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등바등 살고 있다.
우리들 모두라고 말하고 싶지만 나만인지도 모른다.
나만 그런지도 모르지만 이 소설을 보면, 우리들 모두 아등바등 살고 있다는 것을 알게 된다.
전에 정세랑의 피프티 피플이라는 소설을 보고 감동을 좀 받았었는데 이 소설도 그런 느낌을 준다.
세상의 이야기들에는 주인공이 있고 주인공 이외의 인물들은 그야말로 주변 인물에 지나지 않는다.
그런데 세상의 주인공이라는 것. TV나 영화에 나오는, 뉴스를 화려하게 장식하는 그런 인물이 아닐지라도 내 인생에서는 내가 주인공이 아닌가?
그리고 세상은 그런 주인공들이 이리저리 얽혀서 살아가고 있는 것이 아닌가?
지금 기억하기로는 피프티피플의 그 50명이 넘는 인물들이 이리저리 스치면서 이야기를 만들어가는 것. 그것이 내게는 매우 참신하고 좋았던 것 같다.
이 소설 미야베 미유키의 에도 시리즈도 그런 측면이 있다.
에도 시대(임진왜란이 끝나고 17세기서부터 19세기 중반까지의 막부시대)라는 일본의 평화시대(잘은 모르지만)에 도쿄의 서민들의 모습을 드러내주고 있다.
공동주택이 있고 그 주택을 관리하는 관리인이 월세를 받는다. 형편이 좋지 않은 집안에서는 아이들이 일찌감치 동네의 가게나 공장에 취업을 하고 먹고살기 위해 아등바등 산다. 심드렁하게 서민들의 모진 노동을 바탕에 깐 채, 인물들의 사연을 소개한다. 그 인물들은 가게 주인도 있고 품삯 노동자도 있다.(그래 봤자 가게 주인이다)
예를 들면 '인내 상자'의 주인공, 어린 여자아이인 오코마는 인내 상자를 집안 대대로 물려받는다. 나름 하인들을 거느리는 부유한 과자점의 손녀이지만 집이 불타서 할아버지는 돌아가시고 어머니는 크게 다친다. 그 와중에 할아버지와 어머니는 집안의 가보인 인내상자(옻칠이 되어 있는 검은 상자)를 챙긴다. 오코마도 인내 상자를 물려받고, 이 상자는 아무도 열어서는 안 되는 인내상자. 금기다.
도대체 열어보지도 않을 상자에 왜 그렇게 집착을 하는가?
그리고 그 속에 담긴 할아버지의 말 못 할 사연은 참혹하다.
또 예를 들면 '무덤까지'에서는 주인공이라 할 수 있는 세 남매가 각자 비밀을 간직한다. 세 남매는 입양되어 살고 있고, 잘 자라서 시집 장가 나가지만 친부모와 관련된 비밀을 마음속 한구석에 숨기고 있다. 그러면서 자신들을 키워준 양부모에 대한 고마움을 갚기 위해 더 열심히 살아간다. 그리고 양부모는 세상 좋은 사람들인 것 같지만 사실, 또 말 못 할 비밀을 지닌 사람들이다.
이 단편 소설집에 나오는 여러 가지 이야기들이 대부분 이런 사람들의 이야기다. 말 못 할 비밀을 한 가지씩 움켜쥐고 뻣뻣해진 주먹을 어쩌지도 못하고 살고 있다.
그리고 그들은 겉보기에 멀쩡하다.
그런 것이 삶이 아닐까? 불현듯 생각하게 된다.
겉보기에는 멀쩡하지만 상처 없는 사람은 없다. 지금껏 살아오면서 느낀 점이다. 내가 아는 대부분의 사람들은 겉보기에 멀쩡해 보여도 집구석 어딘가에 문제가 있었다. 그런 기억들을 떠오르게 한 소설이다.
손에 땀을 쥐게 하는 박진감은 없지만 묘하게 힐링이 된다.
인생 뭐 있냐?
상처받고 상처 주면서 아등바등 사는 것이지.
그렇게 오래오래 가다 보면 죽을 때 되는 거지.
모두들 그렇게 사는 거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