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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민과 소설가(최민석)

by 궁금하다

우울할 때 나는 최민석을 읽는다.

왠지 모르게 나는 위로를 받는다.


삶이란 정말 미칠 것 같이 고통스러울 때가 있다.

녹색창에 '우울증 자가진단'이라는 검색어를 쳐서 검사지를 다운 받아 자가진단을 해본다.

어렸을 때는 전쟁이라도 났으면

갑작스러운 천재지변이라도 났으면 하고 생각했었던 적이 있었다.

그리고 아직까지도 그렇게 출근하기가 싫어질 때가 있다.

전쟁이라도 났으면......


막상 우울증 진단이 나오지 않더라도

이게 우울증이 아니면 뭐란 말인가?

온갖 중요한 일들이 쌓여 있어서 빨리 처리해야 하는데 정작 일이 손에 잡히지는 않고

잠이 든 듯 만 듯하게 누워서 핸드폰을 쳐 보고 있는 상태.

한 마디로 무기력한 상태. 누구 말마따나 번아웃 상태(그 정도로 많은 일을 한 것은 아니다)

이런 상태인데 이게 우울증이 아니면 뭔가?


무거운 내용의 책도 읽고 싶지 않고

책 때문에 스트레스받고 싶지도 않을 때


그때


나는 최민석을 읽는다.


작가는 '대학 내일'이라는 잡지에서 대학생들의 고민을 상담하는 칼럼을 썼고 그것이 출판된 것이 '고민과 소설가'이다.


Q 요즘 단순하게 살고 싶다는 생각이 자주 듭니다.

옷도 단순하게, 사는 모양새도 단순하게, 인맥도 단순하게. 그런데 정리해야지, 버려야지 하면서도 자꾸만 사고 싶은 것, 만나고 싶은 사람이 생깁니다. 버려야 비로소 행복해진다는데 저는 뭐든지 계속 끌어안고 사네요. 단순하게 사는 게 아무래도 무리일까요?


A 오늘은 제 이야기로 답해볼게요. 저는 소설가입니다. 소설가의 삶이란, '아니, 이럴 수가'라고 할 만큼 단순합니다. 특히 처음 소설을 쓰기 시작했을 때는 너무하다 싶을 정도로 단순했습니다. 아침에 해가 뜨면 눈을 뜹니다. 체조를 하고, 간단한 아침 식사를 하고, 매일 작업을 하는 카페까지 걸어서 갔습니다.(때론 자전거를 타기도). 아침 10시가 되면 어김없이 매일 마시는 커피를 한 잔 시키고, 노트북을 켠 채 서너 시간 정도 꼬박 글을 썼습니다. 이후에는 점심을 먹고, 달리기를 하고, 내일 쓸 원고를 머릿속으로 미리 생각을 해둡니다.

이게 일상의 전부입니다. 다시 말하자면 이외의 일은 그다지 없었습니다. 찾아주는 이도 없었습니다. 간혹 누군가 찾더라도 글을 쓴다는 핑계로 만나지 않았습니다. 옷을 작업복 삼아 후드가 달린 티셔츠 한 벌을 매일 입었고, 아침은 대게 주먹밥 따위로 때웠습니다. 운동은 매일 한강에 나가 걷거나 달렸습니다. 말하자면 변화가 없는 실로 단순한 삶이었습니다.

당연한 말이지만 이 삶은 고통이 따릅니다. 고독하고, 지루하고, 고통스럽습니다. 하지만 '이런 것쯤이야'하고 감내했습니다. 단순한 삶을 택한 이유가 있었기 때문입니다. 당시 제가 바랐던 것은 하나뿐이었습니다. 만족할 만한 글을 써보자. 문단이나, 평단, 독자가 엄지를 추켜세우는 훌륭한 글이 아닌, 스스로 만족할 만한 글을 써보자. 스스로 만족하는 삶, 이것을 자족하는 삶이라 합니다. 저는 자족하는 글을 원했고, 당시에 제겐 글이 삶의 전부였기에 자족하는 삶을 의미했습니다.

