄마의 일들을 다시 돌아보면 그래 그럴 수 있는 일이야 하고 이해할 수 있는 일이라고 하겠지만 섭섭하고 서운한 마음으로 가득 차 있는 나는 아직도 철부지 어린 소녀인가 보다. 언젠가 신랑에게 이런 이야기를 한적 있다. "사랑은 내리사랑이라고 하는데 나는 엄마한테 한 번도 사랑이란 걸 받아본 적 없어 우리 딸에게 그런 사랑을 주지 못할까 걱정이 된다"는 "그래서 우리 딸도 내가 엄마한테 느꼈던 섭섭하고 서운한 감정을 가지고 커버릴까 걱정된다"는 이야기를 했다. 그때 신랑은 진심으로 나의 상처를 보듬어 주며 이야기했다. "당신이 어려서 받지 못한 사랑까지 내가 채워주려고 당신과 결혼한 거고 넘치도록 사랑받는다는 느낌 들 수 있도록 지금보다 더 사랑해주겠다"라고 그 이야기를 듣고 신랑 품에서 얼마나 서럽게 펑펑 울었는지 엄마의 딸은 그렇게 엄마 품에서 울지 못하고 신랑에게서 어린 시절 상처까지도 치유받고 있다는 걸 엄마는 평생 모르겠구나 했다. 

 

 이렇게 조금씩 신랑을 통해 나의 상처들을 조금씩 치유해주다 보면 언젠간 엄마가 지금 나를 어려워하는 것은 사실은 어렸을 때 내 편한 번 들어주지 못해서 미안해서라고 그때의 미안함이 쌓이고 쌓여 지금 너를 어떻게 대해야 하는지 모르겠다는 이야기로 들리는 날이 있을지 모르겠다. 나도 엄마의 딸이니까 엄마도 엄마의 딸이니까 엄마도 사실은 사랑이라는 걸 몰라서 그런 거였다고 엄마도 엄마가 처음이라 엄마의 엄마가 하던 대로 했던 거라고 마음으로 하는 이야기를 내가 이해하는 날이 오기를 기대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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