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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담이 Feb 05. 2023

계속해보겠습니다




“길가는 사람 아무나 붙잡고 물어보면 다 심하다 그럴 거예요. “

“그 정도예요? 아닌 거 같은데.”

 아직 받아들일 준비가 되어있지 않다고 해야 할지, 애써 부정하는 건지 모르겠다.

그간의 상태를 적어놓은 메모를 본 의사 선생님의 미간이 찌푸려질 때에도, 누군가 내 상태를 보면 뭐라고 할 것 같으냐는 그의 질문에도 심각성을 인지하지 못했다.


  “지금 전혀 심각성을 모르고 계시잖아요. 무감각해져 있으세요.”

“네.”

  정말 이게 심하다고 느껴본 적이 없다. 이전과 비교해 봐도 일상생활을 그나마 영위하고 있고, 우울할 때는 많지만 해야 할 일도 하고 있으니 괜찮은 거 아닌가 하고 생각했다. 내가 어쩌다 이렇게 되었는지 잘 모르겠다.


“항우울제랑 전에 먹던 약들 같이 해서 먹는 게 좋겠어요. “ 말없이 고개를 주억 거렸다. 아무렴 의사 선생님의 판단이 맞을 테니까.

당분간 일주일에 한 번씩 보기로 했다. 약도 많이 늘었다. 심각하긴 하구나. 이제야 이해가 간다.


   병원에 가는 것은 너무나 익숙하지만 증상이 심각해지는 것은 익숙하지 않다. 그리고 알아차리기도 힘들다. 늘 심각해지고 나서야 후회한다. 몸과 마음이 망가지는 것은 순식간이지만 그것들을 회복하는 건 몇 배의 시간이 필요하다.




  과연 이 터널에서 다시 벗어날 수 있는 건지 모르겠다.

  확신할 수 없다. 어디론가 도망치고만 싶다.

  언제일지 모를 날에 희망을 거는 것이 무모하게 느껴진다.

  가만히 앉아 죽은 듯이 멈춰버린 내 모습이, 속절없이 지나가버리는 시간이, 드리워지는 감정의 그늘이 한없이 나를 우울하게 만든다.


  한 치 앞도 모르는 인생이지만 한 가지 확실한 것이 있다면 내가 살아있는 한 병원에 가고, 의사 선생님을 만나고 몇 번 빼먹더라도 약을 먹겠지. 고양이를 껴안은 채 지친 마음을 달래고, 남자친구에게 안겨 울고. 그렇게 겨우 하루를 지내겠지.

몇 번의 위기가 올진 모르겠지만 이렇게라도 살아내야 하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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