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이 싫어서(장강명)

by 궁금하다

흔히들 하는 말,

피할 수 없으면 즐겨라.


이 말은 함정이 있는 것 같다. 왜냐면 피할 수 있는 기회를 너무 쉽게 포기하도록 만들기 때문이다.

우리는 너무나 쉽게 피할 수 없다고 생각하고 개고생을 당연시하면서 받아들이기 때문이다.


따라서 우리는 새롭게 생각해야 한다.


피할 수 있으면 피해라.


이 소설의 주인공 계나는 바로 이런 인물이다.(1인칭 주인공 '나')

그녀는

아프리카 초원 다큐멘타리에 만날 나와서 사자한테 잡아먹히는 동물 있잖아. 톰슨가젤. 걔네들 보면 사자가 올 때 꼭 이상한 데서 뛰다가 잡히는 애 하나씩 있다? 내가 걔 같애. 남들 하는 대로 하지 않고 여기는 그늘이 졌네, 저기는 풀이 질기네 어쩌네 하면서 무리에서 떨어져 나와 있다가 표적이 되는 거지. 하지만 내가 그런 가젤이라고 해서 사자가 오는데 가만히 서 있을 순 없잖아. 걸음아 나 살려라 하고 도망은 쳐 봐야지. 그래서 내가 한국을 뜨게 된 거야.

도망치지 않고 맞서 싸워서 이기는 게 멋있다는 건 나도 아는데...... 그래서, 뭐 어떻게 해? 다른 동료 톰슨가젤들이랑 연대해서 사자랑 맞짱이라도 떠?


그녀는 이 한국 사회에서 치일만큼 치였고 따라서 한국을 피해 호주로 날아간다.

모두들 출근 시간에 지하철 2호선을 타보았다면

한국 사회의 치열함에 몸서리치지 않을 수 없을 것이다.


한국에서 회사 다닐 때는 매일 울면서 다녔어. 회사 일보다는 출퇴근 때문에. 아침에 지하철 2호선을 타고 아현역에서 역삼역까지 신도림 거쳐서 가 본 적 있어? 인간성이고 존엄이고 뭐고 간에 생존의 문제 앞에서는 다 장식품 같은 거라는 사실을 몸으로 알게 돼.

신도림에서 사당까지는 몸이 끼이다 못해 쇄골이 다 아플 지경이야. 사람들에 눌려서. 그렇게 2호선을 탈 때마다 생각하지. 내가 전생에 무슨 죄를 지었을까 하고.


게다가 계나는 추위를 너무 싫어하고, 아버지가 빌딩 경비를 한다는 이유로 남자 친구네 가족들로부터 무시를 당하고, 겨우 모은 돈을 가족의 아파트 분양을 위해 희생하라는 강요 아닌 강요를 당한다.

그녀가 떠나기 위해서 '한국'은 처절할수록 좋다.

그래서 그녀는 사랑하는 남자, 지명을 버리고

부모와 형제를 버리고

호주로 가는 것이다.


한국이 싫으면 호주로!


그녀는 처절하지만 경쾌한 인물이다.


(호주 남자친구 댄)

어느 날엔 그렇게 말하더라. 내가 걔보다 피부가 더 흰데. 백인 중에도 나처럼 피부가 흰 애는 거의 없다고.

내가 발을 꼬고 앉아 있을 땐 이렇게 말했어.

“넌 다리가 짧아서 귀여워.”

니미 썅, 그게 칭찬이냐?


그녀는 몸뚱이 하나로 날것의 삶을 살면서도 경쾌하게 헤쳐 나간다.


그녀는 처음에 한국이 싫어서 떠났고, 두 번째로 한국을 떠날 때는 한국이 싫어서가 아니라 행복을 찾아서 떠난다고 이유를 설명한다.(시민권을 딴 후, 한국으로 돌아와 지명과 잠시 동거하다가 다시 떠난다. 나름 성장이라고 할 수 있나?)


지명은 고개를 숙인 채 내 얘기를 들었어. 아무 말도 안 하더라. 내가 오히려 묻고 싶었지. 너는 왜 그렇게 나를 좋아하는 거야? 나 따위가 뭐라고 나한테 평생을 걸어? 너무 고맙고 미안했어. 하지만 고맙고 미안하다는 이유로 내가 네 옆에 있을 수는 없어…….

이제 내가 호주로 가는 건 한국이 싫어서가 아니라 내가 행복해지기 위해서야. 아직 행복해지는 방법은 잘 모르겠지만, 호주에서라면 더 쉬울 거라는 직감이 들었어.


그렇게 그녀가 떠난다고 해서 행복해지기는 쉽지 않을 것이다.

책 말미에 있는 평(허희)처럼


동생 '예나'가 사귀는, 밴드에서 베이스를 연주한다는 남자 친구를 평가하는 그녀를 보라. 계나는 본인이 여태껏 냉소적으로 비판하던 사람들과 놀라울 만큼 닮아 있다.

그녀는 쉽게 행복해지기 위해 호주 이민을 단행했다고 말한다. 솔직하고 구체적인 속내는 이렇다. "내가 호주에 간 것은 내 신분이 오를 가능성이 있는 방향으로 한 일이야." 지명의 가족에게서 신분 차이의 굴욕을 절감했으므로, 계나는 신분 상승이야말로 행복해지는 지름길이라고 신봉하게 되었는지도 모른다. 경제적 감각에 침윤된 관점이 변하지 않으면 그녀는 틀림없이 불행해진다.


그리고 평론가는


"톰슨가젤들이랑 사자랑 맞짱뜨자는 게 아니야. 톰슨가젤들이랑 사자랑 연대해서 우리를 부숴버리자는 거지." 이것이 이 사육장 너머를 지향하는 내가 최종적으로 도출한 방안이다.

이라고 말한다.


맞는 말이라고 생각한다. 결국 그녀도 비교를 통해서 행복을 찾고 있으니까.

하지만 나는

그래도 계나가 좋다.

애시당초 톰슨가젤과 사자는 연대할 수가 없지 않나?

그러면

계나 정도 하는 것도 얼마나 기특한가 이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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