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전에는 무너지고 나서야 알았는데 지금은 감정이나 사고 하나하나 망가져가는 게 느껴져서 너무 괴로워요. “
“한 번 가봤던 길이기 때문에 끝이 어떤지 잘 알아서 그런 거 아닐까요?”
어떻게, 얼마나 망가질지 뼛속 깊이 각인된 그 감각이 찾아올까 봐 도망치고 또 도망쳤다.
“어젠가.. 이렇게 다시 우울해진 게 제 탓 같더라고요. “
“왜 내 탓이라고 느껴졌어요?”
“그냥.. 제가 원인 제공을 하는 것 같아서요. 하면 안 되는 걸 알면서 자해를 하는 게 우울해지는 데에 원인 제공을 하는 것 같아요.”
“자해를 하고 싶어서 하는 게 아니잖아요. 부정적인 감정이 올라와서 풀려고 하는 거지. “
의사 선생님은 내 탓이 아니라는 듯 말했다.
아닌 것은 알지만 내 탓 같은 느낌을 지울 수 없다.
약 챙기는 것도 제대로 해내지 못하는 모습에 무력감을 느낀다.
내가 나를 망치는 느낌.
끝없이 절망하고 원망하면서 나를 채근한다.
그렇게 무너지고 또 좌절한다.
아무것도 손에 잡히지 않는 날이 있다.
그런 날이 2주가 넘어가니 내가 게으른 건지, 우울증 때문인 건지 분간이 가질 않는다.
계속해서 실패하니 뭘 하고자 하는 마음도 없다.
한없이 멍하니 있는 게 하루 일과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툭하면 밀려오는 졸음과 이겨낼 의지가 없는 나.
뭘 해도 재미없고 지루하다.
흘러가는 시간이, 매번 똑같은 하루가 의미 없다.
부질없는 삶을 살아가며 허무함이라는 바다를 헤엄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