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dhd 진단을 받다
우울증을 치료 한지 두 어달 즈음되었을 때 의사 선생님의 권유로 CAT(종합주의력검사) 검사를 진행했다.
"결과가 많이 안 좋아요." 의사 선생님은 걱정 어린 얼굴로 검사 결과를 자세하게 설명했다. 얼핏 보기에도 빨간 글씨로 '저하'가 참 많았다. 심한 사람들 중에서도 매우 좋지 않은 수준이라고 했다. ADHD는 남의 이야기라고 생각했다. 내가 ADHD라니. 어디선가 뚝 떨어진 정체 모를 것이 내 것이란다. 당황스럽기 그지없군. '도대체 어디가 ADHD라는 거지?' 이해할 수 없다고 생각했으나 얼마 가지 않아 거두어졌다.
집으로 돌아와 학생 때 공부하기에도 쉽지 않았을 것이라는 의사 선생님의 말씀이 떠올라 초등학교 생활기록부를 뒤져보았다. 담임 선생님의 종합의견란을 유심히 보았다.
4학년, 학습 주의력이 점차 높아져 감.
5학년, 학습 활동에 있어 집중력과 끈기, 참아내는 힘이 부족하니 이를 키우기 위해 노력하길 바람.
조용한 ADHD라 티가 나질 않아 성인이 되어서야 알았는데 역시 선생님의 내공이란.
어릴 때를 회상해 보니 관심 있는 것이 아니면 들을 생각 조차 하지 않았다. 한 귀로 듣고 다른 귀로 흘리는 것 또한 일상다반사였다. 그러니 수업 내용이 온전히 들어올 리가 없었다. 머릿속은 매 시간 풀가동 중이었다. 이리저리 튀는 생각과 갑자기 솟아나는 아이디어에 지칠 지경이었다. 이걸 '생각이 많다. '라는 단순한 문장으로 포장시키고 살았다니. 도저히 설명되지 않는 답답함은 ADHD 이 네 글자로 해소되었다.
어김없이 인터넷에서 ADHD 자가 진단을 찾아보았다. 답은 정해져 있지만 안 해볼 수 없지.
1. 일을 순서대로 진행하기 어렵다.
가장 못하는 것 중 하나가 체계화하기다. 정말 죽을 맛이다. 일의 순서도 제대로 정하지 못하는데 진행이라고 할 수 있겠는가. 전혀 불가능하다. 무언갈 하다가도 다른 걸 하고 있다. 당장 생각난 지금 하지 않으면 안 된다.
2. 새로운 일을 시작하고 준비하기까지 많은 시간이 걸린다.
준비 시간을 머리로 계산했을 때는 20분이지만 막상 실행했을 때는 훨씬 더 걸린다. 절대 예상한 대로 흘러가지 않는다. 시간관념이 망가져있다. 마치 고장 난 시계 같다. 차질이 없으려면 뭘 하든 상당히 일찍 준비해야 한다. (그런데 일찍 준비해도 늦을 때가 있다.)
3. 동시에 여러 가지 일을 시작하지만 끝마치기 어렵다.
그림을 그릴 때에도 이걸 그렸다가 또 저걸 그린다. 결국 완성한 건 하나도 없다. 제출일이 있는 경우 마감 기한이 다 돼서 겨우 끝마친다.
4. 책을 읽거나 대화하는 도중 쉽게 주의가 분산된다.
책을 읽을 때 공상이나 잡생각 때문에 집중력이 흩어진다. 상대와 대화하는 도중에도 끝없는 잡생각을 비롯해 어떠한 시각적, 청각적 자극이 들어오면 무시하지 못하고 계속 신경 쓰느라 대화를 놓쳐버린다.
5. 어떤 일에 과도하게 집중한다.
예 버튼을 백번은 누르고 싶다. 밥도 안 먹고 그림을 그린 적도 있다. 누가 불러도 모른다. 누가 지나가도 모른다. 흥미로운 책을 읽거나 글을 쓸 때에도 마찬가지다. 평소에 집중을 잘하지 못하니 이럴 때 1분이라도 더 집중하게 된다.
