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행 일기 - 강릉편
그냥 그런 날이 있다. 바다가 보고 싶다하고 유난히 바다가 생각나는날. 바다는 내가 어떤 마음으로 가더라도 모든걸 다 받아주는 기분이라 우울할때도 기쁠때도 아무 생각 없을때도 늘 그자리에서 시원하게 나의 마음을 다 읽어내고 받아주는 바다가 보고 싶은 그런 날이 있다.
그런 날엔 강릉에 간다. 인천에 살땐 바다 보고싶다 생각날땐 영종도를 찾았다. 그런데 강원도로 이사오고 나니 강릉은 나에게 마음의 거리로 엎어지면 코 닿는 거리가 되었다. 강릉에서 인천으로 오갈땐 적어도 4시간은 생각하고 움직여야하는 거리가 강원도로 이사오고나니 아무리 차가 막힌다고 하더라도 한시간 삼십분이면 가는거리가 되었다. 그러다보니 갑자기 바다가 보고 싶은날엔 강릉을 당연히 다녀오게 되는 곳이 되었다. 그래서 강릉은 나에게 바다를 생각하게 되는 도시다.
이날도 그랬다. 그 좋은 바다를 매일 보면 좋겠지만 한동안 바다보러 다녀오질 못했네 하는 생각이 들었던 날이었다. 바다를 못봐서 그런가 나가고 싶어서 그런가 알수 없지만 온몸이 외출하고 싶어서 무슨 핑계거리가 있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에 근질근질 했다. 가려운 곳이 있으면 긁어야지하며 신랑에게 바다보고 싶다고 한마디 던졌다. 나는 그냥 바다라고 한마디 했을 뿐인데 우리의 목적지는 당연히 강릉으로 정해졌다. 그만큼 강릉은 바다를 보러 다녀오기 좋은곳이다. 나만큼 나가 돌아다니는거 좋아하는 신랑도 바다라는 한마디에 강릉가자며 당장 나가자고 했다.
당일치기여행의 묘미는 준비하는 시간이 상당히 소란스럽고 정신 없다는 것이다. 미리 준비하지 않은 여행이니만큼 준비가 철저하지 못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여행이라는것 자체가 나를 설레게 한다. 사실 당일치기여행을 즐기는 이유는 내가 많이 예민하다보니 잠자리를 많이 가린다는데 있다. 보통 1박 2일이나 2박 3일 여행을 떠난다고 하면 아침부터 저녁까지 꽉찬 일정을 소화해야한다. 그렇게 피곤하게 움직이고나면 푹 잠들법도 한데 잠자리가 예민하다보니 아무리 피곤해도 잠자리가 바뀌면 제대로 잠을 이루지 못한다. 이런 나의 모습을 아는 신랑은 운전자가 조금 피곤하더라도 토요일 새벽에 출발해서 밤 늦게 도착하는 당일치기 여행을 선호한다. 그렇게 하고 나면 일요일에는 늦게까지 늦잠도 잘 수 있으니 하루를 버는 기분이라 강릉처럼 가까운곳이라면 당일치기 여행이 더 편하다고 했다.
하지만 이날은 다른 날과 다르게 급작스럽게 출발한 여행이었다. 평소보다 늦게 아침밥 먹고 출발해서 강릉 가는 길이라 막히는 차안에서 점심을 어떻게 할것인가 고민했다. 아이들이 휴게소 들르는것을 좋아해서 평소라면 강릉 도착하기전 마지막 휴게소를 들렸겠지만 전날 금요일이라고 늦게까지 놀다 잠든 아이들이 차안에서 숙면을 취해주었다. 아이들이 잠들어주니 얼마나 평화로운지 그 평화가 조금이라도 오래 갔으면 좋겠다는생각은 아이 키우는 부모라면 다 똑같이 공감하는 상황일거다. 잠잘때가 제일 예쁜 내 아이들이다. 그래서 그 평화가 조금이라도 오래 갔으면 좋겠다는 생각에 휴게소는 패쓰하고 급하게 맛집을 검색했다.
그동안 강릉을 다녀 온 횟수가 적지 않다보니 우리를 거쳐간 맛집도 많다. 하지만 그 아는 맛집들 중 아이들이 좋아하는 분식을 판매하는 맛집은 떠오르지 않았다. 휴게소 들르면 라면먹고 우동먹을거라며 들떠서 잠든 아이들에게 메뉴마저 포기하게 만들수는 없어 강릉 분식맛집을 검색했다. 눈길을 끄는 여러 분식집들 중 분식집이지만 깨끗하고 깔끔하다는 평이 있는곳이 눈에 들어왓다. 바로 여기 언니네 떡볶이였다. 위치가 강릉 시내로 확인되어서 시내 중앙으로 들어가는건가 했더니 내가 아는 위치가 맞다면 시내 중에서도 조금 외곽에 빠져나와있는곳이 위치해있었다. 하지만 우리가 방문했던 언니네떡볶이 분명 오기전에 영업 중이신지 확인까지 했는데 문이 닫혀있었다. 얼마나 당황스러웠는지 신랑은 전화로 다시 한번 확인해보라고 했다. 알고보니 우리가 찾아갔던곳은 이전하기 전 위치였고 이전한곳은 우리가 방문했던곳의 바로 옆 건물이었다. 바로 옆인데 당황해서 시야가 좁아지니 찾지 못하고 앞을 맴돌았던것이었다. 이래서 사람은 시야가 넓어야하는거라며 한바탕 웃음속에 가게로 들어섰다.
