왜 제목은 아버지의 해방일지였을까?
사회주의자로서, 인간으로서 대외적으로 훌륭했던 아버지는
관계를 거부하는 아내에게 불같이 화를 내는 남편이었으며
자식을 무서워하는, 빨갱이의 멍에를 쓰고 반항심 가득했던 딸 앞에서 낫으로 보던 책을 찢어버리는
그런 아버지였다.
사회주의자였던 사회적 얼굴을 벗어버렸으니
아버지는 해방된 것일까?
사회적인, 어떤 가면 같은 것은 벗지 못했었는데
죽음 이후 드러난 아버지의 모습을 통해서 아버지는 자유로워진 것인가?
아버지는 해방된 것인가?
아버지가 해방된 것이 아니라 아버지의 딸인 '나'가 해방된 것이 아닌가?
내가 이 소설을 읽으면서, 후반부로 가면서 가끔씩 눈이 아려온 것은 나의 아버지가 떠올랐기 때문이 아닐까 싶다.
돌아가신 지는 벌써 햇수로 10년이 넘은 우리 아버지.
굴레와도 같았다.
끊을 수 없는 굴레, 그래도 남보기 부끄럽지 않게, 명절 때 가끔 내려가고 했었던 겨우 그 정도 아버지.
엄청 무서웠고 또 답답했다. 숨이 턱턱 막혔던 아버지다.
여러 장면들이 떠오르고
또 잘 기억나지도 않는다고 말하기도 했던 아버지다.
어느덧 그 냥반은 돌아가셨고
내가 아버지가 되어 누군가의 전철을 밟고 있는 것 같다.
우리 아버지는 사회주의자가 아니고 그래서 정치범으로 감옥에 갔다 온 것도 아니지만
세상 모든 아버지는 자식에게 굴레이지 않을까 싶다. 가난했던, 그리고 내 인생에 밥숟갈을 얹고 끊임없이 나를 괴롭힌다 싶기도 했다.
돌아가시면서도 나는 아버지의 인간적인 면모를 깨닫지는 못한 것 같다.
나는 아버지를 외면한 채
얼른 이 사회적인 절차를 마쳤으면 했다.
삼일장의 마지막 날
술을 엄청 마시고 관을 빼는 날 아침에 친척형이랑 어머니한테 한소리 들었던 것 같은데
전날 무슨 일이 있었는지는 기억도 나지 않는다.
아버지는 해방되었는데
나는 해방되었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