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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담이 Jan 30. 2023

자해에 대하여

비자살성 자해


  우울증을 앓으며 나타나는 가장 자기 파괴적인 행동은 두가지다. 자살시도와 자해. 그중 자해에 대해 이야기 해보고자 한다.






  14살, 처음으로 손목에 칼을 대었다. 친구들에게 상처를 들킨 이후로 매일 같이 양호실에 들러야 했다. 항상 손목을 검사당했고, 상처가 있으면 양호실을 갔다.

  자해는 부적절한 선택이었다. 무의식적으로 알고 있었지만 상담사 선생님도, 친구들도 나를 말릴 수 없었다.


  자해를 한다고 해서 죽지 않는다. 죽고 싶었지만 죽기 위해 자해를 하진 않았다. (죽고자 하는 마음 없이 행하는 자해를 비자살성 자해라 칭한다.)

자해로 인해 죽으려면 동맥이 끊어져야 할 것이다.

죽지도 않을 거 왜 손목을 긋느냐고 한다면 여러 이유가 있다.




  중학교 시절에는 부정적인 감정을 처리하는 방법을 몰랐다. 자해를 끊기 위해 무작정 70일을 참았던 적이 있다. 결국 실패로 돌아갔고 나는 내게 벌을 주었다.

  종이를 칼로 찢어도, 책을 바닥에 던져도, 이불을 뒤집어쓰고 소리를 질러도, 빨간 펜으로 낙서를 해도 기분이 하나도 나아지지 않았다. 그 당시 최선의 선택이 자해였음은 분명했다.


고등학교 때는 자해가 일상이 되었다. 아무도 없을 시간에 일찍 등교해 교실 문을 열고 가방을 자리에 둔다. 화장실에 간다. 아무 칸에나 들어가 문을 잠그고 마구잡이로 긋는다. 조금 기다린 후 대충 딱지가 질 것 같으면 와이셔츠를 내리고 나온다. 손을 닦는다. 아무렇지 않은 척, 아무 일도 없었단 듯이 교실로 향한다. 중학교 때와 다르게 양호실은 가지 않았다. 난도질된 상처가 어떻게 되든 나 자신조차 관심이 없었다.


  대학교 4학년, 스트레스와 우울증을 이기지 못하고 다시 커터칼을 찾았다. 전보다 더 강도가 강해졌음을 알았지만 상관없었다. 감정 해소가 우선이었다. 자해를 하지 않고 스트레스를 풀 시간은 없었다. 그 무엇보다도 자해가 빠른 진정을 가져왔다. 갈수록 강박이 생겼다. 긋지 않으면 불안이 밀려왔다. 당장 긋지 않으면 안 될 것 같은 느낌에 지배당했다. 자해쯤은 하지 않아도 죽지 않는단 걸 알았지만 못 견디게 답답해서 죽을 것 같았다.


  마음대로 되는 것이 없었다. 마음대로 할 수 있는 것은 오직 스스로를 해치는 것. 다른 생명은 해치면 안 되지 않은가. 감정으로부터, 우울로부터 자유롭기 위해 칼을 쥐었다. 그러면 안 되는 것을 알면서도.

기계 같은 내가 버석거리던 감정도 느껴지지 않았을 때 살아있는 것을 확인하려 선홍빛을 눈에 담았다. 한바탕 긋고 나서야 아프다, 나 사람이구나. 왜 나는, 내 인생은 이따위일까. 자괴감에 몸부림쳤다. 칼을 든 모습이 한심하고 비참해서 상처 위에 상처를 냈다.

내가 죽이고 싶을 만큼 싫고 또 싫었다.




  약을 끊기 전부터 자해와 자살사고는 약물의 효과로 차차 소거되었다. 그러나 우울증이 재발된 현재 자해를 다시 시작했다.

  “최근엔 자해 충동이 너무 심했어요. 정말 참고 또 참았는데... “

  “그래요, 잘했어요.”

  “아아.. 죄송해요,  그어버렸어요.” 소매를 걷어 손목을 보이자 의사 선생님은 이내 깊이 탄식했다.

  “왜 이렇게 심하게 했어요. 우리 겨우 끊었잖아요. 너무 힘들었잖아요. 다시 자해에 빠지면 안 돼요.  정말 내가 부탁할게요. 안 하면 안 될까요? “ 의사 선생님은 진심으로 간절했다. 마음이 아팠다. 의사 선생님의 얼굴을 마주하기 괴로웠다. 죄책감이 밀려왔다. 죄송할 따름이었다. 어느 때보다 죄스러운 하루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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