가게에 들어서면서부터 신기했던점은 분명 분식집인데 분식집 분위기가 아니라는것이었다. 분식집 특유의 기름냄새도 나지 않았고 앞에 준비되어있는 음식들도 상당히 깔끔하고 깨끗했다. 가게 구석 구석에는 옛날 할머니방에서 보았던 추억돋는 물건들이 보였다. 추억을 찾는것도 여행의 재미라고 생각하는 나에게 이곳은 참 재미있는 곳이었다. 하지만 추억여행도 식후경이다. 오기전부터 아이들이 정해놓은 메뉴와 나의 메뉴를 신중하게 선택하였다.
잠깐의 기다림 후에 우리가 주문한 음식이 차례로 등장하였다. 급하게 검색하여 기대할 시간도 없이 방문한 식당이 맛집이면 입이 더욱 즐거워진다. 이곳 언니네떡볶이가 딱 그랬다. 신랑은 처음에 나의 검색 능력을 믿지 못하고 어딜가든 맛 없을 수 없는 기본으로 보장된 맛이 있는 라면을 주문했다. 하지만 신랑은 곧 후회했다. 언니와 내가 주문한 다른 메뉴들을 맛보더니 여긴 맛집이라며 다른 메뉴를 주문했어야 했다고 말했다. 그렇다고 라면이 맛이 없다는건 아니었다. 그만큼 다른 메뉴들이 맛있어서 언제 다시 오게 될지 모르는 이곳의 다른 메뉴들 맛이 궁금하다고 했다. 그래서 마지막에 마지막까지 튀김을 추가 주문하면 가장 마지막에 젓가락을 내려놓았다. 신랑만 반응이 좋았던것이 아니라 아이들도 언니도 참 맛있게 입이 즐거웠던 이곳은 앞으로도 강릉에 오게 된다면 단골이 될거 같았다. 새벽 3시까지 운영하신다고 했으니 만약 숙소를 이용하게 된다면 포장해서 야식으로 먹는것도 참 좋을거 같다는 생각하였다.
점심먹고 우리가 찾은곳은 안목해변이었다. 오늘의 목적이 바다를 보는것인만큼 경포대로 가도 괜찮지만 지난번 겨울이 시작하는 길목에 찾았던 안목해변에 대한 기억이 좋아서 다시 안목해변을 찾았다. 지난번에 왔을때도 가족단위 관광객과 연인들이 많이 보였는데 이번에 찾았을때도 마찬가지로 주차자리를 찾기 어려울 만큼 북적거리는 모습을 볼 수 있었다. 이럴때만큼은 어려운 지금의 시국도 잠시 잊게 된다.
안목하면 사실 떠오르는건 강릉의 명실상부한 커피거리다. 이곳에 오면 당연히 카페를 간다는것으로 알고 있는 아이들에게는 미안하지만 점심을 푸지게 먹어서 그런지 당장 카페로 들어가고 싶지 않았다. 우리 중 누구도 배고프다는 생각도 무언가 디저트 종류를 먹고 싶다는 생각을 하지 않았다. 그래서 정말 오랜만에 바닷가를 걸었다. 모래사장을 아무 이유 없이 걷고 있으니 바다에 왔구나를 실감하게 되는 순간이었다.
이유도 목적도 없이 모래사장을 걷고 있는 엄마와 다르게 딸아이 모래사장 곳곳을 파헤치며 조개껍데기를 주워 주머니에 넣었다. 작은손으로 얼마나 부지런히 주워 넣었는지 금새 주머니에서는 절그럭절그럭하는 소리를 냈다. 지난 강릉여행에 들렀던 경포대에서 주웠던 조개껍데기도 책상 위 종이컵에 곱게 모셔두었는데 이번 조개껍데기는 지난번 보다 더 많아 종이컵에 넣는다면 넘칠 지경까지 열심히 주웠다. 신발이 모래 투성이가 되도록 주머니에 넣고 또 넣으면 부지런히 엄마를 따라오는 모습이 기특하기도 하면서 바다에만 오면 무조건 신발을 적시던 어릴적 모습이 떠올라 마음이 몽글몽글해졌다.
