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잇고 싶었던 것들에 대하여

by genie brand director


- 나도 모르게 내가 좋아하던 것들


카페에 가면 늘 아메리카노나 라테를 마시고, 이탈리안 레스토랑에서는 크림이나 소스가 가미되지 않은 오일 파스타를 고른다. 큼지막한 로고가 박힌 옷보다는 나만 알아볼 수 있는 디테일이 숨어 있는 옷을 좋아하고, 여전히 올드스쿨 알앤비를 즐겨 듣는다. 그렇게 살아오다 보니 서른이 훌쩍 넘어서야 비로소 깨닫게 된 것이 있다. 나는 자극적인 것보다 기준이 분명한 것을, 새로움보다는 오래 곁에 둘 수 있는 취향을 좋아한다는 사실이다.


유행하는 디저트가 눈앞에 있다면 굳이 거부하진 않지만, 일부러 찾아 나서지는 않는다. 다만 요즘 어떤 디자인이 유행이고, 어떤 브랜드가 주목받는지는 늘 관심 있게 본다. 하는 일과 직접적으로 연결되어 있기도 하고, 그 흐름을 관찰하는 과정 자체가 흥미롭기 때문이다.



나는 무언가를 더하고 변형한 것보다는, 오리지널리티가 온전히 유지된 클래식한 것에 끌린다. 그래서 매 시즌 트렌드 리서치를 하고 수많은 레퍼런스를 보면서도 그것을 그대로 반영하기보다는, 가능한 한 나만의 방식으로 다시 풀어내려고 한다. 적어도 내가 추구하는 무드만큼은 분명히 담기기를 바라면서. 몇 년 전부터 전 세계적으로 큰 흐름이었던 Y2K 스타일 역시 재미있고 눈길을 끄는 요소는 분명 있었지만, 개인적으로는 반복되는 노출 속에서 피로를 느꼈던 것도 사실이다.


그래서 화려함보다는 미니멀하고 뉴트럴한 스타일을 선호하는 사람들을 위한 가방을 만들고 싶어졌다. 이미 시장에는 수많은 미니멀 가방 브랜드가 존재하지만, 내가 꼭 지키고 싶었던 것은 단순한 디자인을 넘어서는 디테일과 무드였다.



어릴 때부터 같은 과제를 받아도 내가 만든 결과물은 어딘가 다르다는 이야기를 종종 들었다. 어디에서나 구할 수 있는 소재를 사용했지만, 내가 구성하고 표현한 방식에는 한 번쯤 더 들여다보고 싶어지는 지점이 있다고. 그 말이 정확히 무엇을 의미하는지는 당시에는 잘 알지 못했지만, 지금 돌이켜보면 ‘한 끝의 차이’에 유난히 집착해 온 시간들이었다.


수많은 브랜드가 존재하는 시장에서 살아남기 위해서는 바로 그 한 끝을 만들어내는 힘이 필요하다고 믿는다. 특히 대기업이나 메가 브랜드가 쉽게 할 수 없는 영역에서 스몰 브랜드만의 존재 이유가 생긴다고 생각한다.



어쩌면 지루해 보일 수도 있는 단순한 곡선의 미니멀한 가방. 하지만 자세히 보면 어딘가 다르다고 느껴지는 그 미묘한 한 끝. 나는 그 차이를 만들고 싶었다. 자극적이고 화려한 흐름 속에서 잠시 멈춰 서서, 정말 오래 곁에 둘 수 있는 것이 무엇인지 생각해 보는 것.


그래서 브랜드의 메시지로 ‘Pause, Keep your timeless pieces’라는 슬로건을 만들게 되었다.



PAUSE는 단순히 유행을 멈춘다는 의미라기보다, 속도를 잠시 늦추고 나만의 기준으로 다시 바라보자는 제안에 가깝다. 스타일에서도, 삶에서도 무작정 따라가기보다 잠깐 멈춰 서서 나에게 맞는 것을 선택하는 여유. 그런 태도 위에 미니멀하고 중립적인 디자인을 쌓아 올리고 싶었다. 그 연장선에서 ‘Pause objects’ 역시 탄생했다. 바쁜 일상 속 작은 쉼에도 그 여유와 감각이 스며들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결국 내가 만들고 싶은 것은 가방 그 자체라기보다, 쉽게 소모되지 않는 태도와 감각에 더 가깝다. 오래 두고 사용할수록 의미가 쌓이는 것. 그런 ‘타임리스한 한 끝’을 가진 가방을 만들고 싶었기에, 이 브랜드를 시작하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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