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거는 문득문득 떠오른다.
어느 순간, 그래 이랬었던 적이 있었지. 아득하게 잊힌 기억들이 보푸라기 하나까지 선명히 떠오를 때가 있다. 그러나 막상 지나온 내 삶을 애써 떠올려 보려고 하면 어렴풋하기만 할 때가 많다. 하재영의 이 책은 삶을 되돌아보는 신기한 방법을 보여준다. 장소, 그것은 마치 기억을 폭발시키는 방아쇠 같은 느낌이었다.
하재영은 바로 그 장소를 하나씩 끄집어낸다. 그리고 기억까지 함께.
명문 빌라를 떠나 노후한 아파트에 전세를 살던 시절, 중학생이던 나는 생각했다. 우리는 가난한가? 더 이상 아파트에 살 수 없어 낡은 상가주택과 다가구주택으로 이사를 다니던 시절, 고등학생이던 나는 생각했다. 우리는 가난한가? 용달차에 플라스틱 서랍장과 접이식 탁자, 이불과 책을 싣고 한강 북쪽을 전전하던 시절, 대학생이던 나는 생각했다. 나는 가난한가? 나는 오래 가난했던 것 같기도 했고 한 번도 가난하지 않았던 것 같기도 했다.
무엇이 가난일까? 한강다리 위에서 아파트촌의 불빛을 바라보며, 나도 언젠가는 이 도시에 집 한 채 가질 수 있을까 생각하다 마음이 저려왔던 순간을 가난이라 이름 붙일 수 있을까? 어떤 방에 살아보고 나서야 심각한 결함이 있다는 것을 알아차리고 스스로의 어눌함을 자책하던 순간을 가난이라 명명할 수 있을까? 전 세입자가 그랬듯 가장 중요한 문제에 대해 침묵한 채 폭탄 돌리기를 하는 심정으로 그 방을 다른 사람에게 떠넘기던 순간과, 죄책감에 휩싸여 도망치듯 떠나던 순간을 가난이라 말해도 괜찮을까?
작가가 대구시 북성로와 대구시 수성구 범어동을 거쳐 서울의 난곡을 지나 금호동, 고양시 행신동을 지나고 정발산동을 건너 서울 종로구 구기동에 터를 잡은 것처럼 나도 강원도의 태백에서 서울시 구로구 개봉동, 여주의 연립주택, 인천의 신혼집, 부천의 공무원 임대 아파트, 일산의 탄현동 아파트, 지금 파주 운정의 아파트로 삶의 거처를 옮기며 살았다.
청소년기에 내가 살았던 곳은 개봉동의 서민 아파트와 개봉동의 단독 주택이었다. 아파트에서는 잔디밭에 들어간다고 혼구멍을 내던 관리 아저씨가 떠오른다. 아저씨는 왜 온전히 잔디만 있는 곳도 아닌 풀밭을 그렇게 관리했을까? 거기 심겨진 무궁화 꽃에 벌이 들어가면 그걸 잡으면서 놀았다. 아파트지만 연탄보일러가 있어서 연탄을 갈아주어야 했고 쓰레기를 집안에서 버릴 수 있는 구조였다(중세의 화장실이 그랬다던가? 위에서 버리면 아래 쓰레기장에 집적되는) 열세 평쯤 되는 그 아파트를 나와서 개천가의 단독주택으로 이사를 했다. 이사 가기 전 아버지와 가족들이 이사 갈 집을 구경 간 기억이 난다. 아버지는 시골에서 올라와 처음으로 마련한 집이었고 그걸 보면서 얼마나 감개무량했을까? 지하실도 있었고 거기에 연탄을 쟁여 놓았다. 콘크리트로 덮여 있긴 했지만 마당도 있었고 나중에 그 집을 개축해서 다세대 주택으로 다시 지었다. 주변의 몇 집이 모여 함께 지은 것 같은데 집을 짓기 전에는 이웃 연립 주택의 지하실에 임시 거처를 마련해서 지냈다. 눅눅한 지하실의 노란 장판이 지금도 선명하다. 집을 다 짓고 잔치 비슷한 것을 한 것도 같다. 물난리도 세 번이나 겪었고 그 와중에 사진 앨범들이 몽땅 물에 젖어 못 쓰게 되었다. 앨범의 젖은 비닐을 떼어낼 때 함께 떨어지던 사진의 음영들도 눈에 선하다. 지금 생각해 보면 그곳이 나의 본가처럼 느껴진다. 고등학교 때까지의 동네 친구들도 내가 나온 초, 중, 고도 다 주변에 있었다. 형과 누나가 다 집을 떠나고서는 내 방이 생겼고 그 방에서 담배를 피웠었다. 창가에 있던 재떨이. 생생하다.
나이를 먹고서는 인천의 부개동에 살았었다. 20평이 채 되지 않은 조그만 아파트에서 첫째를 낳았다. 경기도 여주에서 부천으로 근거지를 옮기고 서둘러 결혼을 한 까닭에 돈이 없었고 어리숙한 나머지 대출금이라는 명칭 자체도 좀 무시무시했던 것 같다. 없는 돈에 전세로 방을 얻고 아내와 첫째를 키웠다. 주말에는 유모차를 차에 싣고 인천대공원으로 산책을 갔고 차에서 유모차를 내려 아이를 태우고는 '내 인생도 이렇게 남들처럼 코스대로 가고 있구나' 생각했었다. 그리고는 공무원 임대 아파트로 이사 가기 전에 입주 청소를 아내와 둘이 하러 갔다. 지금까지 내가 살던 아파트 중에는 고층, 해도 잘 들고 창호 새시도 멀끔한, 제법 멀쩡한 집이었던 것 같다. 테라스를 걸레질하며 '이 많은 아파트가 있는데 내 집 하나 없다니' 하고 속이 좀 아렸던 기억도 있다.
작가가 그랬던 것처럼 나도 나의 장소가 있었다.
이 책을 통해서 나를 돌아본다. 나도 이렇게 저렇게, 이곳저곳 떠돌며 살아왔구나 싶었다. 이 책을 읽고는 어느덧 책은 뒷전이고 나의 과거, 그리고 나의 삶에 침잠해 버렸다. 이것이 이 책의 장점인가. 나도 모르게 내 이야기를 술술 하게 만든다.
왜 술자리에서 상대편의 진솔한 이야기를 듣고는 나도 내 이야기를 털어놓고 마는, 그래서 울기도 하고 웃기도 하고 그러지 않는가 말이다. 작가가 장소에 따라 겪는 가난(가난에 따른 장소라 해야 하나?), 장소를 함께 겪는 사람들(엄마, 아빠, 피피)에 대한 이야기들이 왜 그리 솔직하게 다가오든지.
그러다 보면
"그러냐? 사실은 나도......"
이렇게 되는 것이다.
산문을 보고 아름답다고 느낀 적이 없었는데, 이 글들은 참 아름답다고 느꼈다.
친구의 비밀 얘기는 함부로 사람들의 입방아에 올리지 않는다. 그 얘기를 하기까지의 고민 같은 걸 알기 때문에 그 비밀 얘기는 소중한 것이다.
왜 그런지는 모르겠지만 그런 느낌을 받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