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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거진 여행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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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강낭토끼 Sep 07. 2022

부산 여행

여행일기 - 부산 해운대구 1박 2일 여행 

 부산에 다녀왔다. 부산은 10년도 더 전에 신랑과 둘이 다녀오고 이번이 두 번째 방문이다. 그때 방문할 땐 신랑과 나 둘만의 여행이었는데, 마음의 짐을 덜어내러 위안을 받으러 다녀왔던 부산에, 이번엔 아이와 함께 여행을 가게 되어 새삼스러운 느낌이 들었다.


 이번 부산 여행도 신랑이 함께였다면 좋았을 텐데, 신랑은 요즘 회사일로 매우 바쁘다. 월차를 하루만 내는 것이 아니라 2일 연속으로 낸다면 곤란할 것 같아 이번 여행에 신랑은 빼놓고 언니네와 다녀오게 되었다. 신랑이 빠지고 나니 자연스럽게 운전대는 언니가 맡게 되었다. 왕복 10시간 가까이 되는 거리를 언니 혼자 운전해야 한다는 부담감을 주어 상당히 미안했지만, 언니는 고속도로를 주로 달릴 예정이니 괜찮다고 말해주었다. 


 내가 사는 지역에서 부산은 쉬지 않고 달려도 4시간 이상은 가야 하는 곳이다. 그래서 일단 부산이라는 지명을 떠올리게 되면 정말 가고 싶은 곳이지만 한편으론 정말 멀게 느껴지는 곳이기도 하다. 정말 멀다 느껴지는 곳이면서 부산이 왜 그렇게 가고 싶은 것일까 잠시 생각해보았다. 놀랍게도 답을 빨리 찾을 수 있었다. 부산은 내가 사는 지역에서 거리가 먼 만큼 부산에서만 느낄 수 있는 부산의 것들이 있기 때문이었다. 여행을 좋아하는 나는,  여행에서 새로운 것들을 발견하고 새로운 것들을 경험하는 것을 좋아한다. 부산은 내가 사는 지역과 거리가 먼 만큼 나에게 주는 새로운 것들에 대한 막연한 기대가 생기는 곳이었다. 

 그래서 부산 여행을 처음 언니들이 계획하였을 때 일정이 어떻게 되는지 묻지도 따지지도 않고 따라가겠다고 했었다. 부산 여행을 떠나는 날 아침은 연휴가 있던 휴일이 지나고 난 평일이었다. 아무것도 없는 평일에 여행을 떠날 수 있다는 사실이 좋은 것은 차 막힐 걱정을 하지 않아도 된다는 사실이다. 장거리 여행치고는 그렇게 빠른 출발이라고 하기는 애매한 8시가 조금 넘은 시간에 언니의 차를 타고 부산으로 출발했다. 


 장거리 운전은 운전자도 힘들지만, 함께하는 아이들도 지루함에 몸을 베베 꼬게 된다. 전날까지 공휴일이었으니, 평일보다 더욱 바쁜 일정을 소화해내고 아침 일찍 출발해서 그런지 그래도 2시간 정도는 못다 한 아침잠을 자며 조용히 가던 아이들이 두 시간이 지나고 나니 슬슬 일어나서 짜증에 시동을 걸기 시작했다. 마침 언니도 두 시간 운전을 하고 나니 집중력이 떨어진다며 동명휴게소에 들렀다. 


요즘 휴게소에 들르면, 호두과자를 꼭 한 번은 사 먹는 내가 변함없이 호두과자를 구입하였고, 아이들도 군것질 거리를 먹으며 잠깐의 휴식시간을 달콤하게 즐겼다. 휴게소의 크기가 큰 것은 아니었지만, 내가 좋아하는 군것질거리들은 알차게 마련되어있었고, 휴게소에 들르는 주된 이유가 되는 화장실도 깨끗하게 관리 중이라서 좋았다. 