6. 정밀한 일에 주의를 기울이지 못한다.
내가 얼마나 실수를 하는가 궁금하면 정밀한 일을 하면 된다.
7. 조심성이 없어 실수를 많이 한다.
구조물을 못 보고 부딪힌다. 심지어 집에서도 그렇다. 종이를 자르다 손가락을 제대로 베인 적도 있다.
8. 다른 사람의 말을 귀 기울여 듣지 않는다.
귀 기울여 듣는 것처럼 보이지만 그렇지 않다. 잘 까먹거나 잊어버린다. 그래서 항상 메모하고 기록하려는 습관이 생겼다. 종종 그 메모를 보는 것을 까먹지만.
9. 지속적인 정신력을 요하는 작업을 피하거나 싫어한다.
상상만 해도 피곤하다. 좋아하는 일이라면 어떻게든 계속하겠지만 아니라면 시작조차 하지 않을 것이다.
10. 상황을 고려하지 않고 머리에 떠오르는 생각을 즉각적으로 말한다.
말을 뱉고 후회한 적이 있다. 엎지른 물을 다시 주워 담을 수 없듯이 말 또한 그렇지 않은가. 쏟아버린 말들이 기억 저 편에서 몰려올 때면 정말 괴롭다.
11. 지루함을 견디지 못한다.
그렇다. 이 글을 쓰는 지금도 살짝 루즈하다고 느껴진다. 지루한 건 못 참는다.
12. 불필요하게 끝없이 걱정한다.
나-걱정=0이다. 머릿속으로 시뮬레이션을 돌려가며 정성스럽게 걱정한다. 한 마디로, 사서 고생한다.
13. 위험을 고려하지 않고 행동한다.
아니다. 겁이 너무 지나치고 위험에 대한 걱정이 과도해 시작을 못한다.
14. 질문이 끝나기도 전에 불쑥 대답해 버린다.
말을 자주 끊는 편이다. 도덕적으로 말을 끝까지 경청해야 한다는 사실은 알고 있다. 그렇지만 참아내는 게 어렵다. 어렵긴 해도 말을 끊어대는 사람보다는 잘 들어주는 사람이고 싶다. 고쳐나갈 생각이다.
15. 차례를 기다릴 때 초조하고 답답하다.
매우 답답하다. 빨리빨리의 민족인 한국인의 특성이 더해지니 어지간하다. 아 내 차례 언제 오냐. 하는 정도가 아니라 지루함에 미칠 것 같다. 차례 기다리다 서서 잔 적도 있다. 웨이팅 하는 사람들이 존경스럽다.
16. 술, 담배, 게임, 쇼핑, 일, 음식 등에 깊이 빠져든다.
그렇다. 중독은 아니지만 뭔가 하나에 꽂히면 미친 듯이 파고든다.
17. 가만히 있지 못하고 손발을 움직이거나 몸을 뒤튼다.
늘 그렇다. 손가락을 움직거리거나 반지를 계속 만지작거린다.
18. 말을 지나치게 많이 한다.
주로 내 관심사에 대한 이야기가 나오거나 특정 분야의 이야기가 나오면 말을 빠르게, 많이 하는 경향이 있다. 그게 아니면 대개 조용한 편이다.
19. 가끔 창조적이고 직관적이며 지적으로 우수해 보인다.
내 생각이 솔루션이 되거나 좋은 아이디어가 되기도 한다. 이걸 이렇게 하면 되지 않나? 저건 저렇게 하면 안 되나. 이 질문들로부터 시작되는 아이디어는 일반적이지 않다. 전혀 그렇게 생각하지 못했다는 반응이 대다수이기 때문이다.
20. 가족 중 우울증, 조울증, 약물남용, 충동조절장애가 있는 사람이 있다.
진단받은 건 나뿐이다.
21. 돈을 충동적으로 쓴다.
충동적으로 사모은 전시회 굿즈가 몇 개인지 모른다. 금액에 있어 심사숙고하지 않는 편이다.
22. 과속, 음주운전을 자주 한다.
아직 운전면허가 없어서 모르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