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황장애와 수술, 그리고 휴직 준비
겁쟁이의 병원 탐방기
병가를 쓴 나는 동네 산부인과를 방문하였다.
접수를 하고 대기하는 중에도 나는 가만히 소파에 앉아있는 것도 벅차서 힘들었었다.
누가 살짝이라도 밀면 금방이라도 쓰러질 것 같았고, 똑바로 앉는 것뿐 아니라 눈을 뜨고 있는 것도 힘들어서 눈을 감고 있었다. 이상하게 기저에서 올라오는 묘한 몸살 기운과 호흡 불안정 상태..
여기에다가 최근 소변을 볼 때 굉장한 통증을 느꼈고, 복통까지 함께 해 죽을 맛이었다.
제발 큰 병이 아니길.. 나의 몸과 마음은 점점 쇠약해졌다. 이 알 수 없는 고통의 원인이 제발 죽을병이 아니길 바랐다. 병원이라 티는 못 냈지만 속에서는 눈물이 끊임없이 터져 나왔고 신에게 원망하는 기도도 속으로 읊조렸다.
'제가 무엇을 얼마나 잘못했으면 이런 아픔을 겪나요?'
간단한 검사를 받고 나서 의사 선생님은 바이러스염, 방광염 진단과 함께, 6cm가 조금 넘는 자궁근종이 보이며 난소 쪽에도 무언가가 보이는데 검사 결과가 나오면 다시 내원해야 한다고 했다. 심신 미약한 상태였던 나는 진료를 받다가 살짝 쓰러지고 말았고 병원 입원실에서 수액을 맞고 몸을 추스르고 나왔다.
"수술은 하셔야 해요. 요즘은 로봇수술 있으니까 그거 하시면 될 거예요. 약은 꾸준히 복용하시고 검사 결과 나오면 연락드릴 테니 다시 내원하세요."
"저.. 혹시 방금 제가 쓰러진 이유가 말씀하신 산부인과적 증상들 때문은 아닌가요?"
"네? 아닙니다. 그것 때문은 아니에요. 아마 너무 스트레스를 받으셔서 쇼크를 받으신 것 같은데요."
병원을 나와 약국에 들러 약을 조제받고 귀갓길에 엄마에게 전화를 걸었다. 엄마는 생각보다 큰 사이즈의 근종에 놀라시며 나를 위해 기도하겠다고 하셨다. 나는 귀가한 후에도 계속에서 소파에 누워서 앓다가 병원 정보를 찾았다.
얼마 후 검사 결과가 나와 찾아간 병원에서는 다행히도 난소 쪽은 큰 문제가 아니며 난소 쪽에 무엇이 생겼다가 터져서 없어진 흔적이라고 이야기하였다. 여자의 몸은 왜 이리 복잡한 것인가. 나는 여자로 태어난 것이 한순간 원망스럽기도 하면서 한편으로는 몸이 이 지경이 될 때까지 내 몸을 돌아보지 못한 죄책감을 느꼈다.
그리고 나는 근종제거를 위해 병원을 알아보았다. 문제는 나에게 일어난 증상들이 근종 때문은 아니었기에 이를 고칠 수 있는 병원을 찾는 것이었다. 일단 수술 날짜부터 잡는 것이 급할 것 같아 남편 직장 동료 아내분이 추천해 주신 대학 병원을 방문하여 진료 날짜를 잡았다. 대학 병원 진료 잡는 것이 왜 이리 어려운지.. 학교는 당분간 나가기 어렵다는 생각이 들었다. 유명하신 선생님이라고 해서 안심은 되지만 아무래도 수술이라고 하니 너무 무섭고 걱정이 되었다. 교수님은 초음파 검사 결과지와 상관없이 내 목을 만지시며 갸우뚱하셨다.
(어려 보이는 내 모습 때문인지 교수님은 나에게 가타부타 반말로 진료를 진행하셨다. 내 상태가 더 중요했기 때문에 크게 신경 쓰지는 않았다. 나만 잘 치료해 주시면 되니까.)
"흉터 때문에 복강경과 로봇수술 중에 정하면 돼. 그런데 갑상선은 검사 한 번 받아봐."
다행히도 일찌감치 들어놓은 실비보험 덕에 비싼 로봇수술을 받을 수 있었다. 이 수술이 천만 원 정도라니.. 생판 내 돈이 들어갔다면? 등줄기가 서늘했다. 로봇수술에 대한 설명을 듣고 나서 나는 병원 근처의 이비인후과를 방문하여 피검사와 갑상선 초음파를 받았다. 다행히 의사 선생님은 아주 미세한 결절이 있지만 없다고 보아도 된다며 나를 안심시켰다.
몸과 마음이 지친 나는 다시 집으로 향하였다.
얼마 후 학교에서 병가와 휴직을 쓰기로 결정되었다. 나의 몸 상태가 정상적으로 일을 하기에 어렵다고 판단되서였다. 나오는 과정 중에 살짝 유쾌하지 않은 일들이 있었으나 다행히 휴직을 쓸 수 있었다.
휴직을 쓰고 나서도 여전히 나는 여전히 두려움과 불안함 속에서 힘든 호흡을 내쉬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