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죽은 등산가의 호텔(스트루가츠키 형제)

by 궁금하다

내가 읽고 싶었던 것은 SF소설.

결국은 신나는 모험이 가득한 SF 영웅 소설이 아니었을까?

김초엽의 소설에서 느낀 멜랑코리 말고, 액션과 활극을 원한 것은 아니었을까?


김초엽의 소설을 읽고 나서

나는 불현듯, 전에 읽었던 스투르가츠키 형제의 '신이 되기는 어렵다'를 떠올렸다. 그렇지, 과거의 지구로 파견된 먼 미래의 사나이, 초인적인 능력을 가지고 있었지.(뭐 원하는 대로 모든 걸 하지는 않지만)

안 그래도 사는 게 팍팍한데 소설까지 우울할 필요가 있나?

나는 바쁜 삶 속에서 휴식이 필요한 사람이니까.


소설에서는 죽은 등산가의 호텔이라는 이름의 호텔에 페테르 글렙스키라는 경찰이 휴가를 오면서 이야기가 시작된다.


그곳은 오래전 등산가가 자살인지 타살인지 모르지만 죽기 전 머물던 숙소였다. 호텔의 주인인 알레크는 등산가가 남긴 옷이나 다른 장비들을 그대로 놔두었는데 마치 '그 사람'이 이곳에 존재하는 것처럼 묘한 분위기를 풍긴다. 페테르와 함께 듀 바르스토크르(마술사)와 조카인 브륜이 머물고, 물리학자인 시모네, 부유한 상인 같은 모제스 부부, 혼자 숙박을 하러 온 올라프 그리고 힌쿠스가 머물게 된다. 시간이 흐르면서 호텔에서는 모제스의 비싼 시계가 사라지고 페테르에게 힌쿠스가 위험한 인물이라고 메모지가 남겨지는 등의 사건이 일어난다. 초반에 나(페테르 글랩스키)는 브륜이 여자인지 남자인지 모를 모호한 외모에 궁금함을 보이고, 아름다운 모제스 부인에게 흔들리기도 하며, 물리학자인 시모네, 흡혈귀와 망령, 유령의 존재를 말하는 주인장 알레크와 시시한 이야기들을 나눈다. 그런 와중에 올라프가 잔인한 모습으로 죽은 채 발견이 되었고, 그 방은 확실히 밀실이었기에 누가? 어떻게? 그리고 덩치가 큰 그를 어떻게 죽였는지? 가 의문으로 남는다. 전형적인 밀실 살인, 자신을 제외한 주인장까지 용의자로 봐야 하는 상황에서 페테르는 호텔 손님들을 한 명씩 용의 선상에서 제외해 가며 수사를 벌이지만 사건의 진상을 찾을 수가 없다. 페테르는 올라프의 방에서 발견한 가방 안에 이상한 기계를 호텔 금고에 넣어두는데 이것이 무엇인지는 누구도 모른다. 동시에 혼자 시간을 보내려는 힌쿠스가 갑자기 사라졌다가 나타난다. 쉬러 온 것인데 오히려 묘한 사건을 겪게 되면서 페테르(나)는 압박감에 시달린다. 그러나, 단순히 부유하고 괴팍한 상인으로 생각한 모제스가 한 말로 인해 상황은 완전히 바뀌어 버린다. 우주와 지구, 관찰자, 금괴털이범. 이 황당한 상황 속에서 모두가 모제스의 말을 믿었지만 유일하게 페테르는 믿지 않았다.(의심은 당연하지만 답답하기 그지없다) 이후 사건은 뜻밖의 결과를 맺으면서 시모네에게 비난을 받게 되고 시모네는 페테르에게 말조차 건네지 않았다. [출처] 《죽은 등산가의 호텔》|작성자 책모리 참고.


결과적으로 이 소설이 내게 준 것은 모험과 카타르시스가 아니었다. 중간 어디쯤 뛰어넘어 읽어도 전체적인 흐름을 파악하는데 큰 어려움이 없는 영웅 소설이 아니었고, 사건의 단서들을 꼼꼼히 챙겨 문제를 풀어야 하는 수능 독서 지문 같은 추리 소설이었다. 잠결에 머리맡의 물인 줄 알고 마셨는데 커피를 꿀꺽꿀꺽한 느낌?

소설이 끝날 때까지 추리 소설로 가다가 마지막에 SF 소설로 변신한 느낌?

사람에 따라서 반전이 기막히다고 할 수도 있겠다만서도 나로서는 조금 황당했다.

소비에트 소설이라면 이렇게 끝나서는 안 될 것 같은데.... 하는 생각까지 들 정도로 어두운 결말이다.


비유하자면


여자 친구와 이별한 내게, 네가 전에 사귀던 여자와는 완전히 다른 여자가 있으니 한번 만나보라는 말.

나는 새 마음 새 각오로다가 만남을 가졌다. 확실히 전에 사귀던 여자와는 다르다.

아. 그런데 썩 마음에 들지는 않는다.

마침 회사일도 바쁘고 그래서 자주 연락하기도 그렇고 해서 유야무야 연락이 끊긴 그런 여자다.


좋을 때 만났으면 좋은 인연이 되었을 수도 있었을 텐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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