 이때까지만 해도 우리는 목적지까지 지금 온 것만큼만 다시 가면 된다는 희망에 들떠 있었다. 출발해서 지금까지 부지런히 달려왔으니 이제 한 시간 반만 더 가면 된다며 도착해서 어떤 맛있는 음식을 먹을지 설렘만 가득하게 가지고 있을 뿐 둘째 언니네와 다르게 안내한 네비의 길이 다른 곳을 향해 가고 있다는 의심을 전혀 하고 있지 못하고 있었다.  

 휴게소를 빠져나와 열심히 또 달리고 달려 목적지에 도착한 순간에야 무언가 잘못되었다는 사실을 알 수 있었다. 처음부터 네비에 목적지 설정을 잘못하고 떠난 것이었다. 우리가 도착해야 할 목적지가 구남로 18번 길 46이었다면, 목적지에 설정을 구남로 18로 하고 온 것이다. 가야 할 곳이 해운대구였다면 안내받고 도착한 곳은 북구였다. 달라도 너무 다른 주소였다. 왜 주소의 앞부분은 확인도 하지 않았을까 안내해주는 길이 둘째 언니가 안내받은 길과 다른 것을 알았을 때 진작 다시 확인했어야 했는데라며 후회해도 이미 우리는 다른 곳에 와있었다. 우리가 해야 할 일은 다시 제대로 된 목적지를 설정하고 목적지를 향해 다시 달리는 일 밖에 없었다. 결국 원래 예정되어있던 시간보다 한 시간을 더 달려서 목적지에 도착했다. 


 아이들은 차 안에서 배가 고프다며 온갖 짜증을 내기 시작했다. 주차하고 아이들의 입에 무언갈 넣어주지 않으면 매우 힘들 거라는 생각에, 아이들이 먹고 싶다는 분식을 찾아 헤맸다. 부산까지 와서 분식이라니 정말 우스운 일이지만 점심시간도 훌쩍 넘긴 시간에 우리가 먹고 싶은걸 먹는다면 아이들이 언니와 나를 그냥 두지 않을 거 같았다. 설상가상으로 우리가 있었던 해운대해수욕장 근처의 식당들은 우리가 많은 인원이 아닌데도 불구하고 들어가서 식사할만한 크기의 분식집을 찾는 것이 매우 어려웠다.  


 관광지라서 그런 것인지 조금 큰 식당들은 부산하면 생각나는 밀면이나 낙곱새를 판매 중이었지, 아이들이 먹고 싶다고 노래를 부르는 분식을 판매하는 곳은 없었다.  아이들도 눈에 보이는 상황을 인지하였는지, 여기를 마지막으로 가보자면서 방문한 분식집에서도 식사를 실패하고 결국은 분식집에 오는 길에 보았던 중국집에 방문하기로 하였다. 부산까지 와서 자장면이라니, 자장면 맛집도 많은데 하필 해운대에서 자장면이라니 입맛이 뚝 떨어져서 먹는 둥 마는 둥하였다. 아무래도 지금의 나의 상태로는 먹어도 제대로 소화가 될 것 같지 않았다. 

 그래서 대충 요기를 하고 커피를 사러 다녀왔다. 부산하면 예쁜 카페 독특한 카페들도 많은데 그 많은 카페들 중 익숙한 스타벅스에 다녀왔다. 부산에 왔지만 부산에서만 즐길 수 있는 것들을 즐기지 못하는데 조금 짜증이 났었던 거 같다. 그래도 익숙한 커피 맛을 즐길 수 있다는 사실은 좋았던 것도 같다. 


 하지만 그때 하필 비가 내리기 시작했고, 우산을 펼치는 타이밍에 맞게 커피가 우산에 걸려 쏟아지기 전까지는 익숙한 커피 맛의 소중함에 당 충전을 즐겼다. 커피가 바닥에 모두 쏟아진 걸 보았을 때, 오늘은 날이 아니었구나, 오늘은 모든 걸 다 내려놓고 다녀야 하는 날인가 보다 이번 부산여행은 마음을 내려놓고 포기하는 여행이다라는 생각을 굳히게 되었다.  


