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적인 브랜드의 가방 사진으로만 가득한 책들이 집 안 곳곳에 있었다. 온통 가방 사진뿐인 그 책들을, 어린 시절의 나는 왜인지 모르게 자주 펼쳐 보았고, 때로는 마음에 드는 사진을 가위로 오려내며 놀곤 했다. 그때의 나는 그저 ‘가방이 많다’는 사실만을 인식했을 뿐, 왜 그런 책들과 도면들이 늘 집 안에 있었는지 깊이 생각해 본 적은 없었다.
조금 더 자라 아버지가 어떤 일을 해오셨는지 어렴풋이 이해하게 되었을 무렵에서야, 그제야 모든 풍경들이 하나로 이어졌다. 집 안에 쌓여 있던 가방 사진집과 도면들은 취미도, 우연도 아닌, 누군가의 오랜 시간과 업이 남긴 흔적이었다는 것을.
아버지는 일을 이야기할 때 자신의 성과나 결과를 먼저 말하는 사람이 아니었다. 대신 늘 같은 말들을 반복했다.
“기본이 가장 중요하다.”
“보이지 않는 부분일수록 더 정확해야 한다.”
“한 번 만든 건 끝까지 책임져야 한다.”
그 말들은 특별히 멋있게 들리지도, 교훈처럼 느껴지지도 않았다. 다만 매일 같은 시간에 작업실로 향하고, 같은 자세로 도면을 그리고, 손에 익은 작업을 반복하는 아버지의 태도 속에서 그 말들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자연스럽게 알게 되었다. 유행이나 속도보다 정확함과 완성도를 우선하는 사람. 눈에 띄지 않아도, 이름이 드러나지 않아도, 자신이 맡은 일 앞에서는 한 번도 가볍게 서지 않았던 사람이었다.
아버지에게 일은 자신을 드러내는 수단이 아니라, 평생을 걸고 지켜야 할 기준에 가까웠다. 그런 태도로 아버지는 패턴사로서 일을 해왔다. 국내 패션 대기업의 패턴실에서 일했고, 이후에는 개인 사업자로서 가방 제작 일을 이어왔다.
그런 아버지를 보며 자연스럽게 들었던 생각이 있다. 수많은 국내외 브랜드의 제품을 만들어 왔지만, 그 결과물은 늘 다른 브랜드의 이름으로만 남았다는 것. 정작 그 기술과 기준, 태도는 어디에도 기록되지 않았다는 점이었다.
그래서 이 기술과 태도, 그리고 가치가 특정 브랜드의 그림자가 아니라 하나의 고유한 이름으로 남았으면 좋겠다는 마음이 들었다. 어쩌면 그 순수한 마음이 지금의 브랜드를 시작하게 만든 가장 큰 이유였을지도 모른다.
한 시즌 반짝이고 사라지는 브랜드가 아니라, 오래 남는 하나의 이름.
화려함보다 기준과 태도를 담아낸 이름. 아직은 미약하지만, 지금도 그 여정을 지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