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건배_칼럼니스트 심연섭의 글로벌 문화 탐방기(심연섭)

by 궁금하다

칵테일 종류가 하늘의 별만큼이나 많다고 하지만, 일반 주객들이 일상적으로 마시는 것을 따져보면 열 손가락을 넘지 않는다. 그 베스트 텐 가운데 1위는 아니더라도 언제나 상위권에 드는 것이 마티니다. 알코올 함량 42%의 진에다 포도주를 바탕으로 초근목피의 약미를 가한 20도가량의 베르무트 약간을 섞어 셰이크 한 다음, 올리브 열매 하나 또는 레몬 껍질 한 가닥을 넣은 것 말이다. 점심, 저녁을 가리지 않고 식사 전에 입맛을 돋우는 아페리티프로, 마티니 한두 잔을 들지 않는 미국 사람은 금주주의의 맹신자로 보아도 무방할 만큼 이 칵테일은 아주 보편적인 술이다.

이 술을 주문할 때 보면, 마시는 사람이 프로인지 아마추어인지 바로 구별할 수 있다. 노련하고 가락이 있는 바텐더라면 그것을 주문한 손님에게 이렇게 반문하게 마련이다.

“How do you like it?”

이 질문을 “왜 그것을 좋아하세요?”라고 알아들어 “I like it”이라고 대답하는 사람은 주객의 자격이 없는 사람이다. 진과 베르무트의 비율을 어떻게 해서 마시겠느냐는 질문에, “그냥 보통으로!”라고 대답하는 사람은 주객이기는 하나 풋내기이므로 바텐더로부터 존경받을 생각일랑 말아야 할 것이다. “Make it dry!”라고 명한 다음, 한참 뜸을 들였다가 엄숙한 목소리로 “엑스트라 드라이!”라도 한마디 덧붙이면, 바텐더도 회심의 미소를 지으면서 “Yes, Sir!”라고 화답할 것이다.

바텐더도 프로가 왔다는 것을 그 주문 한마디로 알아차리는 것이다. 보통 아마추어들의 마티니는 진과 베르무트의 비율이 3대 1 정도다. 프로의 경지에 접근할수록 5대 1, 10대 1, 100대 1로 변하게 마련이다. “엑스트라 드라이”라고 하면 100대 1 정도라고 할 수 있다.

그럴 바에야 베르무트를 한 방울도 섞지 말고 진만 알몸으로 마시면 되지 않느냐고 반문할지도 모르지만, 그건 천만의 말씀이다. 신사의 체면이 없어도 유분수지, 어찌 벌거숭이 마티니를 마실 수 있겠는가.

이 세상에서 가장 외로운 섬이라는 맨해튼의 어느 바에서 외국인 기자 몇 명과 어울렸을 때의 일이다. 어떻게 하면 가장 드라이한 마티니를 만들 수 있겠느냐는 것이 화제에 올랐다. 한 친구가 입을 열었다.

“옛날 만년필에 잉크를 넣었던 스포이트 생각나나?”

“그 스포이트로 베르무트 한 방울을 떨어뜨리니까 마티니 맛이 되더군.”

“그것보다는 주사기가 낫지. 가장 가느다란 바늘이 25호 정도면 베르무트 방울을 훨씬 작게 만들 수 있지.”

또 한 친구의 이 비법에 다른 친구가 이의를 제기했다.

“아내가 향수 뿌리는 분무기 알지? 그걸 빌리는 거야.”

이번에는 듣고만 있던 바텐더가 한마디 거들었다.

라스베이거스의 어떤 바에 가면 원자 마티니를 마실 수 있다는 것이다. 원자폭탄 과학자 중에 마티니 애호가가 있어서 네바다 사막에서 폭발 실험을 할 때 그 폭탄 속에다 베르무트 한 방울을 주입해 두었다는 것이다. 원자탄이 폭발할 때, 그 한 방울이 같이 폭발하면서 대기 중에 퍼진다. 그래서 마티니 만들 때 셰이커 뚜껑을 열고 창밖으로 1초 동안 노출시키면 대기 중에 떠돌아다니는 베르무트의 기가 내려앉는다는 설명이었다. 이름하여, 그것이 바로 ‘원자 마티니’


소설가 성석제의 감상은 다음과 같다.


심연섭 선생의 글을 읽은 것은 1982년, 군인 신분으로 휴가를 나왔다. 현책방에서 산 <술, 멋, 맛 – 주유만방기>라는 책을 통해서였습니다. 처음에는 군대 동료들에게 잡학을 자랑하려고 책을 샀는데 읽어보고서는 혼자만 읽기에는 너무 재미있어서 책을 빌려주게 되었습니다. 그러다가 결국 돌려받지 못하고 말았는데, 헌책방에서 산 책이었던 까닭에 다시 구하기도 어려웠습니다. 근래에 다시 이 책이 출간되었다길래 반가운 마음에 사보고는 그중에서도 군대에서 가장 인기가 있던 내용을 골라 보았습니다.