 마음을 조금 내려놓고 나면 내가 싫어하는 일을 하더라도 짜증이 좀 덜하다. 그냥 편안한 마음으로 다 받아들이게 된다. 그래서 내가 싫어하는 일 중에 하나 비 오는 거리를 걷는 것도, 그래도 부산이니까 하는 마음으로 해낼 수 있었다. 비 맞는 거라면 질색팔색 하는 나이지만, 언제 또 부산에 올지 모르는데 라는 생각으로 비를 맞으면서라도 사진을 찍어야지 하고 비 맞으며 부산에 온 것을 기념하는 사진을 몇 장 찍었다.  

 사실 이번 부산여행의 목적은 라이언 홀리데이 인 부산을 방문하는 데 있었다. 그래서 다른 목적지는 하나도 정해놓지 않고, 라이언 홀리데이 인 부산만 들르면 된다는 생각으로 언니들이 여행을 계획한데 숟가락만 얹은 나였다. 

 하지만 결론부터 말하자면 다음부터 나는 이런 여행을 언니들이 계획한다면 나는 나대로 다른 목적지를 설정해야겠다고 생각했다. 신랑도 그렇고 나도 그렇고 어떤 곳에 여행을 간다면 적어도 움직이는 시간과 일정을 조금 세분화하여 알차게 여행을 즐기는 편이다. 신랑이 나의 가장 좋은 여행 파트너가 되는 이유는 바로 이런 점에 있다. 갔으니까 하는데 중점을 두고 여기저기 최대한 많은 시간을 할애하여 더 많은 것을 보고 오려고 한다. 여행은 이래서 함께하는 사람이 중요하다고 하는 것인지, 늘 알찬 일정에 돌아보면 잘 놀았다 라는 생각이 들게 해주는 신랑이 보고 싶어졌다. 


 이번 부산여행은 부산까지 갔음에도 불구하고 비가 내린다는 이유로 정말 많은 것을 보고 오지 못한 여행이었다. 아쉬움이 많이 남는 여행이었다. 숟가락을 얻은 여행일 뿐이라 나의 의견을 최대한 드러내지 않고 언니들이 하자는 대로 움직였는데, 다음번에도 언니들이 이런 일정으로 여행을 계획한다면 그때는 아예 여행을 오지 않아도 될 거 같다는 생각도 했다. 


 그렇다고 이런 이유로 라이언 홀리데이 인 부산이 재미가 없었다는 것은 아니었다. 카카오프렌즈의 캐릭터라면 다 좋아하는 우리들이다 보니 귀여운 캐릭터들을 만날 수 있다는 사실은 참 좋았다. 이곳의 이름이 라이언 홀리데이 인 부산이라는 점에서 알 수 있는 것처럼 주된 캐릭터는 라이언이었다. 그나마 어피치가 좀 많은 편이었고 언니가 좋아하는 네오는 딱 한번 등장했다. 


 라이언이나 어피치를 제외하고 다른 캐릭터들은 만나기 어려운 곳이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귀여운 것들이 가득하다 보니 좋았다. 어피치를 좋아하는 아이도 기어코 본인의 용돈을 털어서 인형을 구입해올 만큼 아주 만족스러워했다. 입장권을 굳이 구입하지 않아도 입장이 가능한 공간이 있고, 음료를 구입해야 입장할 수 있는 공간과 입장권을 구입해서 체험할 수 있는 공간이 구분되어있었다. 1층과 지하 1층 두 개의 층을 이용할 수 있었는데, 지하 1층에는 푸드코트와 카페도 마련되어있어서, 긴 시간을 보내는 분들에게 좋아 보였다. 만약 이곳에 푸드코트가 있다는 사실을 진작 알았더라면 우리도 맛없는 자장면을 먹는 것이 아니라 이곳에서 귀여운 카카오프렌즈 친구들과 함께  맛있는 식사를 즐 길 수 있었을 텐데,  어차피 부산에서만 먹을 수 있는 먹거리를 먹는 것이 아니었다면, 진작에 검색해보지 않았던 정보가 부족했음에 안타까움이 생길 수밖에 없었다. 

