채 30미터도 안 되는 길은 천리길처럼 멀고 힘든, 그리고 두려움의 길이었다.
그러나 마음으로는 1초 만에 그 길을 달려 기차에 올라 타야만 했다.
그것은 현실의 절실함이었다.
하루 중 아침에 한 번 있는 이 기차를 놓치면 하루를 굶어야 할지도 모른다.
엄마와 딸 셋이서 판잣집의 한쪽 좁다란 방에서 꿈꾸는 미래도 없이 오로지 하루하루를 어떻게 연명해 나가 야 하는가가 전부인 캄캄한 삶이었다.
그것도 아침저녁으로 서울을 오가는 기차에 무임승차를 하지 못한다면 어려운 일이다.
기차 안에서는 승무원이 오가며 검표를 한다. 그것을 피하기 위해서 잠시도 정신줄을 놓아서는 안된다.
들키기라도 하면 두배로 물어야 하니 끔찍한 일이 아닐 수 없다.
이렇게 매일을 엄마와 함께 기차로 한 시간 거리의 서울로 무거운 물건을 팔러 다녀야 하는 열다섯 살 소녀의 어깨는 늘 처져있다.
가방의 무게를 여린 어깨가 감당이 안되어서, 또한 마음에 희망의 빛이 없으니 더 늘어질 수밖에.
앞날들이 아득하고 고된 나날이었다.
더 기가 막히는 것은 거지 같은 놈팡이가 끼어 들어올 데도 없는 곳에서 밥을 얻어먹으며 언니에게 아이를 갖게 했다는 것이다. 언니는 불룩한 배로 그 좁디좁은 방구석에서 놈팡이와 함께 지내야만 하는 말도 안 되는 상황을 가져왔다.
학생들 하교 시간에 맞춰 저녁시간에 운행되는 기차를 타기 위해 하루 종일 서울 거리를 거닐며 호떡하나로 끼니를 때웠다. 또 무임승차로 덜커덩 거리는 기차 바퀴소리는 긴장감에 덜컥거리는 심장소리와 같았다.
늘 기차 안은 붐벼서 앉을자리도 없지만 혹간 자리가 난다 해도 검표원이 올까 봐 앉을 수가 없었다. 서 있다가 빨리 화장실이나 다른 칸으로 옮겨야 하니까.
한 시간 거리는 지옥으로 가는 지루한 수만리 길이었다.
매일 반복되는 이러한 일상은 언제나 끝이 날까?
아마도 죽기 전에는 끝나지 않을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거리에는 새하얀 깃의 교복을 입은 소녀들이 즐거이 책가방을 들고 까르르 거리며 삼삼오오 다니고 있었다.
'저 아이들은 얼마나 행복할까? 그저 공부만 하면 되는 공주들이 아닌가. 저 가방 속에는 찬란한 꿈이 가득하겠지?'
소녀의 가방에는 물건을 팔고 난 텅 빈 공간에 절망의 잿빛구름만이 가득했다.
'나도 중학교를 중퇴하기 전에는 늘 우등생인 데다 모범생으로 주위의 칭송을 받아왔는데 지금의 나는 무엇을 향해 가고 있는가?'
어렸을 때부터 부끄러움을 많이 타고 올바른 행동 만을 해 왔는데 무임승차라는 불법까지 저지르다니.
용서할 수 없는 일이고 모든 게 다 싫었다.
밤이 되어 식구들이 종이 상자에 인형을 딱 맞게 넣은 것처럼 빈틈이 없는 좁아터진 방구석에서는 아무것도 할 수가 없었다.
밖에 나가 여기저기를 돌아다니니다 보면 거리는 온통 서양 음악이 시끄럽게 흘러나오고 그 안에는 울긋불긋한 불빛아래에서 옷을 반만 걸친, 나이를 가름할 수 없게 짙은 화장을 한 여인들이 키가 크고 코가 큰 미군들과 춤을 추고 있었다. 그녀들은 과연 즐거워서 춤을 추는 것인가 생존을 위해 웃음과 몸을 파는 것일까?
