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흥가의 어디쯤엔가 반드시 하나쯤 있을 만한 이름.
아라비안 나이트는 워낙 유명하니까....
이렇게 유명한데 완역본에 한 번 도전해야 하지 않을까 싶었다.
이름은 너무 익숙한데 정작 자세히는 잘 모르는 느낌이니까...
게다가 어떤 이야기의 근원? 이런 느낌까지 주지 않느냐 말이다.
이야기란 무엇인지 궁금해 마지않는 사람으로서
읽어야겠다는 욕망이 불현듯 일었다.
동화책으로만 읽을 수는 없으니까...
그래서 꺼내든 범우사의 전집 1권.
이야기의 시작은 이렇다.
밤중이 되자, 왕은 형에게 주고 싶은 물건을 왕궁에다 두고 온 것이 생각났다. 그래서 왕은 남몰래 왕궁으로 되돌아가서 이 방 저 방 찾다가 자기 방으로 들어갔다. 그런데 그 방에는 그의 아내인 왕비가 양탄자를 깐 왕의 침대에서 부엌의 기름과 그을음투성이의 추하기 짝이 없는 검둥이 요리사를 두 팔로 꼭 껴안고 잠들어 있었다. 왕은 이 꼴을 목격하고서 정신이 아찔해지며 눈앞이 캄캄해지는 듯싶었다.
'아직 내가 도성이 바라보일 만큼 가까운 곳에 있는데도 이 모양이니, 형님의 궁중에서 오래 머무르게 된다면 이 화냥년은 무슨 짓을 할지 모를 노릇이다.'
이렇게 생각한 왕은 미친 듯이 노하여 허리에 찬 칼을 뽑아 한 칼에 두 연놈을 네 동강이 낸 후 시체를 그대로 내버려 둔 채 천막으로 돌아와서 아무에게도 이 사실을 말하지 않았다.
과연 아라비안 나이트는 아이들 동화책이 아니네그려.
사실 동생 왕(샤 자만 왕)은 형(샤리야르 왕)이 다스리는 큰 왕국으로 초대를 받게 되고 먼 길을 떠나게 되었다. 그렇지만 출발하자마자 두고 온 물건을 찾으러 되돌아갔다가 아내의 불륜 현장을 목도하게 된다. 두 연놈을 네 도막으로 만드는 것이 이야기의 시작.
형님 왕을 만나기는 했지만, 동생 왕은 아내를 그리 처치한 것이 마음에 걸려 심화에 빠지고 만다. 아우의 병을 걱정하는 형, 사냥을 제안하지만 아우는 거절하고 궁에 남았다가 형님의 왕비가 불륜을 저지르는 것을 본다. 그때부터 건강을 회복하는 동생. 형은 동생의 건강이 좋아진 이유를 묻다가 결국 아내의 부정을 알게 되고 몰래 왕궁으로 돌아가 사실을 확인하게 된다. 왕비를 처형한 형님 왕은 앞으로 처녀를 하룻밤만 데리고 자고는 다음날 아침이면 모두 죽여버린다는 맹세까지 했다. 그때부터 매일 밤 처녀를 불러 밤을 보내고 다음 날 아침이 되면 목을 자르는 나날을 시작한다.
더 이상 나라에 처녀가 남아나지 않게 되었을 때, 처녀를 바치던 대신의 큰딸 샤라자드가 스스로 임금에게 가기를 청하고 동생 두냐자드와 임금의 침소에 들게 된다.
그때부터 시작되는 이야기.
두냐자드는 이야기를 해달라 조르고 추임새를 넣는 역할.
그때부터 끝나지 않는 이야기.
이야기로 대화를 하는 중동의 사람들이다.
얼마 전에 디즈니 애니메이션에 보았던 아랍의 세상이 머릿속에 펼쳐지고 끝없이 이야기가 반복된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재미있는데 지루하다.
그런대로 재미있는데 방금 읽었던 이야기가 조금만 지나면 기억이 나지 않는다.
왜 그럴까?
반복되는 주제의식인 이슬람교사상에 대한 칭송(알라의 사도, 구원과 축복 있으라!)
끊임없이 반복된다.
또 하나
계속되는 권선징악.
세상이 그렇지 않다는 것을 아는데, 자꾸만 착한 사람은 복을 받고 악한 사람은 벌을 받는다고 가르친다.
또 계속 삽입되는 삽입시들(여기에 대해서 시인은 이렇게 노래를 불렀다. 어떤 시인은 이렇게 노래하고 있다 등) 거의 매 페이지마다 삽입되는 시들
이것들은 집중을 방해한다.
그래서 할아버지 할머니 옛날 이야기처럼 재미있다가도 좀 질린다.
물론 이 이야기가 쓰인 시기가 10세기에서 16세기라고 하니까, 우리나라로는 고려 때나 조선 초다.
그 당시의 이야기로서는 당연한 것들을 21세기의 나는 질려하고 있다.(어이없게도)
할아버지 할머니께서 아무리 재미난 이야기를 해주셔도 잠자기 전에 잠깐 듣는 거지, 하루종일 듣고 앉아 있을 수는 없는 것 아니냐?
그런 이유로 초반의 신선함은 그만 바래고 말았다.
자꾸만 남은 부분의 두께만 살피게 된다.(권당 거의 500페이지에 달한다)
그리고 문득
나라면 세라지드의 이야기를 들으며 천일을 보내지는 않았을 것 같다.
샤라자드가 '21세기의 나'와 같은 왕을 만났어도 살아남을 수 있었을까?
그러고 보면 꽤 운 좋은 여자다.
P.S. 나머지 전집을 읽을 지는 고민중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