 라이언 홀리데이 인 부산에서 나오니 저녁 먹을 시간이었다. 저녁 메뉴를 고민하다 보니, 각자가 먹고 싶은 음식은 인원이 많은 만큼 메뉴도 다양했다. 무엇보다 부산에 도착헀을때와 다르게 자꾸만 굵어지는 빗줄기가 우리의 이동을 더욱 힘들게 만들었다. 또 점심 식사를 위해 우리가 방문했던 식당들의 크기를 떠올려본다면 둘째 언니네 가족까지 더해져 11명이나 되는 대인원을 수용할만한 식당을 찾는 것이 어려울 거라 생각되었다. 10년 전 방문하였던 부산은 신랑과 나 두 명이니 식당의 크기와 상관없이 먹고 싶은 메뉴를 찾으면 되었는데, 두 번째 방문한 부산에서는 아이와 함께 먹을 메뉴가 있는지 메뉴도 살펴야 했고, 다 함께 앉을 수 있는 자리가 있는지도 살펴야 했다. 요즘은 노 키즈존인 카페는 물론 식당도 늘어나고 있는 추새라 그런 것까지 비 오는 날 확인하려니 보통 벅찬 일이 아니었다. 결국 우리는 숙소에 들어가서 각자가 원하는 메뉴를 배달해먹기로 하였다. 부산까지 왔는데 배달이라니 참 오늘 하루가 부산까지 왔는데라는 말을 백번도 하게 되는 날이구나 했다. 

 그래서 부산까지 왔는 데를 외치며 한풀이라도 하려는 듯 낙곱새를 배달해서 먹었다. 근데 이것은 나의 잘못된 선택이었다. 여태 나는 낙곱새라는 음식을 먹어본 적이 없었다. 그저 SNS에서 바글바글 끓고 있는 비주얼의 사진이나 동영상을 확인하였을 뿐 다 조리가 된 상태로 배달된 낙곱새를 본 적은 없었던 것이다. 먹어본 적도 없는 낙곱새지만, 한입 먹는 순간 이 음식은 바글바글 끓이면서 먹어야 하는 음식이라는 것을 알 수 있었다. 배달해서 먹는 음식이 아니라 매장에서 먹어야 더욱 맛있게 즐 길 수 있는 음식이었던 것이다.


 배달해서 온 비주얼도 충분히 훌륭하였다. 하지만 비주얼이 아니라 맛이 더욱 중요한 나에게는 낙곱새 한입에 내가 얼마나 바보 같은 선택을 하였는지 알 수 있었다. 낙곱새는 한국인의 디저트라고 할 수 있는 마무리 볶음밥이 필수인 음식이었다. 하지만 배달되어온 낙곱새를 숙소에서 바글바글 끓이는 것도, 볶음밥을 볶아먹는 것도 할 수 없었다. 첫 경험을 허무하게 날려버린 것 같다며 커피를 바닥에 쏟는 순간 내려놓았던 마음을 다시 한번 내려놓을 수밖에 없었다. 첫 단추의 잘못된 시작이 마지막 식사까지 따라올 거라고는 생각도 못했는데, 이런 부산여행이라도 나중에 기억에는 남을 거 같다는 사실로 위안을 삼았다. 

