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채식주의자(한강)

by 궁금하다

채식주의자에 대한 댓글 평으로 ‘편식하지 말고 음식을 골고루 먹어라’라는 것이 기억에 남습니다. 황당하지만 그만큼 이 책의 내용에 대해서 명료하고 확실하게 정리하기가 쉽지 않음을 보여주는 말인 듯하고, 그것이 또 이 작품이 높게 평가받을 만한 이유가 되지 않을까 싶기도 합니다.

결론적으로 이 글을 읽은 저의 느낌은 어떤 공포 같은 것입니다. 삶에 대한 공포, 일상에 대한 공포 같은 것이지요.(예전에 초록 물고기라는 영화에서 마지막에 막둥이(한석규)를 죽인 조직 보스(문성근)가 우연히 막둥이네 삼계탕집에 방문한 것 같은?)

이 세 편의 연작 소설 중에 1인칭 시점은 첫 번째 채식주의자 편입니다. 1인칭의 ‘나’는 영혜의 남편이고요. 영혜를 이해 못 하는 평범하고 속물적인 인물입니다.

도무지 왜 고기를 안 먹는 거야?라고 생각하는 그 인물이 바로 ‘나’이고요, 독자는 바로 ‘나’에 감정이입하게 됩니다. 그리고 우리 독자들은 남편의 입장, 우리가 정상인이라고 부르는 보통 사람들의 관점에서 영혜를 바라보고 뭔가 이유를 탐색하고 있지요.

그러면 마음이 편합니다.

이 미친 여자는 뭘까?

이 여자가 미친 것에는 이유가 있을 것이고 이유를 알게 되면 이해할 수 있고 이해가 되면 ‘그랬구나’하고 넘기면 되는 것이죠.

이것은 우리가 선정적인 소문에 드러내는 반응과 일치한다고 생각합니다. 남편의 입장에서(우리가 스스로 정상인이라고 생각하며 미친 사람들을 그저 강 건너 불구경하듯이 바라보면 됩니다) 그러면 영혜의 이야기는 기괴하고 신기한 이야기? 정도가 됩니다.

그런데 이 소설에서 2번째(몽고반점), 3번째(나무 불꽃) 이야기는 나의 그런 편안함을 부수는 과정이었습니다.

그냥 미친 여자 이야기인 줄 알았는데 알고 보니 ‘몽고반점에 대한 강렬한 욕망’을 지닌 형부의 모습이 바로 나(책을 읽고 있는)의 모습이었고, 욕망의 존재들을 부여 안고 현실에 매몰되어 있는 영혜의 언니(인혜) 모습도 나(책을 읽고 있는)의 모습인 것이죠.

그리하여 욕망은 끊임없이 욕망하고 현실에 대한 염려(이성이라고 해도 좋을 것 같습니다)는 그것을 끊임없이 제지합니다(프로이트가 말한 욕망과 그것을 막는 초자아처럼 바로 내 내면의 모습인 것이죠). 영혜의 언니는 처제와 바람난(?) 남편, 미친 동생을 등에 지고 죽지도 못한 채 살아가고 있습니다. 그래서 너무 짠합니다. 이것이 제가 이 소설에서 가장 강하게 느낀 것입니다.

그리고 이것이 바로 제가 느낀 공포의 원천이 아닐까 싶습니다. 죽지 못해 살아가는 것이 현실이고 그러한 현실이야말로 그 어떤 공포 영화보다 무서운 느낌을 줍니다.

마치 영화 초록물고기에서 가족과 함께 조그만 가게를 하나 하고 싶었던 막둥이가 죽고, 막둥이 없는 삼계탕 집에서 가족들이 계속 삶을 이어나가는 모습. 그렇게 삶이란, 생활이란, 현실이란 계속된다는 것. 그것이 주는 공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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