열심히 안목해변의 모래사장을 따라 걷다보니 강릉항까지 오게 되었다. 사실 강릉항이 안목해변하고 이렇게 이어져있다는걸 얼마전에 알았다. 안목해변에 있으니 안목항으로 알았던 이곳은 강릉항이었고 여객선도 다닌다는것을 이곳에서 울릉도와 독도까지 갈 수 있는 배를 탈 수 있다는것도 이번에 알게 되었다.
여객선 옆으로는 외국의 분위기를 내는 요트들이 정박되어있는데 그것보다 조금 더 멀리로는 어촌하면 떠오르는 풍경들을 볼 수 있었다. 작은 배들이 정박해있고 배가 있는곳에는 빠질 수 없는 회센터도 보였다. 강릉에서 회를 먹으려면 꼭 주문진에 가야하는거라고 생각했는데 주문진 아니고 강릉항에서도 회를 먹을 수 있엇다. 물론 회를 좋아하지 않다보니 직접 이용해본적은 없지만 일단 내가 몰랐던곳을 안다는 사실만으로 그동안 그렇게 다녔던 안목해변 한쪽에 이런 모습이 있다는걸 이제서야 알았다는 사실이 놀라웠다.
강릉항은 안목해변의 모래사장과 다르게 모래를 밟지 않고 항구를 따라 걸을 수 있다보니 조금 더 걷기 편한길이었다. 눈을 어디로 두더라도 바다를 눈에 담을 수 있다는 점도 좋았고 아이들의 보챔만 없었더라면 조금 더 멀리 보이는 등대까지도 걷고 오고 싶을 정도로 멍하니 바다를 바라보며 쉼 없이 걷기 좋은곳이었다. 안목해변을 그동안 그렇게 방문했어도 여기 강릉항까지 걸은것도 강릉항에 정박해있는 여객선을 확인한것도 이번이 처음이라 더욱 좋은 느낌이었다. 또 운좋게 한쪽에서 요트를 이동하는 차량을 구경할 수 있는 기회도 있었다. 바다에 정박해있는 요트를 차량에 연결하여 옮기는 과정을 눈으로 직접 볼 수 있는 일이 몇번이나 있을까 그런 좋은 기회를 놓치고 싶지 않아 바다에서 더욱 눈을 떼지 못하고 있었다.
하지만 이런 나와 달리 걷는거라면 질색인 조카는 어서 빨리 카페에 들어가자며 벌써 아까부터 짜증을 내고 있었다. 아이들 데리고 다니는 여행은 아이들의 보챔으로 일정이 조정되는 경우가 많다. 이번 역시 그랬다. 아이들 달래는것도 한계가 있어서 결국 등대까지 걷지 못하고 카페 한곳을 선택해서 들어아야했다.
지난번에 방문했던 카페도 참 좋았는데 그곳은 무슨 이유에서인지 우리가 앉았던 자리가 운영중지라고 했다.그래서 다른곳을 찾았다. 아이들이 앉기 좋은 자리를 찾다보니 오션뷰에서는 멀어졌지만 그래도 테라스만 나가면 볼 수 있는 바다가 있는 카페라 오늘은 뷰를 놓쳤지만 디저트는 챙겼다고 얘기했다. 처음부터 빵을 먹을 생각으로 카페에 들어간것은 아니었지만 워낙 빵을 좋아하다보니 예쁘게 진열되어있는 빵을 그냥 지나칠수 없었다. 달달한 몽블랑에 커피 한잔을 맛보며 추위를 녹였다. 날씨만 조금 더 따뜻했다면 테라스에서 바다를 마음껏 느꼈을테지만 그렇게 따뜻한 날씨였다면 우리에게 허락된 자리도 없었을거란 생각에 피식 웃게 되었다.
카페를 다녀왔더니 저녁을 강릉에서 먹고 올라오기엔 시간이 애매했다. 집으로 돌아오는길에 식당을 들를까하다 아이들이 돌아오는길에 또 숙면을 취해주니 강릉 갈때와 마찬가지로 평화로운 시간을 깨고 싶지 않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강릉에 갈때와 다르게 길 막히는것도 없이 아주 뻥뻥 뚤려서 돌아오는길은 더 짧게 느껴졌다. 여행을 마치고 돌아오는 길은 항상 아쉽다. 출발하는날 설렘으로 가득차서 생기 넘치는 모습은 볼 수 없지만 그래도 간지러운곳을 긁고 난 후의 개운함은 있으니 그것만으로도 만족스러운 하루였다. 갈때마다 참 반갑고 갈때마다 반갑게 새로운 모습으로 나를 반겨주는 강릉에 올해도 작년만큼 아니 작년보다 더 많이 방문할 수 있었으면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