 둘째 날의 아침이 밝았다. 아이들을 데리고 여행을 맞이하면 삼시 세 끼를 꼬박꼬박 챙겨 먹을 수밖에 없다. 무엇보다 체력 좋은 아이들은 전날 늦게 잠들었어도 평소에 일어나는 똑같은 시간에 일어나서 재잘거리기 때문에 나처럼 잠귀 밝은 사람들은 늦잠이 불가능하다. 일찍 일어난 김에 바지런히 준비해서 숙소에서 아침을 먹고 , 준비해서 해운대해수욕장 근처에 있는 기념품 가게에 들렀다. 그래도 부산에 왔는데 부산에서만 볼 수 있는 부산을 상징하는 무언가를 구입해야겠다는 생각에 구석구석 둘러보다 요즘 내가 모으기 시작한 마그네틱을 하나 구입했다. 


 사실 부산을 방문한다고 하였을 때 함께 여행을 가지 못하게 된 신랑은 나에게 용돈을 건네며 이런 곳에 가면 사고 싶은 것들을 사 오라고 했었다. 같이 여행가지 못하는 미안한 마음을 이렇게라도 덜어주려고 했던 거 같다. 넉넉한 용돈에 이것저것 구입해도 괜찮은데, 어제부터 꼬인 내 마음이 풀어지지 않았는지, 기념품들 중에 썩 마음에 드는 것들이 없었다. 마그네틱도 겨우 하나 구입하였을 뿐 눈에 차는 것이 없어 아쉬웠다. 


 하지만 이런 나와 다르게 아이의 눈에는 예쁜 것이 가득한 기념품 가게였나 보다. 아이는 열쇠고리를 무려 3가지나 골라집었다. 가만 두었다면 종류별로 10개는 넘게 구입하였을 것 같은데 3개만 사자는 엄마의 제안에 반가운 듯 3개 모두 열쇠고리를 구입하고 만족스러워했다. 

 기념품 가게에서 구경을 하다 점심시간이 되어 해리단길에 갔다. 부산에 해리단길이 있다는 것도 처음 알았지만, 우리가 갔던 해리단길이 그랬던 것인지 아니면 아직 만들어진지 얼마 안 되어서 그런 건지 몰라도 해리단길은 우리가 여태 다녀온 무슨무슨 길들에 비해서 다소 좀 정비가 덜 된 그런 느낌이었다. 또 가게 하나하나의 크기가 매우 작아서 우리가 아이들을 데리고 들어가서 식사를 할만한 곳이 없었다. 


 대부분이 2인 테이블이었고, 2인 테이블에 나누어 앉는다고 하더라도 우리가 모두 다 들어갈만한 넓은 식당이 없었다. 알록달록한 색상의 건물도 그렇고 예쁜 건물의 카페도 그렇고 분위기 있어 보이는 식당들도 대부분 젊은 사람들을 위한 자리처럼 느껴졌지 우리처럼 아이를 데리고 방문한 가족단위 방문객을 위한 자리로는 보이지 않았다. 

 결국 해리단길을 열심히 걸으며 헤매다 아이들의 원성에 못 이겨 해리단길을 벗어나 가까운 달맞이고개로 이동하기로 하였다. 이번 부산여행에서 마지막 식사가 될 수 있는 점심이었으나 역시 부산하면 대표하는 음식을 먹을 선택권은 우리에게 없었다. 아이들이 먹고 싶다는 피자와 파스타를 먹으러 갔다. 


 부산까지 와서 먹는 피자와 파스타라니 또 한 번 어제와 똑같은 생각이 들 수밖에 없는 대목이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맛있게 먹었다. 아침밥을 먹고 해리단길을 걸으며 많이 헤맨 탓이었는지 아니면 여기가 정말 맛집이었는지 모르겠지만 해리단길을 헤매면서 아이가 있는 부모들은 분위기라는 것을 즐기지 말라는 것인가 조금 기분이 나빴던 것이 진정되는 것을 보니, 아무래도 배가 고파서 안내도 될 짜증도 났던 것인가 보다며. 일단 배가 고프면 짜증이 나는 건 아이나 나나 별다를 것이 없으니 지금은 맛있게 먹어야겠다고 생각했다. 식전 빵으로 주는 맛난 빵과 알프레도 피자라는 이름도 생소한 피자를 먹은 후에야 짜증이 가라앉아서 사실은 이곳이 부산에서도 유명한 벚꽃 명소라는 걸 알 수 있는 테라스 풍경이 눈에 들어오기 시작했다. 


