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행 일기 - 여주편
여주는 내가 사는 지역에서 30분만 이동하면 도착할 수 있는곳이다. 30분이면 강원도에서 경기로 지역 이동이 가능한걸보면 경기도가 굉장히 크다는걸 다시 한번 실감하면서 내가 사는 지역이 그만큼 지역간 이동성이 좋은곳이라는것을 느끼게 된다. 신랑은 이런점에서 지금 사는 곳으로 이사를 해온것을 아주 만족해 하고 있다. 삶의 질이 달려진 기분이라는건 주말 나들이 이후 가장 크게 느끼는것 같다.
보통 여주를 간다고하면 주변에선 아웃렛에 쇼핑하러 가는거냐고 했었다. 그만큼 지금까지 여주를 방문하는 목적은 늘 아웃렛이었다. 하지만 여주는 아는사람은 다 알겠지만 아웃렛말고도 가볼곳이 참 많은곳이다. 이번에 방문하고 나서야 알았던 사실이지만 여주에는 신라시대에 창건한 절도 있었다. 다녀오고 나서야 알게 된 사실이라 이번 여행에서는 방문해보지 못했지만 새삼스럽게 이번 여행을 통해 여주가 가깝다는 사실을 우리가 다녀왔던곳 말고도 방문해볼곳이 많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으니, 앞으로 여주를 조금 더 자주 가게 될거 같은 예감이었다.
이번에 여주를 방문한 이유는 세종대왕릉을 방문해보기 위해서였다. 매번 가자는 이야기는 나왔지만 어쩌다보니 늘 순위에서 밀려나서 못가보았던 그곳에 이번에야말로 방문해봐야겠다며 당차게 계획하였다. 늘 같이 여행 다니는 언니네는 이번에 시댁에 가게되면서 정말 오랜만에 셋이서만 다녀 온 나들이었다.
전날 언니와 밥 먹으면서 우리는 내일 여주에 갈거라는 이야기를 했었다. 언니는 여주에 쇼핑하러 가느냐며 예상했던 반응을 보였고, 언니가 내 역사 아니라서 관심 안갖는 세종대왕을 뵈러 가려고 한다고 했다. 언니는 내 말에 나도 세종대왕은 알아하고 이야기하길래 언니가 좋아할만한 소식을 하나 더 말해준다면, 세종대왕님은 사실 잘생겼었어 라고 이야기해줬더니, 다음에 자기도 데리고 가라고 했다.
역사시간에 왜 선생님들은 왕들이 잘생긴건 얘기해주지 않는거냐고 하길래, 역사시간에 잘생겼다고 들은거라고 말해줬다. 참고로 언니와 나의 고등학교때 역사 선생님은 같은 선생님이었다. 언니는 나의 담임선생님이었던 역사선생님께 언니의 정수리를 가장 많이 보여드렸으며, 그때마다 선생님은 졸고 있는 언니를 깨우느라 일어나라는 말을 가장 많이 건내셨던 선생님이셨다. 아주 낮은 저음의 목소리를 가진 역사 선생님이셨는데 안그래도 잠 많은 언니에게 저음의 역사이야기는 더욱 자장가 같이 들렸을 법하다.
아무튼 내가 이러한 이야기를 했더니, 언니는 분명 똑같이 배웠을텐데 나는 왜 기억이 나질 않는거냐고 했다. 관심 분야가 다 다르다보니 옛날부터 사극, 역사, 이런걸 좋아하던 나로서는 그냥 그런 분야의 책도 많이 봤고 예능을 보더라도 선을넘는녀석들이나 역사저널 그날 같은 프로그램을 보다보니 조금 더 자주 듣고 익숙할 뿐이고, 언니는 나와 다르게 과학 물리 이런것에 조금 더 관심있는것 뿐이라 차이가 있는거라고했다. 하지만 분명한건 우리의 역사이고 그 역사가 있어서 우리가 있는것이니, 알건 알아야 한다는 것이 나의 생각이다.
서론이 길었다. 그래서 결론은 다음엔 잘생긴 세종대왕님을 만나러 언니와 함께 가기로 했다. 하지만 이번엔 우리끼리 왔다. 이곳에 방문하기전 아이가 세종대왕에 대하여 알고 있는지 궁금해졌다. 그래서 아이에게 "세종대왕님이 어떤분인지 알아?" 하고 질문했더니 아이는 당연하다는듯! "당연히 알지! 엄마~ 한글 만들어주신 분이잖아" 하고 대답했다. 우리가 지금 사용하고 있는 언어, 사용하면 할수록 이런것 조차 표현이 되는구나를 깨달으며 경이롭다고 생각되는 한글을 창제하신 분이 세종대왕이라는걸 알고 있다는 사실만으로 오늘 여기 참 잘왔다 하는걸 느끼게 되었다.
