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DHD와 관련해 제가 어떤 사람이
되고 싶은지 떠올릴 때면,
저는 늘 ‘앞에서 끌어가는 사람’보다는
‘옆에서 걸어주는 사람’에 가까운 존재이고 싶습니다.
정답을 알려주는 전문가가 아니라,
함께 답을 찾아가는 조력자 말입니다.
그 마음은 제 공부와 글쓰기의 방향을
조용히 이끌어온 기준이었습니다.
그래서인지 어제 있었던
작은 일이 마음에 오래 머물렀습니다.
쓰레드 프로필에 적어둔 석사 과정 이야기를 보고
어떤 분이 이렇게 말했습니다.
“ADHD 환우들에게 조심해서 말해.
석사 언급은 하지 말고~“
문장 자체는 짧았지만,
그 말을 읽는 순간 마음 한쪽이 세게 긁히는 듯했습니다.
왜인지 바로 설명할 수는 없었지만
잠시 멈칫하게 되었습니다.
돌아보면 그 말에는
제가 애초에 지키고자 했던 태도나 진심을
읽지 못한 결이 분명히 있었습니다.
저는 누군가에게 위에서 설명하려는 의도가 없는데
왜 갑자기 조심하라는 말을 들어야 했을까?
제가 공부하고 있는 과정은
제가 걸어온 여정의 일부인데
그걸 말하면 안 된다는 뜻이었을까?
아직 시작도 제대로 못 했는데
제가 권위를 앞세우는 사람처럼 보였던 걸까?
저는 경험과 공감을 앞에 두고 싶었을 뿐인데
그 마음이 어딘가에서 오해된 건 아닐까?
이 질문들이 동시에 떠올랐습니다.
그리고 그 불편함은
‘제가 부족해서’ 보다는
‘제 진심이 닿지 않았기 때문에’
생긴 것이란 걸 알게 되었습니다.
생각해보면 온라인이라는 공간에서는
제가 아무리 섬세하게 쓰려고 해도
형식 자체가 ‘일방적 전달’이기 때문에
누군가에게는 “따라오면 된다”는
말처럼 들릴 수도 있습니다.
정답을 알려주는 사람처럼 보이기도 하고,
앞에서 끌어가는 태도로 읽힐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저는 그런 의도를 가지고 있지 않습니다.
저는 ADHD를 하나의 고정된 문제로 보지 않습니다.
경험은 각자 다르고, 리듬은 모두 다르고,
어려움의 결도 사람마다 다르게 펼쳐지는
넓은 스펙트럼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온라인에서 제가 하는 말은
정답을 말하려는 것이 아니라
그저 이해를 돕는 여러 정보들 중 하나에 불과합니다.
저는 스스로를 ‘말하는 사람’이 아니라
‘전달자의 역할’에 가깝게 두고 싶습니다.
각자가 자신에게 맞는 방식으로 해석하고
필요한 만큼만 가져가면 좋겠다는 마음으로 글을 씁니다.
그럼에도 어제 그 한 문장 앞에서
제 마음은 조금 흔들렸습니다.
제가 노력해온 태도가 다른 모습으로
비춰졌을지도 모른다는 생각 때문입니다.
하지만 미묘하게 더 깊은 곳을 찔렀던 건
“내가 아직 정식 자격을 갖추지
못했다는 사실 자체”였습니다.
마치 제가 무언가를 ‘자격 없이’ 하려는
사람처럼 보였다는 오해가 가장 아프게 느껴졌습니다.
저는 상담사나 ADHD 코치라는 이름을
쉽게 쓰고 싶지 않습니다.
지금 제가 하고 있는 일은 무자격 활동이 아니라
정식 상담사이자 ADHD 코치가 되기 위해
시간을 들여 수련하고 배우는 과정입니다.
그 길을 성실하게 걷고 있는데도
그 부분이 왜곡된 것처럼 느껴졌던 순간이
저에게는 더 불편했습니다.
하지만 이 감정을 천천히 들여다보니
불편함은 결국 ‘책임감에서 온 감정’이라는 걸
알게 되었습니다.
저는 정말로 사람에게 도움이 되고 싶었던 것이라
흔들린 것이고,
그 마음이 잘못 전해지는 게
두려워서 아팠던 것입니다.
제가 바라는 것은 높은 자리에서
정답을 말하는 전문가가 되는 것이 아닙니다.
사람의 고유한 리듬과 감정을 존중하며
그 사람이 자기 방식대로 갈 수 있도록
옆에서 걸어주는 사람이 되고 싶습니다.
제가 석사를 언급한 것도
무언가를 가르치기 위해서가 아니라
더 잘 이해하고 더 섬세하게 돕고 싶어서
선택한 과정일 뿐입니다.
어제의 작은 흔들림은
제가 지키고 싶은 태도를
다시 한번 확인하게 해주었습니다.
저는 앞에서 끌어가는
전문가가 되고 싶은 사람이 아닙니다.
저는 그저 함께 답을 찾아가고 싶은 사람입니다.
그리고 그 마음은 흔들릴 수는 있어도,
쉽게 사라지지는 않습니다.
저는 여전히 조력자의 길 위에 있습니다.
조용하지만 분명한 걸음으로,
계속 걸어가 보고 싶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