 비록 우리가 방문하였던 날은 봄도 아니고, 날씨가 좋아서 저 멀리 바다 위의 광안대교가 한눈에 들어오는 것은 아니었지만, 그래도 어느 정도 배가 부른 후에 눈에 들어오는 테라스의 경치는 운치 있었다.  

 비가 내리지 않았더라면 조금 더 멋진 뷰를 즐길 수 있었을 텐데, 아쉬운 부분이 많은 이번 부산여행이었다. 내가 아는 일본 속담 중 "여행의 날씨는 평소의 행실에 따라 결정된다"라는 말이 있다. 아무래도 이번엔 내가 무언가 큰 잘못을 했나 보다며,  착하게 살아야지라는 뜬금없는 다짐도 하게 되었다. 그만큼 이번 여행은 날씨가 주는 아쉬움이 컸다. 더구나 부산의 날씨는 우리가 부산을 빠져나 올 즈음되어서야 서서히 흐린 하늘이 맑아지기 시작하였다. 일본 속담이 정말 맞는 말이라면 평소의 행실이 좋지 못해서 우리가 떠나자마자 맑은 하늘을 보여준 날씨가 너무 야속했다.


 사실 부산은 특히 해운대는 바다 옆에 이렇게 번화한 도시가 있다는데 야경이 정말 멋진 도시인데, 아이들 데리고 여행을 다니다 보면 야경은 꿈같은 일이다. 아이들이 잠자리에 드는 시간이 있어서 야경을 보러 일부러 나오기는 어려운 일이다. 


 아쉬운 대로 디에이블에 방문하여 테라스에서 야경이 어땠을 것이다 하고 추측만 해보았다. 날이 맑았더라면 저 멀리 광안대교까지 사진에 담겼을 텐데 아쉽게도 흐린 날에 가려 눈으로는 확인되었던 광안대교가 사진에는 담기지 않았다. 이런 걸 보면 뭐든 눈으로 보는 것이 사진으로 보는 것만 못하다는 사실은 맞는 말이다. 

 점심을 먹은 후에는 바로 각자의 집으로 출발할 예정이었다. 그런데 언니가 예전에 부산에 왔을 때 방문한 해동용궁사에서 동전 던지기를 하였던 이야기를 하며 다시 동전 던지기를 한 번씩 하고 집으로 돌아가자고 하였다. 마침 우리가 있던 달맞이고개에서 20분 정도만 이동하면 되는 거리니, 들렀다가 가더라도 크게 부담은 없을 거라고 하였다. 


 10년 전에 방문하였던 해동용궁사는 겨울 추위에 바닷바람의 찬기운을 가득 안겨주었는데, 비 오는 여름날 방문한 해동용궁사는 미끄러운 계단으로 아이들과 함께 걷기가 상당히 불편하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매우 즐거웠다. 드디어 부산에만 있는 것을 보러 온 것 같은 기분이 들어서였다. 따지고 보면 부산에 방문해서 부산 다 운 것을 경험한 것은 이곳 해동용궁사가 전부인 것도 같았다. 


 다들 동전 던지기가 목적이었지만, 나는 동전 던지기보다 해동용궁사의 구석구석을 눈에 담고 싶었다. 그래서 가장 위쪽까지도 올라갔다 왔다. 위에서 내려다보는 바다 바로 옆의 해동용궁사는 정말 멋진 모습이었다. 흐린 날이라 바다의 빛이 파랗게 빛나는 것은 아니었지만, 흐린 날은 흐린 날의 고즈넉함이 묻어나서 좋았다. 놀라웠던 점이라면 해동용궁사를 방문하는 외국인이 생각보다 많다는 점이었다. 코시국 이후 여행하는 외국인을 보는 경우가 드물어서 그런가 고개만 돌리면 보이는 외국인이 신기하게 느껴졌다. 

