태린은 여자 아이다. 소설을 이끌어 나가는 주인공 소녀.
소녀는 성장하게 마련이고 결국은 어른이 된다.
인간에게 광증을 퍼뜨리는 아포(芽胞)로 가득 찬 지상 세계. 사람들은 어둡고 퀴퀴한 지하 도시로 떠밀려와 반쪽짜리 삶을 이어간다. 형편없는 음식에 만족하며, 혹여라도 광증에 걸릴까 두려워하며.
하지만 태린은 누구보다 지상을 갈망한다. 그에게 일렁이는 노을의 황홀한 빛깔과 밤하늘을 가로지르는 별들의 반짝임을 알려준 이가 있었기 때문에. 태린은 스승 이제프처럼 파견자가 되어 그와 나란히 지상에 서고자 한다. 파견자는 지상을 향한 매혹뿐 아니라, 증오까지 함께 품어야 한다는 이제프의 조언을 되새기며. 파견자 최종 시험을 앞둔 어느 날 태린에게 이상한 목소리가 들려오기 시작하고, 태린은 자신이 미친 게 아닐까 두려움에 사로잡히는데…… 이 목소리는 어디서 오는 것일까? 우주로부터 불시착한 먼지들 때문에 낯선 행성으로 변해버린 지구, 그곳을 탐사하고 마침내 놀라운 진실을 목격하는 파견자들의 이야기.(출처 : 인터넷 교보문고)
태린은 어느 날부터인가 이상한 목소리를 듣게 되고 혼란스러워하던 소녀는 그 목소리에 '쏠'이라는 이름을 붙여준다. 그리고 그 내면의 목소리와 함께 하게 된다.(베놈이라는 헐리우드 영화가 있었고, 아이언맨의 인공지능 AI인 자비스도 비슷한 느낌이다)
'나'라는 존재의 경계는 어디까지일까?
우리를 전율케 하는 작가, 김초엽이 가닿은 절실하고도 경이로운 질문
책 표지의 홍보문구는 내면의 자아가 확장되는, 즉 우리 모두가 개별적 자아로 남을 것이 아니라 개인들 모두가 서로 연결되어 있는 공동체 속의 자아를 받아들이자는 이야기를 하고 있는 듯하다. 그리고 그것은 인간의 성장을 의미하는 것 같기도 하고.(영화 아바타의 신비로운 세계처럼) 또한 이것은 자연과 소통하는 인간의 모습이 아름답게 그려지는 요즘의 사회 분위기와도 잘 맞는다.
그러나
불현듯
'쏠'이라는 내면적 자아가 인간 모두 가지고 있는 본능적 욕망이라면 어떨까?
자아의 확장이니 뭐니 하는 거창한 말이 아니라
'쏠'이라는 존재가 인간 내면의 억압받는 본능적 욕망을 은유하고 있는 것은 아닐까?
인간 모두가 품고 있는 권력욕, 식욕, 성욕 등등, 그 솔직하고 극단적이기까지 한 욕망 말이다.
특히, 소설 속 지상세계의 모습을 묘사한 부분에서 나는 욕망의 화려함을 느꼈다.
바다는 햇살 아래 밝은 에메랄드빛과 진녹색을 오가며 보석처럼 부서졌다.
“재밌지? 우리가 뺏긴 색들이 다 이곳 지상에 있어. 처음 이 풍경을 봤을 때 나는 분해서 잠을 잘 수 없었다니까. 이 아름다운 행성이 우리 인간의 것이 아니라 저들의 것이라니.”
도시는 기이한 아름다움을 품고 있었다. 색채로 일렁이는 세계. 곳곳에 강렬한 원색의 물감들을 흩뿌려놓은 것처럼 빠짐없이 찬란했다. 도시를 점령한 범람체들이 각자 경쟁이라도 하듯 빛깔을 드러내고 있었다.
눈앞의 범람체들이 태린에게 속삭이는 듯했다. 어서 가까이 와서 자신을 살펴보라고. 직접 만지고 냄새를 맡고 먹어보라고.
과연 그렇지 않은가? 우리가 흔히 욕망을 빗댄 장면으로 제시하는 밤거리의 화려한 모습. 영화에서 보던 라스베이거스의 화려하고 매혹적인 그 장면. 그것은 소설 속에서 묘사하는 지상의 모습과 크게 다르지 않다.
그리고
인간은 모두 그 욕망들을 숨기고 드러내려 하지 않을 때가 많다. 식욕을, 성욕을 솔직히 드러내는 사람에 대해서 우리는 거리를 둔다. 부끄러워하기도 하고 말이다. 소설 속에 이제프, 곧 지하도시의 파견자들은 지상을 정복하고자 한다. 이제프는 어린 태린의 머릿속의 존재(쏠)를 철저히 억압하고 있다. 하지만 인간의 욕망이란 그렇게 호락호락하지 않다. 욕망은 순간순간 분출되고 이성으로 제어되지 않을 때가 대부분이다.
시험공부를 해야 하는 절체절명의 순간, 우리는 잠을 잔다. 커피를 한 대접 마시며 의지를 다져도 우리는 잠을 잔다. 여자 친구를 만나기 위해서 젊은 병사는 탈영을 한다.
욕망이란 그런 것이다. 마음대로 안 되는 것.
그러고 나면 태린이 치는 사고들을 이해할 수 있게 된다. 참으로 답답하고 황당한 사고. 이게 뭔 민폐 캐릭터냐 싶은 어리석은 행동들. 파견자 시험 졸업장에서 범람체를 터뜨리고, 이제프를 죽음으로 몰고 가는 그 행동들이 이해가 된다. 그런 행동들은 자기가 한 게 아니고 내면의 욕망이 한 것이다.
우리는 욕망 때문에 돌이킬 수 없는 실수를 할 때가 많고 그것이 바로 우리다.
오히려 그것을 억압하려 하는 이제프와 지하세계의 인간들이야말로 인간의 본성을 억압하는 중세시대의 마녀 심판관 같은 존재가 되는 것이다.
그들은 본성을 억압하려 하였고 결국은 몰락할 수밖에 없다.
태린은 그 모든 실수들 끝에 내면의 '쏠'을 인정하게 된다. 그리고 지상으로 나온다.
태린은 순수했던, 어린 시절의 이상주의, 이성 같은 것에서 벗어나 약간은 더럽혀진 어른이 되는 것이다.
결국 이 소설은 욕망을 인정하며 나이 들어가는 우리 모두의 이야기가 아닐까?