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학교에 와서 1학년 담임들을 보았을 때, 참 대단하고 훌륭하긴 한데 나는 못하겠다고 생각했다. 어우, 핏덩이 같은 아이들이 대책 없이 꽥꽥대는 걸 보면서 저런 아이들을 일일이 캐어해주는 것이 과연 가능한 일인가 생각이 들었다.
'어우, 나는 못하겠다.' 나는 마음을 접었다.
홍은전의 책을 읽으며 나는 생각한다. 참 대단하고 훌륭하긴 한데 나는 못하겠다. '온갖 현장'(그렇지, 홍은전은 노들 야학이라는 곳의 교사이고 인권이 희미해지는 여러 곳의 실상을 기록하는 인권활동기록가라는 명칭을 자신의 이름 앞에 쓰고 있다), '장애인의 인권과 동물들의 동물권', 평소에 내가 생각하지 않았던, 그런 것이 권리라고 생각도 못했던 곳에서, 홍은전은 그들과, 그 동물들과 함께한다. 참 대단하고 훌륭하긴 한데 나는 못하겠다.
홍은전은 말한다.
‘서울애니멀세이브’에서 개최하는 ‘비질’에 참여했다. 비질은 도살장을 찾아 공장식 축산이 가린 폭력을 직면하고 기록하는 활동이다. 도살장까지 가는 데는 서울 집에서 세 시간이 걸렸다. 도살장은 아무 멋도 부리지 않은 커다란 공장이었고, 입구엔 집채만 한 트럭들이 장사진을 치고 있었다. 돼지를 보기도 전에 난생처음 맡아보는 악취가 코를 찔러 나도 모르게 눈을 질끈 감았다. 트럭 속엔 똥과 오줌, 토사물을 온몸에 시커멓게 뒤집어 쓴 돼지 수십 마리가 옴짝달싹도 할 수 없도록 빽빽하게 뒤엉켜 있었다. 그들은 태어난 지 6개월 된 새끼들이었고, 도살되기 1시간 전이었다.
돼지를 마주하세요, 라고 진행자가 말했을 때 나는 당황했다. 그건 어떻게 하는 걸까. 주변 사람들을 곁눈질했다. 어떤 여성은 철창살을 물어뜯는 돼지 앞에서 고개를 숙인 채 흐느끼고 있었고, 어떤 남성은 트럭을 돌며 돼지에게 물을 주고 있었다. 그 모습을 대기 중인 트럭 기사가 별 희한한 걸 다 본다는 듯 내려다보고 있었다. 가방 속엔 돼지에게 주려고 삶아 온 감자가 있었지만 나는 어쩐지 그것을 꺼낼 엄두가 나지 않았다. 삶은 감자가 트럭 기사의 생계와 노동을 비난하는 것처럼 보일까 두려웠다.
여기서 홍은전이 감자를 꺼내지 못하는 마음이 바로 홍은전을 바라보는 내 마음이 아닐까 싶다. 대책없이 옳은 말을 주워섬기는 것은 너무 무책임한 것 아닌가? 그래서 사람들에게 제공되는 고기를 터무니없이 비싸게 팔게 되면 고기 한 점 못먹는 서민들과 또 연대할 것인가?
여러 감동적인 이야기와 가슴아픈 사연들이 있었다. 그러면서 글이란 이런 것이구나 싶은 마음도 들었었다.
하지만 그런 글을 쓰게 되기까지의 삶을 살 자신이 없다. 글을 잘 쓰고 싶은 강렬한 욕구를 마음속 깊이 간직하고 있으면서도, 솔직한 글이 주는 감동을 알고 있으면서도, 그런 삶을 살지 못하는 나.
그리고 그런 삶을 살고 싶지 않은 나.
결국, 좋은 글이란 좋은 삶에서 나오는 것일 텐데 '나는 못하겠다'는 마음을 기본으로 장착한 나다.
나는 어떻게 살아야 하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