 해동용궁사 방문 후 헤어짐의 시간이 다가왔다. 각자의 집으로 출발하기 전 본격적인 운전에 앞서 카페인 충전을 하는 것이 좋겠다고 하며 해동용궁사 앞에 있는 이디야커피에 들어갔다. 부산에 가면 부산의 예쁜 뷰를 눈에 담을 수 있는 카페를 한 번은 방문할 수 있을 거라고 생각했는데 결국 마지막까지 익숙한 이디야 커피에 들어갔다. 


 그래도 커피 맛은 좋았고, 음료가 나오는 찰나의 시간 동안 머물렀던 이디야커피의 인테리어는 참 예뻤다. 테라스에서는 나름의 바다 뷰도 즐길 수 있는 곳이었는데, 우리에게는 뷰를 즐길 수 있는 여유 있는 시간이 없었다. 음료가 나온 것을 알람으로 이디야커피를 나서 각자의 집으로 헤어졌다. 

 또다시 언니의 외로운 운전이 시작되었다. 출발할 때와 다르게 저녁이 되어가는 시간에 운전을 시작한 언니는, 가능한 캄캄한 어둠이 내리기 전에 갈 수 있을 만큼 가야겠다는 생각에 부지런히 차를 달렸다. 그러다 아이들이 또 배고프다며 난리를 치는 통에 군위휴게소에 들르게 되었는데, 조금만 더 늦은 시간이었다면 휴게소에서 밥도 먹지 못할 뻔하였다. 휴게소의 푸드코트는 대부분 8시가 되면 문을 닫는다는 사실을 너무 늦게 떠올린 것이었다. 8시가 다 되어갈 때쯤 들렀던 군위휴게소에서는 마감을 위해서 준비를 하는 중이었고, 덕분에 품절인 메뉴 몇몇 보였다. 아예 마감을 한 상태였다면 아이들을 어떻게 달래야 하나 걱정하였을 텐데 너무 다행스럽게 푸드코트는 아직 운영 중이었고, 덕분에 아이들과 맛있는 식사를 할 수 있었다. 


 아이들도 군것질 코너의 불 꺼진 휴게소의 모습이 익숙하지 않았는지, 처음 휴게소에 주차하였을 때 주춤주춤 하는 모습을 보여주었었다. 우리가 식사를 마치고 휴게소를 나올 즈음에는 편의점과 화장실을 제외하고는 어둑해진 휴게소의 모습에 놀란 것인지 휴게소가 계속 운영하지 않는다는 사실에 충격을 받은 것인지 아이가 나에게 화장실은 이용할 수 있는 거냐며 재차 확인까지 하였다. 아무래도 아이에게 이날의 휴게소 방문 또한 특별한 기억으로 남을 거 같았다.


 휴게소에서 요기를 하고 사방이 컴컴한 고속도로를 부지런히 달리고 달려 밤 10시가 되어서 집에 도착했다. 주차장에는 우리를 마중 나온 신랑이 있었고, 1박 2일이라는 짧은 시간에 아이는 아빠 없이 여행한 것이 조금은 아쉬웠는지 아빠에게 매달려 떨어지지 않았다. 우리에게는 여행의 시간이었지만 신랑에게는 또 다른 의미의 휴가로 느껴졌을지 모를 이번 부산여행은 짧은 일정이다 보니 아무래도 아쉬움이 많이 남는 여행이었다. 부산하면 생각나는 것들을 제대로 즐기지 못하고 온 기분이라 부산에 다녀왔지만 부산에 안 다녀온 것 같은 이번 여행이 아쉬워 다음번에는 조금 더 길게 부산여행을 계획해야겠다고 다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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