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작

by Acci

누군가가 이 글을 읽어줄지는 모르겠습니다. 이런 얄팍하고 단순한 형태의 자기 복제물 같은 글들, 그러니까 몇 년이 지나더라도 결국엔 종이책으로는 만들어지지 못할 이야기들을 왜 쓰고 있느냐 물어본다면 저는 어떤 멋있는 답변을 해줘야 하나 고민하다 결국 글 쓰는 게 좋아서 그런다고 답할 것 같습니다.



글을 쓰는 입장에서 이 글은 이렇게 읽어 달라고 대놓고 떼쓰는 것은 흉하고 추하다고 생각합니다. 그래도 저는 생떼를 좀 써야겠습니다. 부디 제가 적어내는 모든 이야기들을 맥주나 커피, 담배, 간식, 하다못해 음악이나 드라마와 같이 즐겨주셨으면 합니다. 술을 끊은 지는 꽤 오래됐지만 저는 글을 술자리에서 안주 삼아 지껄이는 마음으로 적습니다. 그러므로 곁들일 거리 하나 없이 누군가가 진지하게 경청한다고 생각하고 있으면 부끄러워 견딜 수가 없으니 부디 부탁드립니다.



고등학교 때 국어 선생님은 수업시간에 자신의 이야기를 말하는 걸 정말 좋아하셨습니다. 문제는 수업시간 50분 중 40분을 자신의 이야기를 떠들었다는 것입니다. 지금도 기억나는 이야기 중 하나는 교과서 중 주인공이 여행을 떠나는 지문을 읽고 있었는데, 갑자기 선생님의 은퇴계획을 장황하게 이야기하기 시작하는 것입니다. 펜션 사장이 꿈인 선생님은 거기서 펜션을 지을 위치가 어디냐 말하다 자신의 고향 이야기를 시작하셨고, 고향 이야기를 하다 고향 친구, 고향 친구에서 또 어떤 이야기를... 무한의 액자식 구성 이야기를 듣다가 어차피 시험 내용도 아닌데 들을 필요가 없다는 생각이 들어 책상 위로 엎드렸지만, 지금 와서 생각해 보면 40분 동안 그렇게 자연스레 자신의 이야기를 한다는 것 자체가 대단하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글을 쓰며 어쩌면 누군가 볼 사람이 없는 것이 더 좋다는 생각을 하게 됐습니다. 나는 잡생각이 많은 사람입니다. 국어 선생님이야 반강제로 책상에 앉아있는 학생들을 상대로 마음껏 욕구를 배출했지만, 저는 다릅니다. 귤을 먹으며 제주도를 생각하고, 더운 열대지방이라는 생각이 들며 바나나를 떠올렸다가 바나나는 사실 과일이 아니라 채소라는 사실 같은 무의식의 흐름 속 이야기들이 머릿속에서 너무 시끄러워 견딜 수가 없을 때가 종종 있습니다. 그럴 때마다 배설할 곳이 필요한데 그 독자들이 제 글을 평가하고, 반응을 눌러준다고 하면 제가 과연 지금처럼 편하게 글을 쓸 수 있겠냐는 말입니다. 멀쩡한 문장을 이리저리 비트는 잔재주를 부릴 테고 멋있어 보이려고 노력할 텐데, 저는 그런 재주도 부족하고 그러고 싶지도 않습니다. 음악으로 치자면 장기하와 얼굴들의 '정말 없었는지'의 앨범처럼 담담하고 솔직한 이야기들을 쓰고 싶습니다.



앞선 생각이 들었음에도 결국 이 글을 이곳에 적어 날려 보냅니다. 누군가는 이 글을 읽어보시겠죠. 그냥, 이런 사람이 있구나 정도면 됩니다. 여전히 부끄러움은 지울 수 없었지만, 남에게 기억되고 싶다는 모순이 있으니 조용히 보고 좋다고 표현해 주길 바라는 마음에서 이 이야기를 남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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