그들 사이에는 사랑이라는 가교가 있는 것일까?
동네에는 더러 머리가 노란 아이도 피부가 검은 아이도 있었다.
60년대 초반 전방의 작은 도시 모습은 거의가 비슷했다. 모두가 미군 부대에서 이렇게 저렇게 흘러나오는 것으로 삶을 이어가고 있었다.
아직 세상을 다 모르는 어린 소녀에게는 삶의 올바른 기준이 무엇인지 혼란스러운 나날이었다.
머언먼 훗날에 와서 생각할 때 아름다운 젊은 날의 한 단면이라고 미소 지으며 회상할 수 있을까?
또한 그 이후의 삶을 단단하게 하는 디딤돌이 되었노라고 말할 수 있을까?
그렇게 삶의 최하위 단계에서 오로지 굶지 않는 것만이 인생의 목표 인양 생을 이어가던 어는 날 섬광처럼 뇌리에 번뜩이는 빛줄기가 있었다. 바로 어떤 고난이 있어도 해야겠다는 공부에 대한 욕구.
나중에 생각하니 그것은 한 인간을 구원하는 절체절명의 선택이었다.
현실의 막막함에 모든 것을 포기하기에는 남은 생이 길기만 한데 먹고 사는데만 만족하며 살 수만은 없다는 생각이 들었다. 밤이면 광란의 도시로 변하는 전방 지역의 낯선 풍광도 두려움의 세계였다.
밤을 새워가며 하는 공부는 어려움이 아니라 절대로 놓아서는 안 되는 단 하나의 희망줄이었다.
어려서는 많은 꿈을 가지고 있었지만 현실은 꿈대로 되지 않는다는 것을 일찌감치 알아버린 소녀는 그냥 일단 해보자 하는 마음으로 노력했다.
하고 싶은 공부를 하면 길이 보일지도 모른다는 막연한 희망은, 어쩌면 부질없이 지나가는 무모함 일 수도 있다.
그러나 이렇게 무턱대고 시작한 공부는 빛을 발하여 검정고시 전국 1등의 결과를 가져왔다. 그 끝에 어떠한 결과가 오더라도 그것은 생동의 원동력으로 다가왔다.
이어서 점차 가정 형편도 조금씩 나아져 가고 드디어 꿈에나 그리던 대학생이 되었다.
산적하게 쌓여 있는 쓰레기 더미에서 오롯이 피어난 한 송이 작은 꽃과 같은 기적이라고 생각했다.
지난 5년을 돌이켜 보면 기나긴 시간이었다.
암울한 절망 속에서 아름다운 4계절은 늘 먹구름이 비를 잔뜩 머금고 세상을 쓸어버리기라도 할 폭우를 쏟아 낼 것만 같았다.
'아! 아름다움도 아름다움 그 자체가 아무리 발광을 해도 곧 무너 저 버릴 것 같은 자그마한 가슴에서는 꽃을 피우지 못하는구나.' 하는 것을 알았다. 희망이 없는 삶은 인간이 아니라 보잘것없는 미물에 불과했다.
찬란한 꿈 속에서 보내야 할 십 대 후반의 삶은 그렇게 지나갔다.
어둑한 터널을 가까스로 빠져나온 소녀는 찬란한 꿈을 창공에 펼쳐본다.
비록 그 꿈의 여정이 길고 어렵다 하더라도 가보리라.
겨우 내내 죽은 듯이 추위를 견뎌낸 꽃은 봄이 되면 어김없이 그 아름다움을 보여주어 '봄'이라 하나보다.
봄이 되어보리라.
그러나 더러는 봄을 기다리다 혹독한 추위를 이겨내지 못하여 꽃이 되지 못한 것들도 있지 않을까?
그리되면 어쩌지?
그림 이호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