그렇다. 아이의 설명대로 세종대왕님은 우리에게 너무 소중한 언어, 한글을 창제하신 분이다. 태종의 셋째 아들로 태어나 원래라면 왕이 되지 못할 왕자의 신분이셨던 그분이 왕세자로 책봉되고, 왕세자에서 왕이 되었다는 이야기는 세종대왕릉에 입장하기 전 보이는 주차장에서 바로 내리면 보이는 이 건물 박물관에서 확인 할 수 있다. 백성을 사랑하여 사랑하는 백성들이 마음껏 자신의 이야기를 펼쳤으면 하는 마음에 창제하신 한글의 위대함은 굳이 설명하지 않아도 사용하는 우리가 더 잘 알거라고 생각한다. 여담으로 식민지 시대를 거치면서 자국의 언어를 잃어버리지 않고 계속 지켜온 민족은 전 세계 역사를 통틀어 우리나라 밖에 없다고 한다. 그만큼 뿌리가 깊고 사용하기 쉬운 언어이며 우리가 지켜온 한글이라는데 조금 더 자부심을 가지고 조금 더 예쁜 말을 사용할 수 있도록 해야겠다.
사실 나와 신랑은 주차장에 들어서면서부터 어?!하고 살짝 당황했다. 이유는 우리는 세종대왕릉에 온 것인데 익숙하지만 잘 알고는 있지못한 효종대왕릉도 같이 표시가 되어있기 때문이었다. 이곳에 오기 전 검색해서 이곳의 정보를 모으고, 도착할때까지도 세종대왕릉과 효종대왕릉이 같이 있다는것을 모르고 있었다. 박물관에 들어가서야 이곳에 같이 계신다는것을 알게 되었다. 그래서 박물관의 전시실도 세종대왕전시실 효종대왕전시실 구분되어있었다. 역사에 대해서 그래도 많이 알고 있는 편이라고 생각했었는데 이런걸보면 지금보다 더욱 관심갖고 조금 더 열심히 배워야겠다는 자기 반성을 하게 된다.
박물관에 들어가면 세종대왕의 어진을 볼 수 있다. 역사시간에 들었던대로 잘생긴 세종대왕님을 확인하고 조금 더 안쪽으로 이동하면 한글창제뿐 아니라 과학 농경 군사 여러분야에서 업적을 쌓으신 세종대왕님의 업적들을 볼 수 있다. 세종대왕이 많은 업적을 이룬데에는 많은 학자들이 함께 했었고, 집현전에서 밤 새워 업무를 보다 잠든 신숙주에게 털 외투를 덮어주었다는 세종대왕과의 일화는 이미 유명하다. 그렇게 세종대왕의 사랑을 받던 학자가 세종대왕의 손자였던 단종을 몰아내는데 공을 세웠다는 사실은 참 아이러니하면서도 안타깝다. 세조의 정치 또한 우리나라의 역사였으나 단종이 쓰는 우리나라의 역사는 어떠하였을까 아직은 어려서 미숙했던 단종이 삼촌에게 쫓겨나 자신의 정치를 시작도 해보지 못한 단종을 생각하면, 마음이 쓰리다. 세종대왕에 대한 일화는 참 많은 분야에서 다양하게 기록되어있다. 그만큼 다양한 분야에서 많은 업적을 남기셨기에 가능하지 않았을까 생각했다.
박물관에서 조금 더 안쪽으로 이동하니 효종대왕에 대한 이야기를 알 수 있었다. 세종대왕에 비하여 효종대왕은 많이 알려져 있지 않은 왕이다. 또한 세종대왕이 조선을 건국한 이후 4번째 왕이다보니 태종태세까지는 기억하는 이들이 많아 기억하기 쉬울 수 있으나 효종대왕의 경우 17번째왕으로 병자호란 이후 나라가 매우 혼란스러울때 왕이 된 분이라 기억하기 어려울 수 있다.
효종대왕하면 같이 나오는 인물이 있으니 바로 소현세자다. 병자호란 이후 소현세자와 함께 청나라에 8년간 볼모로 갔다가 소현세자가 급작스럽게 죽음을 맞이하며 왕이 된 인물이 효종대왕이었다. 효종대왕은 누구보다 북벌의 의지가 강했고, 그러다보니 북벌정책을 강하게 펼쳤다. 하지만 효종대왕 역시 젊은 나이게 급작스럽게 세상을 떠나니 그의 북벌정책은 안타깝게도 실현되지는 못했다. 만약 효종대왕이 조금 더 오래 사셨다면 지금 우리나라의 지도는 다른 모양이었을까, 지금의 우리는 조금 더 다른 영향력을 행사하고 있을까 하는 생각도 하게되었다.
박물관을 나와 이제 정말 공릉안으로 들어가보기로 하였다. 박물관 뒤쪽 매표소를 통해 매표하고 입장 가능한 세종대왕릉은 들어서는 입구부터 벌써 이곳은 참 걷기 좋은 길이라는 인상을 준다. 길을 따라 양옆으로 늘어선 소나무들이 참 좋았고, 다양한 사람들이 방문한다는걸 알게 해주는 곳이었다.