여기까지만 읽었으면 좋았을 텐데.....


이 책을 읽은 후, 나는 좀 억울했다.


참으로 익살스럽지 않은가 말이다. 그 말로만 듣던 오덕(오타쿠)의 세계.

그러니까 오덕이니 십덕이니 하는 말들이 보편적으로 사용되는 요즘의 이전에, 1950년의 한국전쟁 당시에, 이미 술 쪽으로 일가를 이루고 술에 관한 철학 같은 것을 그야말로 익살스럽게 풀어놓지 않았는가 말이다.


그러나 나는 이 책을 읽은 후, 자꾸 억울했다.


사람이 삶을 사는 데에 있어서 항상 근엄할 수는 없고, 순간순간 유머를 놓지 않는 여유를 가지는 것은 참으로 훌륭할 것인데.....

왜 자꾸 작가를 바라보는 나의 시각은 비뚤어지는 것일까?


문장도 유려하고 술술 읽히는데, 왜?


여기서 나는 이효석의 '낙엽을 태우면서'라는 수필을 떠올렸다.


낙엽 타는 냄새같이 좋은 것이 있을까?
갓 볶아낸 커피의 냄새가 난다. 잘 익은 개암 냄새가 난다. 갈퀴를 손에 들고는 어느 때까지든지 연기 속에 우뚝 서서 타서 흩어지는 낙엽의 산더미를 바라보며 향기로운 냄새를 맡고 있노라면 별안간 맹렬한 생활의 의욕을 느끼게 된다.


아름다운 문장으로 유명하긴 하지만 일제의 말기, 1938년에 나올 만한 수필인가 싶다.

참 여유 있고 한가한데, 시대는 그렇지 않았다. 아주 팔자가 좋다. 이효석의 이 수필은 명 수필로 교과서에도 실려 있었지만 시대에 맞지 않는 내용으로 비판도 많다.


내가 심연섭의 이 책을 보고 억울했던 이유도 그런 것 같다.(마치 사기를 당한 것 같은 느낌?)

세상을 주유하면서, 세계 각국의 술집과 술을 두루 맛보고 각국 유수한 언론인들과 교류하며 한 잔 술을 즐기는 낭만.

참 멋지기는 하다만

4.19가 엎어지고, 5.16이 발발하는 절체절명의 시기에 언론인으로서 세계를 주유하는 낭만을 즐기는 것이 옳은가?

옳은 것은 두 번째로 치더라도 이러한 글들을 신문에 등재하는 것이 부끄럽지 않은가?

나는 의문이다.


칼럼니스트로 누구보다 먼저 우리 언론계에서 탁월한 풍토를 개척한 것이 수탑 형의 30년에 걸친 고고한 붓 한 자루의 힘이라는 것을 알 만한 사람들은 모두 알고 있다. 그는 금싸라기 같은 수많은 문장을 발표했음에도 불구하고 세상의 명리를 뜬구름같이 보아왔다. 그만큼 그는 세속에 살면서 세속을 벗어난 달인이었고, 정신의 영원한 자유인이며, 또한 고독의 그림자를 떨쳐버리지 못한 나그네였다.(송지영 전 조선일보 논설위원, 한국방송공사 이사장(1977), 1983년 작고)


금싸라기 같은 문장은 그렇다 치고, 국가재건최고회의 외무, 국방위원회의 자문위원이었던 그다. 세상의 명리를 뜬구름 같이 보았다는 것은 좀 아니지 않은가? 신문의 인물 동정란에 '출국'이라는 분류가 따로 있을 만큼 해외로 나가는 것이 어려웠던 시기에 언론인으로서 전 세계를 다닐 수 있을 만큼 특혜를 누린 사람 아닌가? 세속에 살면서 세속을 벗어난 달인이라고 하기에는 세속에 너무 물들지 않았나?


1977년 54세 나이로 서울 성북구의 초라한 전셋집에서 별세하자 서울발 외신은 물론 국내 거의 모든 언론이 애도하며 보도했다. 특히 한국일보는 장기영 사주의 장문의 조사를 통단으로 게재했다. 박정희 대통령을 비롯한 3부 요인이 조의를 표했고 윤천주 서울대총장, 김옥길 이화여대총장, 원로 언론인 홍종인 씨를 비롯한 언론사 사장들과 문화예술계 인사, 찰스 스미스 UPI 홍콩 지국장등이 분향했다.


심연섭은 친구가 많았던 모양이다.


그리고 나는 왠지 씁쓸하다.(뭐 내가 이런 말 자격은 없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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