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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거진 엄마 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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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강낭토끼 Nov 30. 2021

엄마 일기

엄마도 엄마를 긍정하고 싶었다. 

 나는 1남 4녀 중 넷째로 태어났다. 할머니의 말에 따르면 내가 태어났을 때 엄마는 내가 딸인 것을 알고 할머니 무릎에 엎어져 또 딸이라며 엉엉 울었다고 하셨다. 그랬다. 그렇게 태어나는 순간부터 나는 엄마에게 눈물인 딸이었다. 내가 넷째 딸이라서 그런지 아니면 내 밑으로 남동생이 태어나서 그런지 알 수 없지만 할머니는 참 나를 많이 미워했다. 남동생이 먹다 남은 밥을 먹더라도 너는 고맙게 여겨야 하는 거라는 말을 할 정도였다. 내가 밭에 나가서 밭일을 돕는 건 당연한 일이었고 남동생이 어쩌다 한번밖에 나와서 따 놓은 고추 바구니를 옮기는 건 장한일이 되었다. 

 

 어려서 찍은 사진을 보면 언니들도 남동생도 다 있는 백일 사진이 나만 없다. 지금은 닮았다는 이야기를 많이 듣지만 어려선 내가 하도 작고 말라서 그런지 내가 보기에도 언니도 엄마도 닮지 않은 외모에 또 구박하는 할머니에 사실은 나를 어디서 주워온 것은 아닐까 누가 나를 버리고 가서 어쩔 수 없이 키우고 있는 건 아닐까 하는 생각도 했었다. 그 정도로 할머니는 나를 많이 괴롭혔다. 


 어려선 날 괴롭히는 할머니만 미웠다. 그런데 머리가 조금 크고 보니 엄마 아빠도 이해되지 않았다. 왜 내가 힘들어할 때 내 편을 한 번도 들어주지 않았던 걸까. 그래 아빠는 원래 할머니 말이라면 당연히 그런 줄 아는 분이라고 하지만 엄마는 적어도 엄마도 딸이면서 그냥 여자라는 이유로 그것도 내가 태어나고 싶어서 태어난 것도 아닌 나는 내가 넷째로 태어나고 싶어서 태어난 것이 아닌데 왜 내 편을 들어주지 않았던걸까 하는 의문이 들었다. 그렇게 사춘기를 보냈다. 말도 못 하게 뾰족해졌고 원래도 예민했던 나는 더 예민해졌다. 이런 나를 두고 할머니는 상견례 때 오셔서 우리 시어머니한테 "저거 너무 뾰족해서 결혼도 못하고 살 줄 알았더니 이렇게 멀쩡한 신랑 데리고 와줘서 다행이다"라고 하셨다. 그때도 엄마는 아무 말도 하지 않으셨다. 엄마는 한 번도 내편이었던 적이 없었다. 


 결혼해서 임신하고 아이의 성별이 딸이라는 걸 확인하였을 때 나는 덜컥 겁이 났었다. 딸이었다. 어려서부터 딸이라는 이유로 구박을 받았던 나는 나중에 내가 딸을 낳으면 누구보다 귀하게 키우겠다고 다짐했었다. 그런데 그건 나의 생각이고 딸이라는 이유로 어머니께서 실망하실까 신랑도 내심 아들을 바랐던 것은 아닐까 걱정이 앞섰다. 하지만 괜한 걱정이었다. 나는 나의 할머니로부터 할머니들은 전부 아들을 좋아한다고 엄마도 속으론 아니었지만 아들을 낳고 싶었다는 고정관념이 생겼었나 보다. 


 어머니께서는 내가 임신했다는 소식을 접하셨을 때부터 성별은 아예 관심 가지지 않으셨다. 오로지 나의 안부가 걱정이셨고 태어날 아기의 안부가 중요하셨다. 신랑 역시 마찬가지로 아들이든 딸이든 우리에게 온 귀한 아이라 귀하게 키우고 싶다고 당신이 딸이기에 나와 만나 이렇게 귀한 아이를 얻을 수 있었다고 말해주었다. 어릴 때부터 나는 왜 아들로 태어나지 못했을까 하는 나를 부정하며 자라온 순간들을 이렇게 엄마가 되면서 긍정하게 되었다. 엄마도 아빠도 해주지 않았던 긍정을 신랑과 시어머니가 해주셨다. 

 

 나 자신을 긍정하기 시작하니 주변이 보이기 시작했다. 뾰족했던 나의 마음이 조금은 둥글게 바뀌었고 나의 상처에 갇혀 닫혔던 마음이 주변을 돌아보게 되었다. 그러면서 7남매 중 첫째였던 엄마도 사실은 첫째 딸로  짊어지고 있었던 무게와 맏며느리로 지고 있던 짐으로 아들아 들 하게 되었던 건 아니었을까 나의 어린 시절을 다시 한번 되짚어보게 되었다. 엄마가 딸로 살아보니 엄마가 살아온 시대에 여자에게 주어진 삶은 우리가 살던 세대와 다를 것이고 엄마는 큰집의 맏며느리로 할머니를 모시고 살며 내편을 잘못 든다면 다음에 더 크게 혼날 내가 걱정이라 쉽사리 나서지 않았던 것은 아닐까 짐작해보았다. 엄마는 온전히 나의 엄마인 것은 아니었으니까 오 남매의 엄마이며 시어머니와 결혼 안 한 시아주버님을 모시고 사는 큰집의 맏며느리였으니까 그랬을 수도 있겠구나 엄마의 사정을 들여다보게 되었다. 어쩌면 엄마도 엄마 자신을 긍정하기엔 여유가 없었고 엄마는 그저 하루하루 버티며 하루가 지나가길 바라기에도 벅찬 날이 아니었을까 그렇게 하루를 버티다 보니 지금이 된 것은 아닐까 생각하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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