아까 박물관에서 보았던 조형물들을 이곳에서 다시 한번 만나 볼 수도 있고, 초등학교때 학교마다 꼭 있엇던 세종대왕님 조형물도 이곳에서 만나볼 수 있다. 그때와 달라진점이 있다면 우리 학교에 있었던 세종대왕님은 의자에 앉아계셨다면 이곳에 세종대왕님은 서 계신다는 점이었다. 그때와 같은 눈높이도 아니고, 그때의 괴담은 이제 웃어 넘길 수 있는 나이가 되었지만 어릴때 우리에게 익숙한 그 괴담인 비만 오면 세종대왕님이 들고 계신 책장이 넘어간다는 그 무서운 이야기가 아직도 생각나서 괜히 세종대왕님이 들고 계신 그 책을 한번 더 들여다 보게 되었다.
여러 조형물을 지나 조금 더 안쪽으로 들어서면서부터 아이가 물을 찾았다. 너무 당연한 사실이지만 아까 들어갔던 박물관을 지나 공릉안쪽으로 이동하면 정수기도 자판기도 매점도 하나 없다. 가방에 당연히 넣어온 줄 알았던 생수가 없으니 아이는 짜증을 내기 시작했다. 결국 거기에서 벌써 우린 오늘 효종대왕릉까지는 못보고 돌아가겠구나 예감했었다. 다음에 방문할때는 꼭 물을 챙겨야겠다고 다짐하며 힘들게 안쪽으로 이동하다보니 홍살문이 보였다. 물이 필요한 아이에게는 이곳 홍살문까지 걷는것도 굉장히 어려운 일이었겠지만 워낙 걷는걸 좋아하는 신랑과 나에게는 이곳까지 정말 금방 온 기분이었다.
홍살문을 지나 조금 더 안쪽으로 이동하면 정자각이 보이고 정자각 뒤로는 세종대왕릉을 볼 수 있다. 아래에서 보는 세종대왕릉과 직접 올라가서 보는 세종대왕릉은 또 다른 느낌이었다. 물론 안쪽까지는 들어갈 수 없지만 문화재 보호를 위해 눈으로만 봐야하는 세계문화유산이니만큼 실컷 눈으로 감상 잘하고 내려왔다.
신랑은 역시 자리가 좋은거 같다며 풍수지리를 모르는 내가 보아도 볕이 참 잘드는 자리라며 감탄하였다. 그 당시 한양에서 이천여명이 움직여 여주로 올때는 얼마나 오랜시간이 걸려서 왔을까를 생각해보면 정말 굉장한 일이 아닐 수 없다며, 박물관 안 영상실에서 보았던 영상을 떠오르기도 하였다.
세종대왕뿐아니라 소헌왕후도 계신 이 자리에 다녀오니 효종대왕릉도 정말 궁금해졌다. 이곳 세종대왕릉에서 효종대왕릉으로 이동할때 지나야하는 왕의숲길도 정말 궁금했지만 아이의 짜증 정도를 고려하여 다음을 기약할 수 밖에 없는것이 안타까웠다. 아이의 눈에는 그냥 동그란 봉분일지는 몰라도, 나중에 언젠가 책에서 세종대왕릉에 관한 이야기를 보게 된다면 이곳을 떠올려주었으면 좋겠다고 생각하며 주차장으로 향했다.
세종대왕릉을 나와 우리가 향했던곳은 바로 카페였다. 원래 목적지였던 카페는 이곳이 아니었다. 신랑이 인스타에서 본 새로 오픈한지 얼마 안된곳이었는데 그곳이 노키즈존이라는 사실을 바로 카페 앞에 가서야 알았다. 실망한 아이를 달래서 다시 한번 검색해서 찾은곳이 이곳 보드로였다.
여기 역시 2층은 노키즈존이다. 남한강을 바로 옆에 두고 있는 카페인데, 확실히 2층 뷰가 좋았다. 노키즈존이라 우리는 1층에 머물렀지만, 사진 찍으러 잠깐 올라갔던 2층의 뷰가 좋아서 기억에 남는곳이었다. 날이 조금만 더 따뜻했다면, 아이가 걷는걸 좋아했다면 이곳 카페에서 음식을 포장해서 강가를 따라 준비되어있는 산책로를 걸으며 즐기는것도 참 좋을거 같다는 생각도 하였다. 그것도 어렵다면 밖에 준비되어있는 테라스자리도 참 좋아보였다. 따뜻한 햇살을 받으며 강을 바라보고 있으면 그날 하루의 피곤을 다 잊을거 같다는 생각이 드는 조용하면서도 머물고 싶은 분위기의 카페였다.
카페를 마지막으로 여주를 출발해서 집으로 돌아왔다. 이번 여주 여행의 가장 큰 소득은 여주에 갈곳이 생각보다 많다는것을 알게 되었다는 점과, 여주에 생각보다 노키즈존 카페가 많다는걸 알게된 것이었다. 앞으로 여주에 있는 카페를 방문할때는 노키즈존인지 먼저 확인하는 습관을 길러야겠다고 생각하였고, 갈곳 많은 여주니만큼 더 자주 방문해줘야겠다고 다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