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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소소DG Sep 05. 2024

선생님, 공황장애 같습니다.

스트레스일까? 코로나 부작용일까?

"선생님, 공황장애 같습니다. 이거 치료 제 때 못 받으시면 그 좋은 직장 그만두셔야 할 수도 있어요."


"네? 공황장애요?"


방송에서 연예인들이 많이 걸린다는 병명이 내게는 굉장히 낯설게 느껴졌다.


"검사 결과 코 쪽에 부비동염이 왔다간 흔적만 있어요. 그러나 혈액 검사, 엑스 레이나 각종 검사 결과 모두 이상 없으신 걸로 나와요."


"그럴 리가 없어요. 저는 지금 이렇게 가만히 앉아 있는 것도 힘든걸요. 진짜 금방이라도 숨이 넘어가서 쓰러져 죽을 것만 같아요. 검사가 못 찾아 낸 것은 아닐까요? 저 좀 살려주세요. "


"지금 나온 결과를 가지고서는 공황장애 말고는 답이 나오지 않습니다."


"그럼 저는 어디로 가야 하나요……."


"글쎄요..정신과 쪽으로 가보셔야겠죠?"


세상에..충격이었다. 이게 큰 병이 아니었다고?


얼마 전 코로나에 감염되어 몸의 면역 상태가 완전히 무너진 상황이 왔었다. 문제는 개학하고 나서 나의 몸 상태였다. 담임교사로서 학생들을 지도 및 관리할 뿐만 아니라 업무나 수업에도 시간을 써야 하는 등 계속해서 신경 쓸 일이 많았음에도 불구하고 나의 컨디션은 정말 안 좋았다. 더구나 외부에서 학생들을 지도하는 날에는 몸 상태가 끔찍했다. 나는 그러한 몸 상태로  학부모님 상담을 하고 나에게 다가오는 학생들에게 반응해주어야 했다. 가만 있어도 부서질 것만 같은 몸으로 학생들을 지도하는 일은 정말 쉽지 않았다. 거기에 윗 분들은 나를 호의적으로 배려하지 않았다. (이 부분은 할 말이 많으니 나중에 정리해보겠다.) 금방이라도 끊어질 듯한 정신력으로 하루하루를 버텨내야만 했다. 며칠 정도는 아침에 아예 일어날 수가 없어서 출근을 할 수 없는 날들도 있었다. 나 대신 보강을 들어가시는 선생님께도 수업을 바꾸는 수업계 선생님께도 그리고 아이들에게도 죄송하고 미안한 마음 뿐이었다. (이 부분은 교직에 계신 분들만 이해할 수 있다. 교사들의 애로사항이다. 아파도 감히 아프다고 빠질 수 없는..) 올해 아무리 아파도 병가 하루 써본 적 없는 내가 연달아서 며칠을 병가를 쓰게 되었다.


그러던 어느 날, 깨질 듯한 두통이 너무 심해 퇴근 후 씻지 않고 소파에 쓰러져 한 시간 정도 기절하고야 말았다. 한 시간 정도 흘렀나? 식은 땀을 흘리며 일어난 나는 내 옆에 아무도 없다는 사실에 살짝 으스스한 공포를 느끼며 몸을 떨었다. 남편도 그 상황에서 내 전화를 받지 못했다.

'이렇게 아무도 없는 상태에서 그대로 쓰러져 가버리면..?' 나는 소름이 돋았다. 심지어.. 그냥 고통 없이 점점 힘이 빠지며 이대로 세상을 떠나는 것도 나쁘지 않지 않은 것 같기도 했다. 몇 분 후 정신을 차린 나는 그 상태로 소파에 누워 바로 각종 병원과 콜센터에 연락해보기로 하고 휴대폰으로 정보 검색을 하였다.

문제는 코로나 후유증을 연구한다는 병원이나 보건소에 전화를 돌렸으나 실제로 전화 연결까지도 힘들거니와 대학 병원 같은 경우 진료 예약을 잡기도 쉽지가 않았다. 나같이 평일에 시간을 내기 어려운 직장인들은 그럼 어떻게 해야 하나? 관련된 분야를 연구하는 의사나 간호사와 시간을 내서 예약을 해야 하는데.. 당장 갈 수 있는 곳은 사실 응급실 말고는 없었다. 사실 응급실에서도 나의 증상을 크게 해결할 수 없을 것이라 확신했다. 이것은 나의 경험에서 나온 판단이었다.


2년 전에 나는 코로나 백신을 맞고 다음 날 남편과 예능을 보며 평범하게 저녁식사를 하던 중에 갑자기 쓰러진 적이 있었다. 남편이 급하게 119에 전화하여 앰뷸런스를 타고 백신 접종을 하였던 대학병원 응급실로 갈 수 있었다. 당시 내 옆에 누워있었던 사람들은 모두 백신 부작용이 신체적으로 나타나서 끙끙 거리고 있었다. 그들과 같은 증상은 아니었지만, 알 수 없는 불안함에 금방이라도 호흡이 끊어져 죽을 것만 같아 링거를 맞으며 병원 침대에 누워있으면서도 숨이 안쉬어지고 정신이 혼미하였다. 이대로 유서를 써야 하나하는 별의 별 생각도 들었다. 한밤 중에 받을 수 있는 각종 검사를 다 받았지만 의사들은 진단명이나 원인을 못 찾았고, 증상이 조금 완화될 때까지 아미노산 링거 한 통을 끝까지 다 맞고 나서야 새벽에 퇴원했던 기억이 난다. 병원에서는 관내 보건소에 제출할 수 있는 백신 후유증 보상 서류들을 챙겨 주었다. 나와 남편은 새벽에 그 종이를 들고 귀가하며 당장 눈 앞의 불을 끈 것 같아 안심하면서도 무언가 해결되지 않은 찝찝한 기분을 감출 수 없었다. 일년정도 뒤에 나는 정부기관으로부터 백신 후유증으로 인한 인과성 인정 서류를 발급 받았고(굉장히 드문 일이라고 한다.) 응급실 치료 비용 일부를 환급 받을 수 있었다. 이후로 나는 모두가 다 맞는 2차 코로나 예방 접종은 맞지 않았고 그 당시에 식당에 입장할 수 없게 되었었다..


나의 경험은 내가 보다 나의 증상에 관해 능동적으로 움직일 필요가 있다는 사실을 증명한 것과 같았다. 내 몸이 말하는 경고 신호를 무시하면 정말 큰일 나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나는 나의 증상을 고치기 위해 더 발 벗고 나서기로 결심하였다.  쇼파에서 일어난 나는 하복부에서 굉장한 통증을 느꼈다. 찌릿찌릿하면서도 불쾌한 느낌이어서 금방이라도 혼절할 것 같았다. 누워서 식은 땀을 흘리며 나는 동네 산부인과에 전화를 걸어 내일 예약을 걸었다. '이건 또 뭐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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