자족하는 삶을 이루기 위해 결심한 것이 하나 더 있었습니다. 원래 저는 알코올중독자처럼 매일 술을 마셨습니다. 일상은 여러 술자리에서 생긴 오해와 이를 풀기 위한 수고로 번잡해져 있었습니다. 이런 상태로는 도저히 글을 쓸 수 없어서, 금주를 결심했습니다. 대신 술을 마시는 시간에 매일 달리기를 하고, 다음 날 쓸 글을 구상했습니다. 여러모로 불편하고 고독했습니다.

이토록 단순한 삶은 많은 것의 포기를 의미합니다. 삶이 추구하는 궁극적인 것, 본질적인 것만 남겨두고 그 외의 부수적인 것들은 모두 쳐내야 합니다. 이런 삶을 택한 이유는 추구하는 가치가 있었기 때문입니다. 제 경우는 좋은 글을 쓰는 것이었습니다. 질문자님께서도 추구하는 가치가 있다면 과감하게 실천해 보시기 바랍니다. 불편이 더 이상 불편하게 느껴지지 않을 때 어느새 삶의 지방이 깔끔하게 연소되어 있을 겁니다. 군살이 없는 사람처럼, 군더더기 없는 담백한 일상을 맞이하게 될 것입니다. 하지만, 아직 추구할 가치가 정해지지 않은 상태라면 재고해 보시기 바랍니다. 단순한 삶은 물리적으로는 단순하지만, 심리적으로는 여러 단계의 절단(즉, 포기와 버림)이 필요하니까요. 그럼, 파이팅.

p.s.

아, 저는 이제 단순하게 살지 않습니다. 글을 대충 쓰기로 했거든요(보시는 바와 같이). 딱히 알아주지도 않고, 술도 고프고...... 그래도 일생에서 얼마간 단조롭게 살아볼 가치는 있습니다. 그래야 삶의 적정 리듬을 찾을 수 있으니까요.


작가는 내 또래이거나 한 두 살 어리거나 그런 나이다.

나도 제법 살았고 이런저런 경험을 했다.

누군가가 상담을 원하면 이러쿵저러쿵 이야기해 주기도 했다.

그러다가 이 모든 것이 못 견디게 번잡스럽게 느껴질 때가 있고 그럴 때 단순한 삶.

멍하게 아무것도 하지 않고 강물만 바라보고 있으면 좋지 않을까? 생각하게 된다.(이게 단순한 삶인지, 평화로운 삶인지)


지난날, 수험 생활을 할 때(한 7개월?), 새벽에 신문을 돌리고 낮에 노가다라고 불리는 육체노동을 할 때(한 달?)

그런 단순한 삶이 있었다. 작가의 말대로 목표가 명확히 있었고(돈이건 합격이건) 그야말로 순결한 삶이 아니었나 싶다. 그 시절의 단순함. 가끔 가다가 그런 것이 떠올라서 더 요즘의 삶이 번잡스럽게 느껴지는 것은 아닐까?


하지만 그때의 나도 약간의 정신적 고민이 있었던 것 같다(짐승도 아니고 먹고 자고 싸고만 하네). 기간이 길지 않아서 그렇지. 기간이 길었으면 돌아이가 되지 않았을까?(긴 수험 생활을 견디는 장수생 여러분들이 대단하게 느껴지는 이유)


작가의 대답이 대단히 대단하고 굉장히 굉장하지는 않다.

생각해 보면 항상 답은 내 마음속에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작가의 대답은 묘하게 위로가 된다.

그의 소설도 그렇지만, 희희낙락하게 말장난으로 시작해서 결말로 가면 진지하고 성의가 있다.(때로는 그 반대)

대단히 잰 체하지 않고 그렇다고 완전히 실없어 보이지도 않는다.

작가의 소설과 여행기와 이런 글들 전체의 맥락 속에서 드러나는, 그런 점이 나는 좋다.

작가의 고민 상담은 대단히 대단하고 굉장히 굉장하지 않지만

성실하고 진지하다.

그래서 위로가 된다.


결국 답은 스스로 찾을 수밖에 없고 우리 모두 그걸 알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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