랩걸(호프 자런)

by 궁금하다

그곳은 다른 게 아니었다. 바로 우리만이 열쇠를 갖고 있는 우리의 첫 실험실이었다. 작고 누추하기 짝이 없는 곳일지는 모르지만 우리 것이었다. 나는 그 텅 빈 방을 우리가 언제나 계획하고 꿈꿔왔던 실험실과 비교하지 않고, 그 자체로 받아들이고, 열심히 노력하면 얼마든지 바꿀 수 있는 가능성을 본 빌의 눈에 감탄했다. 과거의 꿈과 현재의 현실 사이에 커다란 격차가 있었지만 그는 우리의 새 삶을 사랑할 준비가 되어 있었다. 나도 그 삶을 사랑하기 위해 노력해 보겠다고 결심했다.


나는 남의 말을 듣는 데 능숙하지 않기 때문에 과학을 잘한다. 나는 똑똑하다는 말을 들었고, 단순하다는 말도 들었다. 그리고 너무 많은 일을 하려 한다는 말을 들었고, 내가 해낸 일은 아무것도 아니라는 말도 들었다. 내가 여자이기 때문에 하고 싶은 일을 할 수 없다는 말을 들었고, 내가 여자이기 때문에 내가 한 일을 할 수 있었다는 말도 말도 들었다. 나는 영생을 얻을 것이라는 말을 들었고, 일을 너무 많이 해서 일찍 죽을 것이라는 말도 들었다. 너무 여성적이라는 꾸지람을 들었는가 하면 너무 남성적이어서 못 믿겠다는 말도 들었다. 내가 너무 예민하다는 경고를 받은 적도 있고, 비정하고 무감각하다는 비난도 들었다. 그러나 그런 말을 한 사람들은 모두 나만큼이나 현재를 이해하지 못하고, 미래를 보지 못하는 이들이었다. 그런 말을 반복해서 들으면서 내가 여상 과학자이기 때문에 누구도 도대체 내가 무엇인지 알지 못하고, 따라서 상황이 닥치면 그때그때 내가 무엇인지를 만들어나가면 되는 값진 자유를 만끽할 수 있다는 사실을 받아들이지 않을 수 없었다. 나는 동료들의 충고를 듣지 않고, 나도 그들에게 충고하지 않으려고 노력한다. 스트레스를 받으면 다름 두 문장을 되뇐다: 이 일을 너무 진지하게 받아들여서는 안 된다. 그렇게 해야만 할 때를 빼고.


나는 내가 알아야 할 모든 것을 다 알지 못한다는 사실을 받아들였지만, 동시에 알아야 할 필요가 있는 것은 알고 있다. “널 사랑해”라는 말을 어떻게 할지는 모르지만 행동으로 어떻게 보여줄지는 안다. 나를 사랑하는 사람들도 마찬가지로 그것을 알고 있다.


과학은 일이다. 그 이상도 그 이하도 아니다. 따라서 우리는 또 하루가 밝고, 다음 주가 되고, 다음 달이 되는 동안 내내 일을 할 것이다. 나는 숲과 푸르른 세상 위에 빛나는 어제와 같은 밝은 태양의 따사로움을 느끼지만 마음속 깊이에서는 내가 식물이 아니라는 것을 알고 있다. 나는 오히려 개미에 가깝다. 단 한 개의 죽은 침엽수 이파리를 하나하나 찾아서 등에 지고 숲을 건너 거대한 더미에 보태는 개미 말이다. 그 더미는 너무도 커서 내가 상상력을 아무리 펼쳐도 작은 한구석밖에 상상하지 못할 정도로 거대하다.


작가는 제법 성공한 식물학자인 것 같다.

종신 교수도 하는 모양이다.

몇 군데 대학을 옮겨 다녔고 지금은 하와이 대학교에 있는 모양이다.

성공한 과학자처럼 보이지만 또 매우 평범하다. 실수도 많은 것 같고.... 아등바등 삶을 살아온 것 같다. 치열하다 말할 수 있을지 모르지만 또 그런 삶을 지질한 생활의 모습이라 하고 싶기도 하다. 과학자도 평범한 사람이다라는 것이 이 글의 주제인가? 그렇다면 00 언니는 책을 덮고 왜 빵 터졌다고 했을까? 왜?

지금은 성공한 과학자 같지만 어처구니없는 교통사고를 내고, 정신적으로 불안한 모습이 노출되곤 한다. 우리 어머니들이 아무렇지도 않게 지나온 출산의 과정이 히스테릭하게 그려져 있다. 그만큼 힘든 모양이다. 누구나 자신이 지닌 삶의 무게를 스스로 지고 가고 있다는 것이 주제인가?

빌과 호프 자런의 관계는 또 무엇인가? 남녀 간에 과연 있을 수 있는 관계인가?(연구실내에서의 동지)

식물학자의 책에서 나는 식물과 관련된 것이 기억에 남지 않는다. 이것은 나의 상상력이 부족한 것이 원인인가? 내 인식의 한계인가? 작가는 끊임없이 실험과 식물에 대해서 이야기하는데 그런 것이 기억에 잘 남지 않는다. 왜일까? 내 인식의 한계인가? 그러면 00 언니는 이 글에서 무언가 봤나?

갈등이 없는, 주동인물과 반동 인물 사이의 갈등과 반목, 사건이 없는 이런 책은 극영화와 다큐의 차이를 보여 준다. 나는 극 영화가 좋다. 나는 자극적인 음식이 좋다. 이런 취향이 책을 읽는 것에서도 드러나는 것 같다.

내가 나를 볼 때, 책 속에서 뭔가 그럴듯한 주제, 깨달음 같은 것을 얻어내고자 하는 스스로를 본다. 돈을 썼으면 돈값을 해야 하는.... 그런

어떤 의미, 해답 같은 것에 집착하는 나 자신을 느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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