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또가 되어서 20억이 생기면 이걸 또 주식에 투자하는 거지. 재수 좋으면 또 더블이 되고. 그걸로 건물을 사거나 토지를 사는 거야. 그러면 또 뜻밖에 개발 호재가 생겨서 몇 배로 뻥튀기되는 거야. 히히
나의 망상은 이 소설에서 현실화되었다.
엊그제 서영은의 소설에서 느낀 좌절감은 이 소설에서 깨끗하게 씻겼다. 서영은의 소설들이 70년대의 박물지라는 평가가 있던데 장류진이야말로 밀레니엄 세대 젊은이들의 삶을 핍진하게 보여주는 작가라는 생각이 든다.
그래, 시대를 보여주는 세태 소설이라면 이 정도는 되어야지.ㅋㅋ
단순하게 정리하면 이 소설은 '흙수저 젊은 여성들의 코인 투자 이야기'이다.
회사 생활을 하는 흙수저 젊은이 3인, 정다해, 지송이, 강은상
엿같은 회사 생활을 함께 버티던 3인은 어느 날 강은상의 조언에 따라 다해가 먼저, 그리고 지송이까지 코인의 세계에 빠지게 된다. 그때부터는 우리가 흔히 뉴스에서 보던 코인 투자의 상황이다. 그런데 손에 땀이 난다.
아. 올라야 될 텐데......(나 왜 이러냐?)
전반부에 강은상으로부터 코인 투자를 제안 받은 나(정다해)는
화면 속에 거대하고 가파른 곡선 하나가 나타났다. 왼쪽에서 오른쪽으로 조금씩 오르락내리락하기를 반복하며 약간 아래로 기우는 듯하다, 아무도 예측하지 못한 때에 별안간 치솟으며, 깎아지를 듯, 뭐라도 뚫을 기세로, 급하게 우상향하고 있는 J커브였다. 몸속에서 무언가가 발밑을 향해 덜컥 내려앉는 느낌이 들었다. 그로 인한 파동이 온몸의 세포를 떨리게 만드는 듯한 감각마저 일었다. 그 순간 누군가 나를 어느 불꽃 축제의 현장에 데려다 놓은 것만 같았다. 폭죽이 칠흑 같은 밤하늘 한가운데로 환한 빛을 밝히며 솟아오르는 기분. 고개를 잔뜩 쳐들어야 볼 수 있는 높은 곳에서 화약이 팡, 하고 터지며 황금색 불꽃을 흩뿌리는 것 같은 기분. 그 파편들이 다시 반짝이며 아래로 내려앉는 소리, 왜인지 짤랑거리는 소리가 들리는 것 같은 기분. 단지 보는 것만으로도 돈벼락을 맞은 기분. 그런 기분들에 나는 꼼짝없이 휩싸였다. 그제야 비로소 알아차렸다. 내가 깊이 바라왔던 게 있다는 것을. J. 이거였다.
작가는 다해의 원룸 생활, 회사 생활을 매우 현실적으로 그려낸다. '아, 지긋지긋해'라고 누구라도 느끼게 된다. 그리고 3인이 모여서 고충을 나누는 그 '커피빈'의 구석진 테이블 바로 뒤에 독자인 나도 끼어 앉아 있는 듯한 느낌을 준다.
그렇다. 저성장 시대에 대부분의 흙수저 젊은이들이 왜 코인판에 뛰어들 수밖에 없는지를 이 소설만큼 설득력 있게 보여주는 글을 보지 못했다. 그저 꼰대처럼 '젊은 애들이 헛된 욕망에 빠져 허우적대고 있구먼'하고 피상적으로 비판하던 나를 반성하게 만드는 소설이다.
작가는 책의 끝에 있는 작가 후기에서 이렇게 말한다.
소설가라는 직업의 장점은 키보드와 모니터만 있으면 어떤 이야기든 만들어낼 수 있다는 것이다. 나는 '누가 3억 주는 소설'을 써보고 싶다고 생각했고, 첫 장편소설을 구상하면서 '다해와 친구들에게 *** ***는 이야기'를 만들어 보기로 했다.
어릴 적 과자를 먹을 때면 다분히 의도적으로 닦지 않고 남겨둔 손가락 끝의 양념 가루들을 마지막 순간에 쪽쪽 빨면서 '음 괜찮은 한봉지였어' 생각하곤 했다. 이 책의 마지막을 읽고 있는 당신도 최후의 맛을 음미하듯 '음, 괜찮은 한 권이었어'라고 느껴주시면 좋겠다고 감히 소망해본다.
소설가라는 직업은 참 매력적이라는 생각이 들었고 '작가가 감히 한 소망'이 나에게는 이루어졌다고 말해주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